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목회자2013.10.05 20:49



 요즘은 쉽게 정보를 찾고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그렇다보니, 사실 정보는 많을지 몰라도 그것을 능숙하게 경험을 가지고 알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다보니 온통 말뿐이다. 온라인상에서는 그런 걸 키보드 워리어라고도 부른다. 특히 목회자들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어찌나 입이 번지르하게 말만 하는지, 요즘 설교들은 화려한 정보로 넘쳐나지만 진정성있는 혹은 경험된 진실함은 빈듯 한 것이 사실이다.

매일 밤 자정즈음 라면을 사러 오는 아주머니가 계시다. 매번 다른 라면을 고르고는 늘 나보고 묻는다.

"이 라면 먹어봤어요?", "맛이 어때요?", "어떤게 더 맛있어요?"

그러면 나는 매번 늘 같은 말로 대답한다.

"먹어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해요"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늘 그 아주머니는 내 대답을 응수한다.

"맛도 안보고 파는 것도 문제지만, 먹어보지 않고 맛을 말하는건 더 나쁘지. 아저씨는 그래도 덜 나쁜거야. 앞으로는 먹어보고 팔아요~"

어떻게 매일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지 신기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어찌 가게에 있는 것을 다 맛을 보겠냐만은..

문득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목회나 설교를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설교를 혹은 목회를 할 때 제대로 알고 하는 것인지, 삶은 살아보고 설교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그것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면서 진정 그리스도인이라 말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은혜'라던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말씀을 말할 때, 진정 고민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살아가는 것은 그저 울리는 꽹과리처럼 소음 같은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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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목회자2013.09.28 16:38




매일 아침이면 오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되어보이는 여자 아이인데, 올때마다 김밥이나 도시락을 기웃거리다가 오백원짜리 '미니약과'나 '사과쿠키'를 사서 간다. 벌써 나흘째 같은 모습이다. 


예전 배고팠던 고등학교 유학시절, 모자란 돈을 가지고 항상 양많고 싸고 배부른 것을 고르느라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아침 안먹었니?'라고 물어봤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아차!' 싶었다. 괜시리 어린 마음을 다치게 한거 같단 생각이 들어서 였다.


아침 8시면 폐기하는 도시락이 있기에 재빨리 다시 물었다. 


"아저씨가 마침 아침 먹으려고 하는데, 사실 아침 8시면 저기 도시락 폐기하거든? 오늘은 도시락이 많은데 너도 먹을래? 레이디퍼스트니깐 너에게 선택권을 줄께"


그랬더니 잽사게 제육덮밥도시락을 골랐다. 조금 있다보니 이녀석이 1+1하는 음료수를 골라와서 내게 건내는게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네 인생은 말로는 '함께'를 말해도 사실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기 십상이다. 도움을 준다고 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도움을 주기도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해본다면 더 우리네 인생이 따뜻해질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단지 남과 나 사이 뿐 아니라, 친구나 가족 혹은 부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부분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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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목회자2013.09.07 23:55

 

 

 

요즘 이 시대는 무척 빠르다. 그래서 뭐든지 요약되고 생략된다. 요약되고 생략되다보니, 우리 마음도 요약되고 생략될 때가 참 많이 있다.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관계는 '이익에 의한 이해관계'만이 남아버렸다. 이런 삭막한 세상을 어찌 되돌릴 수 있을까? 한번의 웃음이, 한번의 인사가 바꿀 수 있을까?

 

아침마다 오는 조금 부족한 친구가 있다. 매일 아침 엄마와 함께 와서 이것저것을 고르고 사서 간다. 하루는 미션이 있었나 보다. 매일 같이 들어오던 그 친구의 어머니는 밖에서 기다리시고, 그 친구가 딸기우유를 골라 계산대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만원을 낸다.

 

난 돈을 받아 딸기우유를 바코드찍고, 비닐봉지에 담은 후 거스름돈과 함께 그 친구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그 봉지와 거스름돈을 받은 그 친구는 거스름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봉지 안을 살펴본다. 그리고 우물주물하더니,

 

"빨대 주세요"

 

그 말을 듣자, 아차 했다. 매번 음료를 사면 빨대가 필요하다고 넣어주고는 했는데 이 친구를 보느라 깜박했던 것이다.

