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단상/신학적 궁금점들

개신교와 가톨릭

숑숑숑~ 2010. 3. 22. 20:57
'정통개신교의 입장'의 틀부터 말씀드릴께요.
이 교회에서 이렇게, 저 교회에서 저렇게, 혹 아무이야기도 듣지 못해서 혼자 성경보고 말하는 분들과는 다른,
'정통개신교의 입장'은..
약 2000년전 교회 성립 이후 정통 가톨릭의 입장에서
종교개혁 이후 칼빈과 루터 그리고 신정통주의 바르트에 이르는 정통 개신교의 입장을 말합니다.
덧붙혀 제2차 바티칸회의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이 만나 개신교가 주장하고,
그리고 가톨릭이 동의하거나 이해한 입장을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회의 이후 현재 가톨릭은 개신교를,
정통개신교는 가톨릭을 '주 안에서 형제'로 존중하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 교회에서 가톨릭을 이단이다.
혹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신학적 교육이 없다란 생각을 합니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계 지도자들이 지들마음대로 편을 가르고 그것을 양적 성장에 빗대어 신학적 인식없이 까대는 것
그것이 더 비성경적이며 우상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의 뿌리가 가톨릭이며, 교리적 기준에 대한 우선성의 차이가 있을 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함께 창조질서의 생명을 가꾸어나가야할 동력자 입니다.
모두 그리스도교. 즉 기독교입니다.

교리적 기준에 대한 우선성의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냐?
간단히 말하자면,
가톨릭은 교회론을, 개신교는 기독론을 중시함에서 나타납니다.

즉. 가톨릭은 교황으로부터 사제 그리고 신도에 이르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우선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체의 우선성은 옛적 베드로, 바울에 이르는 사도적 계승성.. 바로 교황의 우선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황으로 부터 이어지는 직제의 중요성이 완고한 편이지요.
다시 말한다면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질서를 중요시 합니다.
예수 이후 사역의 중심은 거대한 교회가, 결정권은 교황이 갖기 때문에
밑에 글에서 나오는 교리적 문제에 있어서 '교회적 입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리아(밑에 마리아 관련부분은 밑에서 따로 다룰께요)에 관한 입장들이 교황에 의해 결정되지요.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직제는 이단이나 여러 성경의 자의적인 해석들을 해결할 수 있지요.
하지만, 교회라는 단체의 우선성과 교황의 우선성은 때론 정치적이 될 수 있어서 여러문제들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성서라는 절대적 권위를 두고, 역사적으로 교황의 임의로 결정한 것들이 많았지요.
교회사적으로 볼때, 3세기 전까지는 베드로의 수장직(교황우선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4세기 이후 국가교회가 되면서 전권을 잡기위한 수단으로서 생기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가톨릭의 교회론은
개신교의 최대 약점인 '교회의 일체성'를 가지고 있지요.

그에 반해 개신교는 기독론을 중시합니다.
기독론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종교개혁 당시 사회는 교황으로 부터 이어지는 직제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사제들만 볼 수 있게 되어버리고, 정치적으로 교황이 권력을 잡고 있었음으로
성경의 해석에 따라 국민들은 권력의 시종이 되었지요.
그래서 면제부 같은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톨릭의 교회론은 교회의 일체는 가져오지만, 부패하면 개혁을 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루터나 칼빈이 종교개혁을 할때 외쳤던 것이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사제가 아닌 그 누구도 예수께서 주신 말씀을 읽을 권한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으로 라틴어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그당시 인쇄술의 발전으로 누구에게나 성경을 보급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성경의 보급은 당시 가톨릭의 부패를 바로 알게 되는 사건이 됩니다.
누구나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읽음으로서 당시 정치적 부패와 기득권 위치의 교회의 잘못을 알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루터나 칼빈은 종교 즉, 가톨릭을 개혁하길 원했지, 개신교라는 이름으로 따로 나오는 것을 끝까지 부정했습니다.
그때 가톨릭이 루터나 칼빈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이들을 출교시킴으로서 어쩔 수 없이 분리가 된 것이지요.
이후 제2차 바티칸회의에서 이러한 것들이 회복되었지요.
가톨릭 스스로 그때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상호간의 이해를 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국제적 상황따윈 상관없이 지들 교회만 불리는 것에 눈을 돌리다보니
가톨릭은 이단이다 뭐다 하며 스스로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 그렇게 하진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톨릭과의 교류를 많이 했었죠.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도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님의 경우는
성서 번역본 중 '공동번역(가톨릭과 개신교 같이쓰는 성경)'에 시편을 번역하시기도 했지요
이야기가 너무 울타리를 넘어 가네요.
다시 돌아와서 개신교는 위에서 제가 언급한 역사적 배경안에서
교황이라는 직제에서 오는 가르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두가 성경을 읽음으로서 예수를 이해하는 것을 우선하게 되죠.
하지만 이것은 옳은 것이지만 많은 위험성들이 내포되어 있지요.
지금 대한민국의 개신교 문제가 바로 이런 위험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의 부재로 인해 맘대로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걸 설교하기때문에
기복적 신앙이 형성이 되었지요. 정치적 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했지요. 문제입니다.
해결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정통적인 신학의 입장을 꾸준히 공부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분명한 정통 신학의 입장이 있는 데,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런 것을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신학은 학교에만 있고 교회에는 신앙만 있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니 과거 종교개혁당시의 부패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요..
'신'에 대해, 절대자에 대해.. 피조물이 어찌 자의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수천년을 이어온 보완되어온 신학의 입장을 평생 공부하며 가르치는 것이 개신교의 해결책이지요.

