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단상/신학적 궁금점들

왜 교회는 무상급식에 반대할까?

숑숑숑~ 2011. 8. 24. 15:39




사실 저희교회에서도 이 무상급식에 대한 부분이 이리저리 스믈스믈 말들이 나왔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께서 제게 '신학적'으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보신 분들도 많았구요.
그래서.. 뭐. 제가 아는대로 왜 교회가(?) 무상급식에 반대하는지 조금 적어볼까 합니다.

무상급식 반대하는 이유?

사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부류는 한국개신교 내에서 아주 무슨 규격처럼 딱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째, 대형교회.
둘째, 대형교회 목사들.
셋째, 정치적 기독교단체 or 친정부(현) 기독교단체
요 세 부류이구요.
뭐 넷째까지 넣자면, 그다지 생각없으신 목사분들과 그들을 추앙?하는 생각없는 성도들이 추가되겠네요.
이 세 부류 혹은 네 부류들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이유가 각각있습니다.
요 부분은 제가 목회자임으로 목회자 세계?에서 흔히들 있는 이야기들과, 
대한민국 현대사 & 대한민국 현대교회사를 공부하고 취미로 논문을 적어본 근거들을 종합하여서 적어봅니다.

우선, 대형교회의 무상급식 반대이유는.. 쉽게 설명하자면 돈줄쥐고 있는 분들의 교회내 정치적 개입에 의한 것입니다.
제가 제 글에서 누누히 말씀드린 부분이지만.. 
신학적으로 이 대형교회(mega church)가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는 뜨거운 논쟁 속에 있습니다.
왜냐? 교회가 대형화되어가면서 전통적으로 '사귐으로서 공동체'의 성격은 사라지고,
목회자가 성도를 돌아보는 것에도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또한 대형화가 시작되면 그 가운데 물질적 힘이 사회와 같이 체계화되면서
그것은 본질(사귐을 통해 이뤄지는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과 비본질의 주부를  바꾸어버릴 위험이 생기게 되죠. 
즉, 유지를 위해 원래의 본질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체계화된 시스템은 유지를 위해 예수가 가르치고 삶으로 보인 사랑의 요소를 현격한 법과 규율로 바꿔버립니다.
더이상 목회자나 성도들은 예수를 따르는 삶보다, 
구원으로 이르는 방법을 사고 파는 거래소 혹은 구원을 이미 얻었다는 기득권적인 이중적 태도만 남을겁니다.
이로써 대형교회는 두 가지 관(view) 중 하나를 가지고 행동하게 될 겁니다. 그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첫째, 소수의 교회의 유지를 위해 재정을 감당할 수 있는 자 위주로 움직일 것입니다.
둘째, 대형교회 안에 수많은 여러 시각과 주관적 가치관, 운영의 모습, 
        가운데 매우 보편적인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법적인 매임의 관점하에 움직일 겁니다.
이렇게 대형교회는 현실의 대한민국 모습에 대한 함축적 상황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현대사적으로 보면 대형교회의 태동이 군사독재와 개발에 의한 점을 보면, 꼭 현대사의 대한민국과 흡사하죠)
다시말해, 
대형교회는 더이상 그리스도교적 본질보다 그 덩치유지를 위해 존재함으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온 교회유지를 시킬 수 있는 세력들이 힘을 가지게 됨으로서 그들의 말이 예수 위에 있게 되죠.

그럼 대형교회 목사들은 왜 무상급식에 반대하느냐?
당연히 대형교회 목사들은 순진한 성도들에게는 '신(예수)'처럼 추앙받으면서,
교회 내 정치적으로는 교회덩치 유지를 위해 
위에서 언급한 사회기득권들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작고 모든 성도들과 목사가 함께 서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목사를 신처럼 추앙하지도 않을 것이며, 교회유지를 위해 돈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몰리지도 않을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는 '장독'과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말짱해보여도 작은 구멍과 흠만 있어도 '깨진 독'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교회유지를 위해 사회기득권들의 사회적 요소를 교회 공동체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버리면
더이상 목사는 목사가 아니요, 교회는 교회가 아니게 되고 단순히 이익을 위해 모인 사람과 단체가 될 뿐입니다.
이처럼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신들이 허울좋게 사는 법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원래 대형교회의 태생자체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친일독재, 군사독재, 경제개발에 빌붙어
기득권에 아첨하여 등장했으니 더더욱 그렇죠.
현실에 와서는 지난 10년간 대형교회가 점점 쇠퇴하면서 이들 목사들은 당연히 자신의 유지를 위해서
기존의 세력과 더욱 연결되고 긴밀한 협의가 있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뉴라이트'이죠.