 

"미안해요, 내가 깜박했네요. 여기 봉지에 넣어드리면 되죠?"

 

"네"

 

그러면서 환히 웃어준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마음 속 깊이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기서 다가 아니였다. 그 친구가 나가면서 말한다.

 

"내가 더 미안해요"

 

밖에서 아들은 그 딸기우유에 빨대를 꽂아 엄마에게 준다. 엄마는 아들 먹으라고 다시 돌려준다. 아들은 한사코 엄마가 한 모금 마시길 원했던지, 한참 후에 엄마가 한 모금 마시자 그때서야 우유를 돌려받고는 엄마 뺨에 입을 맞추며 깔깔대며 웃는다. 엄마는 그런 아들 머리를 쓰다듬고, 같이 걸어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과 소통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쩌면 더 단절을 경험했던거 같다. 그런데, 이 모자를 보면서 나는 소통을 넘어, 이제까지 나 자신도 마음의 생략과 요약을 하고 있었단 걸 그 모자를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고마움'을 느꼈으리라.

 

교회 역시, 그리스도인 역시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사실은 따스한 관계도, 사랑도 없는 그런 모습. 그게 지금 우리이지 않을까?

Posted by 숑숑숑~
편의점 목회자2013.07.04 07:24

 

 

나이가 들면서, 형식적인 부분이 많아지는 걸 느낀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감사할 일인데도, 이 몸 하나 편하고자 쉽게 물건을 사서 던져주듯 주고는 그 값어치가 마치 내 마음의 양인냥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이 며칠 전부터 편의점 문밖에 진열 되어있었다. 7-8살정도되는 여자아이가 오전 7시반정도부터 8시넘어까지 앞에서 왔다갔다 했다.

 

어린 꼬마가 이른 시간에 오래 편의점 앞을 어른거리니까 조금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해서 나가서 물어봤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뭐라도 잃어버렸니?"

 

그러자 아이가 대답한다.

 

"오늘 어버이날인데 이게(카네이션세트)가 너무 비싸요. 어제 엄마라 여길 지나가며 이 카네이션 드리기로 약속했는데.."

 

이렇게 말하면서 울먹거린다.

 

그 어린 마음을 생각하니 기특했고, 그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얼른 카네이션을 들고 계산해주었다. 부족한 금액을 내가 부담하고(오천원정도 내가 내주었던것 같다) 계산하자, 아이가 갑자기 막 울기 시작했다. 나도 아들있는 부모 마음에 '이녀석이 나름 힘들게 이야기했고, 또 놀랐구나'란 생각이 들어 얼른 안아주고 달래줬다. '나중에 오거들랑 아저씨 박카스하나 사주라'란 말과 함께.

 

카네이션 들고 돌아가는 아이를 보니, 괜시리 내 부모님이 뵙고 싶어졌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는 물질과 상관없이 부모님을 위한 마음,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위한 절실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는가 생각해보았다. 정말 바라는 것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을 향한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놓치고, 중요하지 않은 행위만 남아 있진 않는가?

Posted by 숑숑숑~
편의점 목회자2013.07.03 07:27

 

 

우리는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쉽게 남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참 많다.

 

한번은 술 취한 분이 와서 소주를 계산하고, 갑자기 사탕을 한 움큼 집고 나가며 말한다.

 

"이만큼 샀으니 요정도는 공짜로 줄 수 있지?"

 

내가 너무 당황해서 말했다.

 

"가져가시면 안되요. 계산하시고 가져가셔야죠?"

 

그랬더니 욕을 한다. 그리고는 '어디 손님한테 함부러 말하느냐?'고 말한다. 본인의 행동은 생각하지 않은채 말이다. 행여 사람들과 감정적 대립이 있을때는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라는 아내의 조언이 있었기에, 침착하게 담담하게 이러이러해서 잘못한 거라고 설명을 했다. 술이 취해서인지 그 소리가 잔소리로 들렸는지 더 화를 낸다. 결국 화를 주체를 못해 스스로 경찰서에 전화를 한다.

