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서는 사도행전도 이 분류로 들어갑니다. 지혜서 - 잠언, 욥기, 전도서 등 시가서 - 예레미야애가, 아가, 시편 등 시적 운율이 있는 책들입니다.
시는 시로 이해해야 더 좋겠죠? 예언서 -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말라기 묵시서 - 에스겔, 다니엘, 요한계시록 복음서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서신서 - 로마서~요한3서
기록 시기는 구약은 수 천년, 신약은 AD50-200사이로 추정됩니다.
2. 성서 정경화작업.
구약의 경우 AD70년경 예루살렘성전이 멸망당하면서,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변하게 됩니다.그럼에 있어서 종교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점이 '같은 성경'을 읽어야되는 점이 되지요.그렇게 해서 AD90년경 Jamnia얌니아회의를 통해서 구약정경화작업이 끝납니다. 우선 위에서 말씀드린 모세오경은 구약시대부터 가장 먼저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고(에스라시대),다음은 예언서가 정경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주전 2세기경 : 이때는 개신교에서 외경으로 불리고 가톨릭정경들이 1차적으로 정경이 되었었던 시기입니다),마지막으로 5경과 예언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이 회의에서 비로서 유대학자들로 정경으로 채택되었죠.
여기서 잠시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약정경 수가 다른 이유를 설명해야되는데요. 개신교는 이 Jamnia얌니아 회의의 정경수를 따르고 있고(39권),가톨릭은 예수시대 흔히 읽혀졌던 7권들도 정경에 넣고 있는 차이가 있지요.이에 반해,신약성경의 경우는 기록연대가 AD50-200년 사이이고, 정경확정의 시기가 AD300-400년에 이루어집니다.구약성경과 달리 신약성경의 정경확정 이유는 말시온이라는 이단 때문인데요.이들이 먼저 자신들이 유리한 문서들만 정경작업을 함으로, 기존 정통교회도 정경화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경화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몇가지 점이 있는데, 1. 사도성(사도의 기록이 중요), 2. 정통성(예수의 말씀본질과, 교회전통에 맞는가) 3. 보편성(방대한 지역의 교회에서 성도들이 많이 읽었던 기준) 이 세가지 기준을 가지고 정경화작업이 되었습니다. 한가지 재미난 점은 당시는 지금처럼 인쇄작업이 쉽지도 않았고,이동이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공동체 서로간의 대화도 쉽지 않았는데대서양 전역에서 현재 27권의 성서 중 요한계시록을 뺀 26권은 거의 동일하게 정경으로 읽혀졌고 주장되었다는 점이죠.
3. 성경 사본에 관해.
앞서 1번과 2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성경은 통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각 권의 저자가 있다. 둘째, 이 낱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정경의 형태를 띄게 되었고(AD200경부터), AD400년경에 정확히 지금의 정경형태를 갖추었으며, 나중에 요한계시록에 관련하여 동방정교회와 가톨릭간의 마찰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수많은 쪽복음 즉, 사본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AD400년 이후 성경전체(신약성경)를 갖춘 사본들도 발견이 되었지만,그 이전 사본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것이지요.중요한 것은 신약성경 본문 전체의 사본보다, 각 낱권의 사본들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여러분 1번과 2번을 자세히 읽어보셨으면 어렴풋이 눈치를 채셨겠지만,당시는 지금처럼 인쇄기술이 발달되지도 않았고, 이동의 기간이나 교류가 빠르고 넓지도 않았다는 겁니다.즉, 신약성서의 저자의 손에서 나온 원래의 문서 그 자체는 오늘날 하나도 보존되어 있지 않고후대의 사람이 그것을 손으로 베껴 쓴 이른바 필사본(筆寫本)들만 남아 있다는 것이죠.
한 예로 그리스어 필사본을 조그마한 조각들까지 합치면 수가 5,500개가 넘는데요,이 필사본들끼리 비교해 볼 때 본문이 똑같은 것이 단 두 개도 없으므로어느 것이 원본문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인지 저절로 식별되지 않습니다.
