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사실 난 '박성업'이란 존재를 몰랐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무엇이 대단해서 내가 그에 대해 글을 적어야되나 싶었다. 그가 무슨 말시온이나 근래의 신천지정도 되는가?
그러다가 내가 전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의 5가지 패러다임을 보게 되었고 또 자연스레 그 패러다임들 속에서 한국교회의 문제를 끄집어 내면서..
이게 왠걸? 여기저기서 ‘박성업’이라고는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가 강조하는 궤적이 묘하게 한국교회의 역사와 얽혀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그리하야 자의든 타의든 어찌 되었든 이번 방송이 '박성업 헌정방송'이 될 듯하고, 이렇게 글까지 끄적거리게 된 것이다 젠장.
본 글 적기에 앞서 필자는 그냥 간단하게 박성업에 관련된 현상만 잘라서 적고 싶지만, 그래도 방송을 준비하며 ‘왜 그런 현상들이 나오게 되었나?’는 본질이 중요한 것 같아 길고 딱딱한 내용을 먼저 서술하게 되는 점 이해하기 바란다.
딱히 이 부분을 읽고 싶지 않으면 결론만 보라. 대신 자신 역시 박성업이 되었단 걸 잊지말라. 히힛.
1. 신학이란.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체계적 진술'이다. 사실 인간은 신을 이해할 수 없다. 암. 없고 말고. 내가 만약 신을 이해한다면 내가 신이거나, 아님 그 신이 신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을 어렵게 말하자면 바르트 옹이 좋아하는 '전적 타자에 대한 질적 차이'란 말.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 신은 우리네 역사 속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왔고, 그 중 몇몇은 그 신을 직접 경험했다. 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들로 '이 사람은 그리스도시다'라는 고백을 하게끔 했다. 하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신이 이 인간역사에 온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것은 역사 가운데 들어와 산 '신'은 입체적이었으나, 우리는 (그 신을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인간의 가치관으로 기록된) '성서'에 의해 읽고 이해하기 때문에 다시금 그를 평면적이 이해하고 있다. 왜냐?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읽고 이해하는 '예수'는 2천년 전이 아닌 오늘날 21세기의 가치관과 패러다임으로 이해한 '예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천년이 지난 지금 그 성서를 읽는 우리도 '예수'를 오해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 속으로 온 그 하나님 예수를 다시금 '그리스도'로 올바르게 고백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신학을 통해서다!!
기독교의 역사는 역사 안으로 들어온 유일한 참 인간을 참 하나님으로 고백(주는 그리스도시다 - 행 2 : 36)의 역사이고, 이 고백의 역사는 바로 교회의 역사이다. 또한 이 교회의 역사는 역사 속으로 오신 신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의 합. 즉, 신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2천년의 삶의 자리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평면적인 성서 속 예수와, 2천년 동안 수많은 패러다임 속에서도 동일하게 고백된 신앙 곧 신학을 함께 보고 이해할 때 가능하다.
2. 한스 큉의 5가지 패러다임.
한스 큉은 자신의 저서 '그리스도교'에서 교회 역사를 다섯가지 패러다임으로 구분한다.
(ㄱ) 첫번째, 묵시문학적 패러다임.
초대 원시그리스도교는 온갖 박해 속에서 묵시묵학적 패러다임을 가졌다. 그것은 이스라엘민족이 나라를 잃고 포로생활과 지배를 받으며 생긴 '묵시문학'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을 가진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묵시문학과 사상이란, 처음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혹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약해서 이 나라가 망했거니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죄 때문임을 인정했으나 그들은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이 세상의 삶에서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기에 인간 역사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종말이 오길, 심판이 있길, 구원이 있길(메시아사상) 바랬던 것이다. 그것이 구약의 묵시문학적 사상이다.
