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부분에서 성전의 운용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제사장)들에 대해
나머지 지파들이 십일조와 각종 제사 재물로 그 운용을 했었지요.
이것이 신약에 와서는 교회공동체로 바뀌어집니다.
덧글들을 보니 구약이 끝났고, 예수님이 오셨는데 무슨 십일조냐? 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십일조' '감사' 등등의 헌금 이름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신약시대의 초대교회에도 헌금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 기초는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 성립 자체부터.. 였고,
이후 사도행전 4장 말미부터 6장까지에도 그 모습이 나오며,
고린도후서에서는 사도바울이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을 모금하는 것이 나옵니다.
요점은 바로 이겁니다.
교회 '공동체성'
헌금을 하는 이유는 교회가 잘 살자. 배부르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가족들을 돌보고, 그 가족들이 모이는 곳을 정비하고, 이웃들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교회가 성립할 당시 처음 하던 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었고,
예수를 믿는 이(전과 같이 자신만의 삶이 아닌, 예수를 따르는 삶을 시작한 이들)들 젤 먼저한 것이 이것이죠.
그리고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도..
'공동체성'이 아닌 '개인' 소욕에 따름으로 해석해야 되죠. 성령을 훼방 -> 예수를 따르지 않은 -> 공동체성상실.
교회란 철저히 머리된 예수를 따르는 지체들의 공간이요 모임자체요 공동체성입니다.
개개인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 함께 돕고 함께 나눈다는 의식이 가장 중요하기에 헌금을 하는 것이죠.
성찬의 의미도 그런 데에 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럼에 있어서.. 헌금은 교회공동체에 속한 이들이 공동체를 위해 해야할 의무가 되겠지요.
하지만 마음과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하되 개인의 소욕을 우선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개신교 내의 헌금에 대한 문제는 두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가 헌금의 운용을 성경적으로 하고 있지 못하다.
둘째, 성도들이 헌금에 대한 인식과 성경적 지식 그리고 신학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목회자들이 헌금을 강요하기보다, 교회 공동체 내의 각 개인 참여와 의무를 교육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들고,
그렇게 모여진 헌금들이 과도한 부동산이나 교회건축이 아닌, 공동체 내의 나눔과 돌봄 그리고 이웃에게 돌아갔음 하는 마음입니다.
예외적인 이야기지만.. 올해 제가 맡고 있는 유치부-청년부까지.. 헌금에 대해 알려주려고..
장농속에 굴러다니는 동전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용돈중 거스름돈들을 모으락 했었습니다.
4주 동안 모은 돈 20여만원. 작다면 작은 돈, 크다면 너무나 큰 돈.
이것으로 '세이브더칠드런'내에 있는
국내어린이도시락돕기 4건, 아프리카친구들 양 한마리,
2명이 학교다닐 수 있는 공산품, 신발, 그리고 신생아보호키트 등을 전달했습니다.
지금 세대가 부패하더라도,
다음세대들에게는 세상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헌금이고 공동체를 살리는 것임을 알려줘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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