다시말하자면,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문서의 재생산은 오직 필사 작업에 의존했는데,필사 작업이라는 것은 아무리 정확하게 원본 그대로 베껴 쓰려고 노력하더라도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흔히 생길 수밖에 없지요. 어떤 낱말이나 어구를 누락하거나 반복하는 것,어떤 낱말을 그와 비슷한 다른 낱말로 착각하여 바꾸어 적는 것 따위는 비고의적 실수에 속하는 것들이 있고,(한 예로 불가타성경에서는 모세에 관한 부분 중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씌었다는 부분이 '뿔'이란 단어로 적혀서유럽의 모세상을 보면 뿔이 달린 모세상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와 달리 필사자가 대본을 자기의 입장에서 의도적으로 고치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한 예로 난해한 말을 쉬운 말로 풀어 쓰거나 어색한 표현을 좀더 정교한 표현으로 고쳐 쓰거나어떤 낱말을 다른 낱말로 대체하거나 어떤 낱말이나 어구를 다른 위치로 옮기거나어떤 내용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교리적 해석을 덧붙이거나 하는 것 따위는비록 선한 동기에서 기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고의적 변개(變改)에 속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쇄술 이전 시기에는 각 지역에 따라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다른 필사본들이 그들 각각의 성경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물론 한 명의 저자가 각 낱권을 성령을 통해 기록했지요. <- 이것은 변개되지 않은 성경의 모습이라 할 수 있죠.하지만, 현재 원문은 남아있지않고, 각 지역공동체마다의 필사본들이 있을 뿐입니다.앞서 설명했지만 5천개가 넘는 필사본 중 완전히 똑같은 것은 단 두개도 없습니다.왜냐 고의든 비고의든 공동체의 상황과 문화에 따라서 필사본이 첨가 삭제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원문성경 즉 변개되지 않은 성경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비평방법이고, 석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와 달리 정말 변개되지 않은 사본을 주장하면서 특정한 번역성경 혹은 사본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그것은 기본적인 사본에 대한 이해도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좋은 사본들이 발견되어왔고(사해사본-밑의 사본군 참조바람 등), 그것에 따른 성경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만약 특정한 사본에 의한 특별한 성경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한다면,앞서 제가 설명드린 1-3번의 내용을 보시면 이해되지만 이건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성경을 우선시하고, 그 성경의 우위를 위해 특수한 사본들이 중요하다는 말이 되니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변개되지 않은 사본이 있다고 주장하고,그렇게 원문의 중요성을 나타내면서 번역성경을 원어성경보다 더 중요시하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죠.단순하게 비평학 및 사본학에 대해 '짧은게 더 중요하다', '오래된 게 더 중요하다'는게 말이 되냐고 따지지요.
정말 궁금한 것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변개되지 않는 사본군이 무엇이며,그 외에 다른 사본들은 어떤 기준으로 잘못된 변개된 사본군이라 주장하는지 의문입니다.