이 구약의 묵시문학적 사상의 초월개념이 '공간적(하나님이 역사속으로 개입-메시아론)'이었다면,신약의 묵시문학적 사상의 초월개념은 '시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미 구약의 초월개념인 '공간적' 초월의식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극복되었기 때문이다(판넨베르크, 몰트만 인용).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이미 구원과 종말은 그리고 심판을 위한 준비(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왔다)는 시작되었다.당시 원시그리스도교 성도들이 가진 상황은 박해의 상황이었다. 신앙을 지키며 살기에는 너무도 희망이 없었다.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이었다.
우리는 박해를 당해 죽을지 몰라도 예수처럼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 나라에 다시 부활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날이 도적과 같이 온다고 약속하셨다. 곧 임박한 종말이 올 것이다(초월의 '시간적'개념). 그랬기에 초기 원시그리스도교 성도들은 임박한 종말의 (자신의) 부활을 위해서는 예수가 누구셨는지, 그의 삶과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ㄴ) 헬레니즘 패러다임.
바울로 대표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중심이 되어가면서 초기교부시대까지 헬레니즘적 패러다임을 가졌다. 유대인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은 헬레니즘적 사고를 이용하여 당시 그 문화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의 구조 역시 '영'과 '육'이 아닌 '전인적'이다. 바울이 말한 '육적'이란 말은 육신을 뜻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하나님 뜻을 벗어나 행동하는 인간을 가리킨다(자세한 건 ‘신에게솔직히 1화 – 영적전쟁’ 참조바람). 바울이 말한 '영적'이란 말은 영혼을 뜻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령에 사로 잡힌 인간'을 뜻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바울이 그토록 영지주의 및 헬레니즘적 이단을 경계 했음에도 그 사후 고대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적 이단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그 핵심적 내용은 바로 '기독론 논쟁'이었다.
예수는 하나님이신가? 인간인가? 반신반인인가? 인간이라면 그 육은 더럽지 아니한가? 아니면 혼령인가? 하나님과 예수 사이의 순서로부터 그의 본질 모두가 공격대상이었다.
하지만 교부들은 다시금 본질(예수는 그리스도시다)을 고민했고, 헬레니즘적 재해석을 이루어냈다. 한 예로 니케아 신조의 '빛으로부터 빛'은 동일본질에 대한 고백인 동시에, 헬레니즘적 사고의 결정체이다.
(ㄷ) 중세로마카톨릭 패러다임.
교회가 국교회가 되면서, 또한 헬레니즘적 이단들과 논쟁을 극복하면서 교회는 권력이 되었고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은 '장미의 이름으로'란 책을 보면 잘 묘사되어있다. 교회의 권력이 커지면서 황제 위에 군림하기도 했고, 황제의 힘에 눌리기도 하면서 권력싸움을 해나갔다.
신학적으로는 기독론 논쟁이 일단락되면서 '삼위일체론'이 관심을 받았고, 일명 '필리오케논쟁'을 통해 로마카톨릭과 정교회는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이 분리로 '교황'권위가 세워지게 되고 교황에 관련된 이념들이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권력증대는 당시 성서를 읽고 해석할 수 있었던 사제들의 나태함과, 외적으로 큰 교회를 건축함에 따른 재정난을 면죄부로 채우기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권력의 증대 속에서도 경건한 이들의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고, 중세로마카톨릭 패러다임에 의한 신학 재해석 작업 역시 그들에 의해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원래의 신관과, 신플라톤주의 등의 철학적 신관을 함께 이용하여 신앙과 이성이 조화된 재해석을 이루게 되었는데, 그 시작은 어거스틴이요, 그 완성은 아퀴나스였다.
(ㄹ) 종교개혁적 패러다임.
교회의 비대함과, 나태함은 그 속의 사제들의 개혁을 일깨워냈다. 물론 그전부터 종교개혁적 움직임은 많았으나, 인쇄술의 발달 등으로 인한 시기와 맞물리면서 루터 등에 의해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루터는 로마가톨릭의 제도적 보완이나 사회개혁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관심은 잘못된 구원론과 기독론이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요 부분은 ‘신에게솔직히 3-1화’를 들어라. 사심으로 홍보하는 것 맞다. ㅎ). 루터는 교황 등 교회론 중심의 사고에서 다시금 성서 중심의 사고적 전환을, 권력의 정점에 의한 판단유무(기독교전제주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의 계획을 말했다. 루터 자신은 결코 가톨릭 밖으로 나가길 원하지 않았으나, 가톨릭은 그를 정죄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개신교의 시작이었고, 가톨릭은 이후 반종교개혁을 통해 내부적 종교개혁을 이루어나갔다.