 

"너 같은 놈은 경찰서에 끌려가야 돼"

 

"경찰서죠? 여기 OO편의점인데, 아니 물건파는 녀석이 사탕 몇개로 시비를 거네요. 좀 잡아가세요. 알바새끼가. 직업도 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 어디서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서오세요"

 

순찰돌던 경찰이 왔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그 어르신에게

 

"어르신, 어르신이 잘못하신겁니다. 이거 그냥 가져가시면 절도죄예요. 거기다가 욕도 하시고 이러시면 안됩니다"

 

경찰이 내게도 말한다.

 

"수고하십니다. 일 크게 안만들고 그냥 달래서 돌려보내도 될런지요?"

 

"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는 경찰 두 명이 그 어르신을 데리고 나갔다.

 

술에 취해 한 행동과 말이니 이해를 하지만, '알바새끼가!, 직업도 없는 놈이!'란 말은 참 가슴이 아팠다. 나야 뭐 그러려니 하는데,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청년들이 있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이 경우는 술에 취해서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것이지만, 손님들의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다. 뭐랄까? 딱 이렇게 직접적이진 않아도, 은근히 무시하시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왜 그럴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도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과, 그 저변에는 타인의 입장을 생각지 않는 것이 깔려있어서 일테다.

 

이런 행위는 이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교회 안에도 타인의 입장과 생각을 하지 않는 말들이 많고, 그것이 교회 내의 문제가 되는 경우가 참 많이 있다.

 

특별히 목회자들의 언변은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 나도 목회자 이지만, 물론 목회자들마다 여러 설교들을 하고 다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야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가끔 장례식장에 가거나, 병문안을 가거나, 집안에 여러 일들이 있을때 가서 위로를 하기보다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기도 한다. 위로의 설교와 이야기를 하는 그 목회자는 그것이 상처가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그런 경험을 겪어본 적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고, 그 아픔을 겪은 이들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생각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혼한 가정과 그 경험이 있는 가족들에게 이혼이 마치 잘못된 죄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과정은 보지 않은 채 단순 결과로만 판단하는 것은 전혀 그리스도교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리어 바리새적인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질병을 가지고 돌아가신 분들이 계시고 간혹 평안히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신데,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신 고인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다고 말한다면, 상대적으로 거기 참석한 그렇지 않은 많은 이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어떤 질병을 가져 병문안가서도 그 질병을 악한 것이나 사탄에 의한 것으로 쉽게 규정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무서운 말일까?

Posted by 숑숑숑~
편의점 목회자2013.07.02 10:07

 

외국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바로 '바쁘다'이다. 공항에 내려서부터 사람들을 바라보면 모두들 여유보다 무언가를 바삐해나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조류에 묻혀 덩달아 바빠지곤 한다. 가끔은 특별히 한 일이 없는데도 온 하루가 바빴던 느낌이 들 정도다.

 

목회를 하면서도 그랬다. 신앙이 바삐 또 열심히 뭔가 한다고 더 주께 가까이 가는 것은 아닐텐데, 숨을 헐떡거리며 모두들 정신없이 봉사고, 기도고, 예배고, 심지어는 성찬과 예찬(점심)까지 한다. 잔잔히 주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듯 말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밤에 오는 손님들은 느리다. 좀비같다. 술에 대부분 취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느리다. 하지만 해가 뜨고 아침이 되면서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걸음걸이부터 빠르고, 물건도 빨리 올려놓고, 계산도 빨리하라고 재촉하며 재빨리 떠난다. 그런데, 이상한 여고생을 만났다.

 

저기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도 여유로웠다. 마치 영화에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느린 모습의 주인공을 잡는듯 말이다. 편의점에 들어오는 모습과, 샌드위치를 고르는 모습까지 여유로웠다.

 

아마도 아침을 안먹었나보다. 샌드위치를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아저씨, 교통카드로 계산해주세요"

 

교통카드가 읽히는 동안, 난 이 특별한 여고생에게 궁금했던 걸 물어보았다.

 

"고등학생이죠? 요즘 학교수업 몇시부터 해요?"

 

"8시 10분이요~"

 

시간을 보니 오전 7시 35분에서 막 36분으로 넘어갔다.

 

"학교가 근처인가 보네요?"

 

그 여학생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뇨~ 여기서 멀어요"

 

그리고는 계산된 샌드위치를 전자렌지에 살짝 돌리는 여유까지 부린다.

