편의점 목회자

편의점 교회 7 - 함께 함은 그는 나와 같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숑숑숑~ 2013. 11. 9. 22:38




우리는 때론 인생을 살아가며 절망하고 좌절할 때가 많이 있다. 그 절망과 좌절은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은 일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주길 원하지만, 그렇지 못함에 더 심연으로 깊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삶에서의 좌절은 그토록 깊이 아파하면서도, 그 자신 역시 다른 이의 삶은 무심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늦은 밤에 있었던 일이다. 매일 술에 취해 오시는 아저씨 한분이 있다. 항상 소주 한병을 사서 가시는데, 늘 술에 취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하며 들어오시고 나가신다. 거기다 늘 1200원을 딱 맞춰오시는데, 때론 백원짜리 혹은 오십원 십원짜리가 섞여있기도 하다.


난 무심히 삼각김밥과 빵이 들어와서 그걸 정리하고 있었다. 횡설수설하는 말을 곰곰히 들어보니 자신이 소주를 사기 위해 가져온 돈의 출처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주 한 병을 사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도와달라해서 모은 돈이라는거다.


난 그 횡설수설 이야기를 들으며 무심히 말했다.


"그렇게 모으셔서 소주 사드시는거예요?"


그랬더니 다시 한참 횡설수설대시며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신다. 가족 중 한 명이(아마도 아내인듯 하다) 전 재산을 도박으로 날렸고, 아저씨가 번 돈은 그 빚을 갚는데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벌거벗은거라고 하면서 더이상 부끄러운게 없어 구걸을 한 것이고, 현실을 잊기 위해 소주를 마신다는 것이다.


매일 그저 오는, 이해할 수 없는, 돈을 헛으로 쓰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누구의 행위나 삶을 쉽게 재단하는 것은 큰 잘못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계산을 하며, 전해져오는 그 아픔에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없어 보온병에 마시려고 담아온 '탄저린티(밀감차)'를 종이컵에 한잔 드렸다. 소주와 종이컵을 들고 문밖으로 나간 아저씨는 문 밖에서 밀감차를 천천히 마시고 종이컵은 문 바닥에 고스란히 두고 가셨다.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사는 것은 아마도 어떤 삶이든 존엄하게 생각하며 다가가는 그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