(ㅁ) 계몽주의적 패러다임.
계몽주의는 모든 인류의 자기사고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신론 중심의 사회를, 인문학중심의 사회로 바꾸어냈다. 그러자 교회는 적지않은 당황을 했고, 당시 사회가 가졌던 계몽주의적 패러다임을 답습했다.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악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을줄 알았다(슐라이에르마허, 하르낙 등). 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2판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아닌, 오직 전적 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을 말한다(이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2판은 당시 자유주의자들의 파티장에 폭탄을 던졌다고들 한다).
칼 바르트, 본회퍼, 틸리히, 판넨베르크, 몰트만 등 이들은 신정통주의로 계몽주의적 패러다임 속에 다시금 은혜의 우선성을 강조하며 신학을 재해석했다.
3. 신학의 부재에서 신학의 부정으로 – 박성업현상
교회사에 있어서 크게 5가지 패러다임을 나눈 한스 큉은 그 다섯가지 패러다임에서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시대적 패러다임 안에서(시대적인 상황과 고착화과정)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교의 변하지 말아야 할 본질(예수는 그리스도시다)을 추구하고 그 시대적 재해석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자신들이 가졌던 패러다임들 속에서 단 한번도 본질을 추구하거나 매개하거나, 재해석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것은 2천년이 넘는 시간 속에 5가지 패러다임이 있었던 세계교회에 비해 100여년의 시간 안에 5-6가지의 패러다임들이 강요되었던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에 충분히 이해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과거 100년의 한민족 현대사는 전 세계의 근현대사의 집중이자 요약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며, 다른 나라의 1000년이상의 역사에서 경험했던 일들은 우리네는 100년 안에 강제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쉽게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여기에는 시대적으로 기득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사수하여 이러한 패러다임적 혼란을 만들고 교육시킨 점도 있기 때문이다.
자, 어쨌든 그렇다면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해 나가보겠다.
처음에 개신교가 전래가 될 때 온 신학은 근본주의적인 신학이었고, 또한 너무 어린 나이(20대초반)에 온 제대로 된 신학적 수업을 받지 못했던 선교사들 중 대부분은 민족지도자들이 자신보다 더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1890년 당시 선교정책).
워낙 처음부터 근본주의적이고, 또 그런 선교정책을 가지고 있었기에 신학적 토양이 뿌리내릴 여유가 없었다. 거기다가 당시는 일제의 박해 상황 - 묵시문학적 패러다임이 오는 가운데서도 어떤 것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본질로 나아가거나 희망으로 나아가기보다, 요한계시록 같은 것을 그 문서가 기록될 당시의 배경이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문자 그대로 이해를 하고 설교를 함으로서 종말은 ‘본질이 아닌 공포’를, ‘희망이 아닌 무서움’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신학적 기반이 약한 목회자들은 성도들 앞에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도구로 ‘공포, 강요’를 쓰기도 했다(‘내 말 들어 이대로 하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식의..).