 

"늦게 가면 뭐라하지 않아요?"

 

"빨리 급하게 간다고 성적이 막 오르는 것도 아닌데요 뭘."

 

그리곤 느긋하게 샌드위치를 먹으며 걸어간다. 난 그 여학생이 사라질때까지 뒷모습을 봤는데 여전히 느긋했다.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네 삶이나 신앙 모두 매우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삶을 영위하기 보다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들을 얻기 위해 바쁜 모습이나, 주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에 대해 생각하거나 음미하며 누리기보다는 구원과 천국 혹은 복을 얻기위해 바삐 몸부림을 침으로서 주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고 있진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조록 하루동안 사소한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그것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순간순간의 시간을 풍성하게 누림으로 하루의 삶 역시 꽉 찼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Posted by 숑숑숑~
편의점 목회자2013.07.02 08:31

 

 

'우리는 진정 삶을 바라보고 있을까?'

 

난 항상 이것이 고민이었다.

흔히 사람은 자기의 고정화된 틀 밖으로 나가길 싫어한다. 그 안에서 머물면서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일반화, 보편화시켜버린다. 또한 사람들은 현실의 괴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처럼 바라는 경우가 참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네 TV를 틀면 어김없이 현실적이지 않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꿈같은 사랑노래에 흠뻑 젖어들곤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진정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란 존재는 목회자로서 그 바운더리 안에서만 살아왔다. 그랬기에 '내가 진정 삶을 바라보고 있을까?'라는 고민은 매우 큰 것이었다. 예수는 신에서 인간 그것도 가장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과 함께 했다. 모세는 왕궁을 벗어나 소똥을 밟고 살고 있을때 부름을 받았고, 아모스 역시 양을 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 자신을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고정화된 틀'이 과연 보편적 인간의 삶인지를 생각해볼 줄 알아야하고, 특히나 '목회자'라면 더더욱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을 마주하며(대면하며) 사는가의 집중'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마주하셨듯,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모든 것에 진실로 마주하며 산다는 것. 그것이 참 인간,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하나님께로의, 세상에게로의 '사랑'일 것이다.

 

그런 고민이 하며, 사회의 이슈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본 뉴스가 바로 '편의점 점장들의 자살'에 대한 것이었다. 동네에도 서너개씩 있는 편의점. 24시간 쉬지않고 손님을 마주하는 그 곳에 대체 어떤 일이 있기에 자신의 목숨을 그리도 많이 끊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제껏 그 곳을 손님의 시각으로만 경험했었기에, 만약 손님들을 만나는 다른 관점을 가진다면 그 손님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진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이 이슈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 즈음, 필자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몸이 아파 잠을 못자다보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그렇다고 낮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돕던 교회에 주일만 사역을 하게 되었고, 평일의 시간 이왕이면 잠을 못자는 밤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이 이슈를 보았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날짜를 보니 딱 노동절(5.1)이었다. 인계받으며 그 날부로 그만두는 청년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부사관시험을 준비하려 그만둔다고 한다. 그 뿐아니다. 고3 아들 사과사준다고 200원 외상하는엄마, 아침 해장으로 소주를 외상해달라는 아저씨, 담배와 연이 먼 나에게 담배 위치를 알려주며 웃는 어르신, 새벽에 꼬맹이들 음료수 사준다고 같은거 찾아달라는 엄마, 회식하고 집으로 가는길 아들 좋아하는게 뭘까요 묻는 아저씨, 엄마 손에 울며 와서는 끝끝내 콜라 하나 쟁취해서 빙긋 웃는 초딩, 부대 복귀 전 어머니 좋아하는 음료수 한박스 몰래 사다놓고 간다는 잘생긴 군인아저씨. 

이게 모두 간밤을 지나며 만난 우리네 사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에 연연하며 진정 삶을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스도인 역시도 '천국'과 '복' 그리고 '신앙' 앞에 '삶'은 버려두고 있지 않은가? '삶'없이 '신앙'은 없고, '삶'없이 '구원'과 '천국'이 있을수 있을까?

 

이 이야기들은 그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너의 이야기이며, 너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Posted by 숑숑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