'정치적 기독교단체 or 친정부(현) 기독교단체'가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얼까?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어느때보다 정치적 성향이 짙은 기독교단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기독교단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몇가지 특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대형교회 목사들이 모여있다.
둘째, 원로목사(은퇴한) 목사들이 모여있다.
셋째,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목사들(신학대 및 신대원 졸업자가 아닌..)이 모여있다.
보통 이 세 부류가 정치적인 기독교단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이 정치적인 기독교단체를 이루고, 현 정부의 행태와 친일수구기득세력을 적극 지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앞서 언급했듯 대형교회 목사들이 모였으니 당연히 과거부터 친일수구기득세력과 연결되어 
        세력유지차원과 맹목적 신앙으로 아주 평생 왕노릇 신노릇 하기 위해서(친일수구기득세력과 비슷함)..
둘째, 교회 안에 틀어박혀 사회정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경제개발 박정희 만세와 장로대통령 만세 
        그리고 전쟁경험에서 오는 극단적 '빨갱이 단어'혐오론자들에 추가로 은퇴로 생활자금이 아주 많이 부족해서(어버이연합과 꽤 비슷)..
셋째, 한국 개신교의 주류 목회자에 끼지도 못하고(목사안수 돈주고 산게 걸려서..), 
        밥 벌이 할려니 예전처럼 병고친다니 예언한다니 그런 것도 안먹히고 
        사회에 눈을 돌리니 여기가 노다지란 생각에..

마지막으로.. 생각없는 목회자와 생각없는 성도들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왜.. 우리나라에도 정치에 관심없고 지 먹고 사는 것에만 혈안이 된 분들이 많이 있죠.
또 왜.. 그냥 소탈하니 정치 같은 큰거 생각하지 않고 삶만 살아가시는 분들도 꽤 많이 있죠.
거기다가 왜.. 나랏일은 나랏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긍정행복주의자님도 꽤 있죠.
똑같습니다.
그저 교회 일만 생각하고, 자기 구원이나 신앙에만 관심이 있다가..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에,
평소 책이나 티비를 통해 자주 본 유명한 목사님들의 주장이라는 것에
아무 생각없이, 성경적 고민없이 그저 따라가는 분들.. 정말 많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요.
대한민국 목회자들과 성도 중 거의 대부분이 이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선교사들이 일본의 힘에 눌려 '정교분리'를 외치며 
독립운동하던 한국목회자들을 정죄시키고, 선교사들의 논리를 쫓던 이들이 주류가 되어서
그때부터 '성경에 의한 정치적 주장'은 마치 그리스도인은 절대하면 안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게 있습니다.
틀리든 맞든, 종교가 있든 없든, 정치적 견해는 꼭 있어야 되고,
목회자들은 더더욱 성경에 의거하여 바른 정치적 견해를 주장함으로서,
70-80년대 대한민국 사회와 민주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에 앞장선 선배들을 따라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성경적 근거 


1. '선한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눅 10:25-37).
사실 이 비유는 바리새인의 이웃에 대한 개념의 오해를 풀기 위한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의롭기 위해서 이웃에 대한 구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제란 것은 이웃과 자신을 구분짓고, 위에서 아래로 주는 것이지요.
그런 이해의 개념을 예수께서 바로 잡기 위해 이 비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은 '내가 도와줄 이웃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도와줄 이웃과 자신을 구분하고 있는 모습이죠.
그 질문에 예수께서는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마지막에 도리어 대답하기보다 바리새인을 향해 다시금 질문하십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도와줄 이웃과 자신을 구분하는 바리새인의 질문에
예수는 신 앞에 이웃과 자신은 동일함을 말하고 있지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이란 남는 떡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함께 울고 함께 있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2. '오병이어' 사건.
뭐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남자만 오천을 먹였다는 그 이야기 다들 아시죠?
남자'만' 먹인 것이 아니라, 남자인원만 5천가량 먹였다는 말입니다.
여자 아이 노인을 포함한다면 수 만은 족히 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수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인 이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하위 50%에게 준게 아니라 모두에게 주었고
마 14:20, 막 6:43, 눅 9:17에는 '먹고 '다' 배불렀더라'라고 적혀있지요.
또한 처음 물고기 둘과 떡 다섯개를 모을때도 한 아이의 희생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무상급식이 행여 세금폭탄이더라도 성경적 배경으로는 감당해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