원래 우리민족은 샤머니즘 성향이 강한 민족이다. 도를 닦던 이들도 많았고, 정화수(정안수)를 떠놓고 비는 이들도 많았으며, 동짓날의 팥죽이나, 아기가 태어날 난 대문 밖에 숯이나 고추를 매다는 등 삶의 전체가 샤머니즘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이것은 마치 헬레니즘 패러다임에서 고군분투했던 교부들의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는 교부와 같은 신학적 기본이 있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초기 민족목회자 중에는 샤머니즘적 생활을 했던 이들도 많았다(길선주 - 도교 혹 선교). 그들이 목회자로 전향을 했다고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이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한 예로 새벽기도의 태생 역시 그러한 부분이 있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이 관련하여서는 ‘신에게솔직히 2-1화’를 들어보라). 즉 신학적 토양이나 기본도 없었고, 샤머니즘 적이었던 초기 목회자들은 어떤 착각을 했을까?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 하나님을 마치 자기의 도구처럼 부리기 시작하고, 신비주의적이고 열광주의적인 또한 기복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또 어떤 패러다임이 있었는가? 바로 반공주의적인 패러다임이 있었다. 일제침략기 중후반에 이루어진 사회주의운동은 교회로 하여금 난처한 상황으로 몰고 갔고, 이후 갑작스러운 해방과 분단으로 이념 다툼이 생기고, 또 전쟁 그리고 독재로 인해 당시 독재자들과 권력들이 자신의 독재와 기득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념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했을까? 한국교회는 원래 기본적 신학토양도 없었고 전쟁을 통해 수백만명의 참혹한 죽음을 실제로 경험 경험했기 때문에 반공의 패러다임을 견뎌낼 힘이 없었다. 거기다 첫 대통령이 장로였기 때문에 교회의 힘과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러다 보니 교회는 더 이상 자신의 적이 없어지게 되었고, 적이 사라진 교회는 권력이 되어갔으며, 또 독재의 시기에 교회는 개발과 맞물리며 정치와 야합하기 시작하면서 대형교회화 되어갔다. 이 부분은 마치 종교개혁의 시대처럼 교회는 덩치가 커지고 권력이 되고 신학이 고착화되어 발전이 없게 되다 보니 더 이상 구원론이라던지 기독론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교회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떻게 하면 덩치가 커질까’, ‘어떻게 하면 자신들을 따르게 만들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성도들도 ‘어떻게 하면 내가 복이나 은사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고, 고침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에고(ego)에 바람만 생기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시냐?’,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따름)?’와 같은 본질적 물음보다도 자기만족을 위한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현재가 있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4-60년대에 신학을 한 이들이 자신의 신학의 지평을 넓히기 보다 외적 치장에만 관심이 있는 상태에서, 후배들이 새로운 신학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끼며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단절시켜버렸다. 목회에 있어서 성도들에게 교육하기를 ‘신학은 필요 없고,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믿으라 한 것을 믿고 복 받고 천국 가는 것을 바라라’고 말함으로서 성도들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부정’을 강요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 5가지 패러다임들에서도 알 수 있듯 ‘신학은 곧 신앙’이며, 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본질이지 복 받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쨌든 이러한 풍토에서 ‘신학무용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처음에는 신학이 부재한 채로 개신교가 들어왔고 어느 순간부터 종교기득권과 권력이 생겨나게 되었다. 덩치가 커지면서 ‘신학의 부재’를 느꼈다면 신학적 사고를 해 나가야 할 것인데, 기득권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 ‘신학이 필요 없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학무용론’의 수준이 아닌 ‘신학의 부정’이다. 즉, ‘신학의 부재’가 ‘신학의 부정’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신학의 부정’이 무엇인가? 곧, 교회
의 부정을 말한다. 기독교의 부정을 말하고, 예수의 부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2천년 전에 예수께서 그 당시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우리를 위해서 왜 죽으셨고 왜 부활하셨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냥 지금 이 순간,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이 바라는 예수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2천년 전에 말씀으로도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이 역사 가운데 오신 그 ‘은혜’와, 우리보다도 더 낮은 삶을 사셨다는 그 ‘삶’과,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그 ‘죽음’과, 우리로 하여금 그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분을 ‘주는 그리스도시다’ 고백을 하게 끔 해주신 그 ‘부활’.. 그 2천년 전 그 예수는 지금 이 땅에 없다. 그저 2천년 전 성서기자가 적은 그 낱말과 문자로서 예수와, 2천년 동안의 빈 공간, 그리고 현재 21세기가 있을 뿐이다.