현재 존재하는 사본군에 대한 설명
1 구약의 사본 1) 맛소라 사본 주후 1세기말에 유대교 정화 및 통합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때 이미 히브리어 구약성경 표준사본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죠. 1948년까지는 구약성경의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주후 9세기말에 맛소라(Massora) 학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9세기 이전의 히브리어에는 띄어쓰기나 모음 기호, 악센트, 구두점 등이 없었죠. 이로 인하여 일어났던 독법상, 기록사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맛소라 학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소위 '맛소라 사본,(The Massoratic Text)을 완성했습니다. 2) 사해 사본 1947년이래 이스라엘의 사해 부근의 쿰란(Qumran)이라는 동굴에서 고대의 두루마리 책들을 발견했는데, 거기에서는 구약의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성경의 사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조각들은 파괴된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발생 시기를 전후하여 씌어진 것들로 거의 2,000여 년을 보존되어 왔던 것들이었죠.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쿰란 사본들이 맛소라 사본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것이 판명되었다는 점입니다.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맛소라 사본에 대한 신빙성은 더욱 확증되었죠. 이외에도 카이로의 게니자(Genizah)에서 발견된 사본들도 많습니다. 이 사본들은 주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서 칠십인역(LXX), 사마리아 오경, 시리아 성경(페쉬타)등과 함께 맛소라 이전 상태의 사본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신약의 사본 1) 알렉산드리아 본문(Alexandrian Text) 알렉산드리아 본문은 원래의 본문(原本文)을 보존하는 데 가장 충실하며 따라서 가장 좋은 본문이라 할 수 있다. 웨스트코트(Westcott)와 호르트(Hort)는 이것을 중립적 본문(neutral text)라 일컬었다. 알렉산드리아 본문의 특징은 간결성(brevity)과 엄밀성(austerity)이다. 일반적으로 이 본문은 다른 형태의 본문보다 더 짧다. 이 본문에는 문법적으로 다듬거나 문체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없다(이러한 흔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문은 맨 마지막에 말할 비잔틴 본문이다). 이 본문을 증거하는 주요한 사본은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과 4세기 중반에서부터 생긴 양피지 사본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보드머 파피루스(Bodmer Papyri)를 발견함으로써 약 2세기 말과 3세기 초에 필사된 p66과 p75 파피루스 사본도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제시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은 일찍이 2세기에 유포되었던 한 원형(archetype)에까지 소급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히드어(Sahidic) 번역본들과 보하이르어(Bohairic) 번역본들도 전형적으로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의 읽기들을 포함하고 있다. 2) 서방 본문(Western text) 이 본문도 역시 시기적으로는 2세기에까지 소급될 수 있다. 이 본문은 이탤리(Italy)와 골(Gaul), 그리고 또한 북 아프리카 지역에 널리 유통되었다. 이 밖에 이집트를 포함한 다른 지역에도 유통되었을 것이다. 약 A.D. 300년에 생산된 p38과 약 3세기 말에 생산된 p48이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은 서방계 본문이 이 지역에도 유포되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마르시온(Marcion), 타티안(Tatian), 이레네우스(Irenaeus), 테르툴리안(Tertulian), 키프리안(Cyprian) 등의 교부들도 이 본문을 사용했다. 이 유형의 본문을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사본은 5세기의 베자 사본(Dea=05: codex Bezae Cantabrigiensis)과 세기의 클라로몽 사본(Dp=06: codex Claromontanus)과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5장 30절까지의 읽기에 대해서는 5세기의 워싱톤 사본(W: codex Washintonianus)이다. 또한 고대 라틴어 번역본들도 서방 본문을 제시하는 중요한 증거들이다. 서방 본문의 주요한 특징은 설명어 덧붙이기(paraphrase)가 많다는 것이다. 낱말들, 어구들, 심지어는 문장 전체도 자유롭게 바꿔지거나 생략되거나 삽입되었다. 