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세례는 이레니우스의 문헌에서 언급된 것을 시작으로 어거스틴에 이르러서는 광범위하게 교회에서 행해졌습니다. 유아세례 반대자들은 이레니우스 이전에는 유아세례에 관한 문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행해지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는데, 사실 초기문헌이 원래 많이 남아있지 않은 점을 보면 그 근거는 희박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후 종교개혁 당시 루터나 칼빈은 유아세례를 지지했고 제세례파가 반대함으로서 논쟁이 있었으며, 영국에서 시작된 침례교에서 유아세례는 성서적이지 못하다는 견해로 베풀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성서적이지 못하다보다는 침례교 생성배경이 국가와 종교의 분리와 성결을 강조하다보니 나왔다고 봅니다).


  사실 성경적 유래를 보면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축복하시며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며 세례없이 구원(천국)을 언급하셨다는 것에 유아세례가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즉, 초기 교회에서는 유아세례가 구원의 증거라기보다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어린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과부와 나그네, 어린이). 그런 존재 자체도 하나님께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과 교회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당시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생명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속한 자녀임을 인정함으로서 공동체의 책임성과 생명을 강조한 것이죠.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 오면서 국가교회로 바뀌게 되고 종교와 국가가 일치되면서 유아세례가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고 보여집니다(부모의 의지에 의해 한 아이가 세례를 받음으로서 교회의 교인, 국가의 국민이 됨). 이런 종교, 정치적 행태가 교회 역사 가운데 계속 유아세례 논쟁을 낳게 된 것이죠.


  즉, 다시 말한다면 유아세례의 정신은 이해하나, 그 행위 자체가 구원의 방법으로 이해되면 그건 그리스도교적이지 못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구원이란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회개가 선행되어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는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으로 인식된 자가 예수를 따르기 위한 결심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으로 보면 '유아세례 예식' 자체는 어떤 구원의 행위로 볼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아세례가 잘못되었다라곤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아세례를 받을때 고백은 그 유아가 아닌 부모와 그 공동체에게 있기 때문이지요. 즉, 이 유아에 대한 책임성이 강조되는 것이지 유아자체의 구원에 대한 증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보면 교회 공동체라는 성격에 가장 부합되고 있는 것이 유아세례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은 유아가 아닌 유아를 위한 공동체의 고백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유아세례'의 예식(행위) 자체가 구원의 증표가 될 순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유아세례는 중요하다. 1. 한 어린 생명 역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 2. 교회공동체의 공동체성에서 공동체 일원이 가져야 할 책임성.


다음의 부분은 제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헌법에 있는 유아세례에 대한 이해부분입니다. 헌법의 부분도 제 견해와 비슷함을 가지네요 ㅎ


  "구약시대에 할례를 베풀어 유아도 은총의 언약 아래 있게 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세우신 새 언약에 들어가는 표인 세례를 유아에게 주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유아세례는 그들이 신앙으로 응답할 수 있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이다. 이 세례는 부모 가운데 한 사람 이상이 세례교인일 때 베풀 수 있다."


Posted by 숑숑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