즉, ‘박성업’이라는 사람이 나오게 된 이유, 또한 ‘박성업 현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바로 ‘신학의 부정’에 있다. 한번도 본질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은 종교기득권들의 교만하고도 야비한 행동의 결과에 이 박성업과 같은 이들과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신학의 부정’은 그들이 근래에 와서 많이 사용하는, 마치 다원주의 혹은 종교다원주의와 비슷하다. ‘다원주의’란 것은 어떤 공동체에서 추구하는 목적이나 규칙이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종교다원주의’란 것은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이 하나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쉽게 말하면 ‘산의 정상’은 한 군데지만, 그 정상으로 나가는 길은 여러 군데가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신을 믿든 진리로 이르는 것은 똑같다는 말이다.
왜 ‘신학의 부정’이 ‘종교다원주의’냐?
자, 집중해서 읽어보길 바란다.
예수가 없다. 2천년전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삶, 또 죽음과 부활을 잘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다. 단순히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그 가치관으로 그 성서의 문자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명제’로의 예수만 있지, 예수의 ‘본질’은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상자 안에 장미꽃이 잔뜩 있다. 그리고 그 상자 밖에는 ‘장미’라고 쓰여진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은 상자 안에 장미가 전혀 없으면서 겉면에 ‘장미’라고 붙여진 스티커만 보고 ‘저건 장미다’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들에겐 본회퍼가 우려했던 ‘종교화된 껍질만 있지 그 안에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예수는 없다.’
‘신학의 부정’을 말하는 자들이 예전 ‘자유주의신학’이란 말로 신학을 부정했다면, 현재는 ‘종교다원주의’란 말을 애용하는데.. 자, 한 가지 물어보자.
그전에 다시 종교다원주의를 쉽게 정의하면, ‘다 다른 것을 같은 진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가 아닌데 예수가 아닌걸 보고 ‘예수’라고 말한다면 그건 종교다원주의 아닌가?”
“어떠한 교회전통이나 역사적인 이해 없이 문자주의적, 근본주의적 이해로만 만들어진 예수를 말하는 것 그것은 종교다원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앞뒤 문맥 상관없이 자신이 필요한 구절만 인용하면서 자기타당성을 말하는 것 그것은 종교다원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교회의 전통을 부정하고 스스로 예수를 물질적 복을 위한 도구로 만들고 자신만의 천국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 종교다원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 되시며 참 진리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는, 자신이 보고자 듣고자 하는 대로 자기가 바라는 예수를 만들어놓은 것이 종교다원주의자와 무엇이 다른가?”
“삼위 하나님 되신 성령 하나님을 도구부리듯 하고, 은사 받기 위한 영이라 생각하고 마치 성령이 자신에게만 말하는 냥 남 앞에서 으스대는 것은 종교다원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성서의 원래적인 의미와 교회의 전통은 다 내버려두고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이란 낱말 하나를 방패로
자기만의 예수, 자기만의 성령, 자기만의 하나님을 믿는
그것은 종교다원주의자와 뭐가 다른가?”
“천년만년 해먹으려고 아들을 담임목사로 추대하면서 성령의 인도라 말하는 당신이 믿는 그 성령은 누구입니까?”
“예수라는 이름만 남았지 예수의 본질은 없는 그것, 그것은 종교다원주의 아닌가?”
열광주의, 신비주의, 기복신앙, 반공주의, 묵시문학, 신자유주의 등 여러가지 패러다임이 섞여있는 한국교회가 그렇게도 당당하게 믿는다고 고백하는 예수는 대체 누구인가?
소위 말하는 ‘박성업현상’ 그것은 박성업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박성업을 있게 한, 박성업현상을 있게 한 것은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이다. 본질이 없고 중심이 없는 우리 가운데 예수가 없는,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예수’로 만드는 것은 다원주의적이며 흔히들 그들이 많이 말하는 ‘우상숭배’ 아닌가? 즉, ‘박성업현상’은 신학의 부재에서 시작해서 신학의 부정을 당당하게 말하는 한국교회의 현재이다. 더 이상 ‘박성업현상’과 같은 것이 없기 위해서는 본회퍼의 고백처럼 ‘지금 현재 바로 이 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고민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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