이렇게 변경한 동기는 병행 구절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며 때로는 전래적 또는 외전적(apocryphal) 자료를 삽입함으로써 이야기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특별한 동기를 찾아 볼 수 없는 아주 사소한 변경들도 많이 있다. 서방 본문의 사도행전은 원래의 본문으로 여겨지는 것보다 10% 가량이나 더 길다. 서방 본문에서 가장 해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는 누가복음 끝부분과 사도행전에서는 서방 본문이 그 일반적 특성과 정반대로 다른 유형의 본문들과 비교해서 오히려 낱말과 어구들이 생략되었다는 사실이다. 3) 가이사랴 본문(Caesarean text) 이 본문은 Θ, 565, 700과 같은 사본들과 아르메니아어(Armenian) 번역본들과 게오르기아어(Georgian) 번역본들 안에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다. 이 본문의 특성은 서방 본문의 읽기와 알렉산드리아 본문의 읽기를 혼합했다는 데 있다. 최근에는 이 가이사랴 본문 유형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 본문 유형은 안디옥에서와 안디옥 근처에서 유포되었는데 고대 시리아어 번역본들 속에 보존되어 있다. 즉 복음서 번역본인 Syrs와 Syrc의 두 사본과 아프라테스(Aphraates)와 에브라임( Ephraem)의 저작 속에 들어 있는 성서 인용문들 안에 주로 보존되어 있다. 4) 비잔틴 본문(Byzantine text) 이 본문의 명칭은 다양하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시리아 본문(the Syrian text), 폰 조덴(von Soden)은 코이네 본문(Koine text), 레이크(Lake)는 교회적 본문(ecclesiastical text), 로우프스(Ropes)는 아디옥 본문(Antiochian text)이라고 일컫는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비잔틴 본문은 신약성서의 여러 가지 분별 유형들 가운데서 최후에 생긴 유형이다. 이 본문의 특성은 명백성(lucidity)과 완전성(completeness)이다. 이 본문은 거친 표현을 매끄럽게 다듬었고 둘 또는 그 이상의 다양한 읽기들을 합성시켜서 하나의 팽창된 읽기로 만들었으며(이른바 conflation) 다양한 병행 구절들을 조화롭게 만들었다(이른바 harmonizing). 이런 식으로 합성된 본문은 아마도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생산되었을 터인데 나중에 콘스탄티노풀(Costantinople)로 전해져서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방방곡곡에 널리 유포되었다. 이 본문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복음서 부분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A=01: codex Alexandrinus. 이것은 하나의 사본 이름이다. 사본의 본문 유형을 지칭하는 Alexandrian text와 혼돈하면 안된다), 후대의 대문자 사본들, 그리고 거대한 수량의 소문자 사본들 안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좀 더 오래된 본문 형태를 우연히 보존한 사본이 이따금 있었다는 예외 사항은 있기는 했지만, 6세기 세기 또는 7세기로부터 시작해서 활판 인쇄술이 발명될 때까지(A.D. 1450-56) 전 기간 동안에 이 비잔틴 본문 유형이 일반적으로 권위적인 본문으로 간주되었으며 가장 널리 유통되고 수용되던 본문이었다. 본문비평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인쇄본을 처음으로 편집할 때에 사용한 사본이 모두 12세기 이후에 필사된 것으로 이 비잔틴 본문을 담고 있는 사본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베자는 5세기와 6세기에 각각 필사된 두 개의 대문자 사본, 즉 베자 사본(=05: codex Bezae Cantabrigiensis)과 클라로로몽 사본(=06; codex Claromontanus)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본의 읽기가 일찍이 에라스무스가 구축해 놓은 본문에서 빗나가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이 두 사본의 읽기에 근거하여 에라스무스의 본문을 수정하려는 시도를 감행할 수 없었다. 그는 다만 자기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인쇄본의 난외에 이 두 대문자 사본의 읽기를 다른 읽기의 본보기로 조금 제시해 놓았을 뿐이다. 이렇게 하여 베자는 에라스무스가 구축한 그리스어 신약성서 본문이 곧 텍스투스 레셉투스로 확정되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 그 밖의 중용 사본들 1906년에 프리어(C.L.Freer)가 이집트의 고물상에게서 산 4복음서 사본은 4세기말 혹은 5세기초에 기록된 것으로서 워싱톤에 보관되어 있으므로 워싱톤 사본이라 불린다. 1930년경에 영국의 베티(A.Chester Beatty)가 얻은 고대의 희랍어 사본은 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1935년에는 로버츠(C.H.Roberts)가 사본 조각을 발견하였다. 여기에 포함된 내용은 요한복음 18장의 내용 중 30여 개의 단어를 포함한다. 1956년에 발표된 보드머 사본도 요한복음의 처음 14장을 완전 포함하고 있으며 2세기경의 사본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