근래에 들어 가톨릭과 개신교는 수많은 대화를 합니다.
특히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큉의 경우는
가톨릭의 직제성에 대해 강한 부정을 함으로 교황으로 부터 목숨이 위태롭기도 했지요.
어느 한쪽이 옳다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율성과, 교회를 지키고자하는 공동체성이 함께 되어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자, 이렇게 정통개신교의 입장(개차반같은 일개목사의 말이 아닌 신학적 정통성)으로서
밑에 글에서 언급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첫째, '천주교는 성모마리아 믿잖아 예수님을 믿어야지 왜 성모마리아를 믿어?'의 문제.
우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가톨릭은 성모마리아를 믿지 않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마리아는 신이냐 인간이냐의 문제가 대두된적 있지요.
하나님인 예수를 낳았으니 사람일 수 있느냐? 인데.. 성경에는 마리아는 보통 사람으로서 성령을 통해 예수를 낳았죠.
그런데 여기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의 차이가 생깁니다. 가톨릭은 직제를 중요시 한다고 제가 위에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성자라던지, 교황을 존경하도록 가르치죠. 거기에 마리아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우리가 스스로 기도하는 것보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 기도를 부탁함을 전하는 것이죠.
즉, 가톨릭은 교회 전통에서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을 보여줌으로서 그런 삶을 살도록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인물에 대해 존경을 넘어선 맹목적 신앙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교리를 분명히 이해못하는 신도들이 마리아를 믿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는 십자가문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가톨릭 십자가에는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이 있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 가톨릭은 십자가를 봄으로서 예수님의 고난을 바라보며 우리 삶을 겸손히 살라고 가르치고,
개신교는 예수의 삶은 고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빈 십자가'
즉,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고난 넘어 부활한 하나님인 예수를 우리가 믿음으로 십자가에 예수가 없는 것이지요.
가톨릭의 입장, 개신교의 입장 둘다 틀린 것이 없지요.
다만, 교회 내의 성도들의 삶을 우선시 하느냐?(교회에 대해 겸손한 성도를 바라느냐)
아니면 교회 안에서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같음 즉, 하나님이신 예수가 중요함을 우선시 하느냐? 에 다름이 있을 뿐이지요.
개신교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만인은 예수 안에서 평등의 개신교 의의를 목회자들이 이용하는게 문제이죠.
이렇게 마리아에 대해 가톨릭은 존경을 넘어설 여지가 있는게 문제이고
마리아에 대해 개신교는 일개 사람이란 이유로 마리아의 그 힘든 삶조차 무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천주교는 성모마리아 믿잖아 예수님을 믿어야지 왜 성모마리아를 믿어?'의 문제는
신학의 부재로 생긴 말도 안되는 억측이요, 한쪽만 맞다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모순입니다.

둘째, 삼위일체의 문제.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는 언급이 참 어렵습니다. 단어하나에 이단이 되거든요.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가장많은 이단이 여기서 부터 나오지요.
니케아회의(AD351)전까지 예수가 신이나 사람이냐에 따른 논쟁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겨우 니케아-칼케돈회의까지 하나님과 예수에 관한 부분은 정립이 되었으나 성령에 관한 부분은 거의 미미했죠.
현대에 와서는 카톨릭은 성령에 대해 미흡하고, 개신교는 너무 성령성령하다보니 무슨 무속신앙과 비슷하게 되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성령은 동일하나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습니다.
The Nicene Creed (325 A.D.)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begotten from the Father, only-begotten, that is, from the substance of the Father, God for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through Whom all things came into being, things in heaven and things on earth, Who because of us men and because of our salvation came down and because incarnate, becoming man, suffered and rose again on the third day, ascended to the heavens, and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in the Holy Spirit.
But as for those who say, There was when He was not, and, Before being born He was not, and that He came into existence out of nothing, or who assert that the Son of God is of a different hypostasis of substance, or is created, or is subject to alteration or change-these the Catholic Church anathematizes.
일부러 영어로 올립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번역단어로 이단이 될수 있어서 ㅎ
제가 기독론에 관해 아이들에게 가르친 자료를 올릴테니 이 부분이 궁금하시면 파일 참조하세요^^

셋째, 안식일.
옛적부터 히브리사람(이스라엘)들은 안식일에는 모든일을 하지않고 쉬었지요.
그래서 자신의 나라가 함락되기도 했었죠^^;
안식일에 대한 개념은 크게 두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섯 첫째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쉬셨다는 의미로 피조물이 우리가 하나님께 창조세계에 대한 감사와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죠.
이부분은 예배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둘째는 그 당시나 지금에도 노동이 착취되는 사람들이 있지요.
기득권이나 경제논리에 의해서 쉴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율법에서 안식일을 쉬라고 말한 이유는 노동을 착취당하는 이들에게도 쉼을 주는 것이죠.
가장 약한자와 가난한자를 돌보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회다니는 사장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쉼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은 예배열심히 드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잘못이해하는 것이죠.
이런 두 가지 의미로 안식을 하는 날을 지내는 겁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시작과 끝나는 시간은 어찌 될까요?
현대는 자정으로 시작되서 그다음 자정까지 시간을 하루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은 해가 지는 날로부터 그다음날 해지기까지가 하루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식일은 금요일저녁부터 토요일저녁까지가 되어버리지요.
이후 콘스탄틴 대제(284?-337)가 일요일에 공적 휴식의 날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죠.
중요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태양신의 날을 차용해서 일요일을 주일로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개종이후 그는 위에서 제가 말한 안식일의 의미를 알고 시행했다는 것입니다.
타 종교와의 타협이 아니라 그 문화권에서 합리적으로 사람들을 쉬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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