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단상 44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나쁜 사마리아인이지 않을까?

작년인가? 장하준 씨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란 책을 읽은 적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비꼬는, 그리고 경제교양을 쉽게 다룬 도서였다. 사마리아인? 눅 10장 25-37절. 우리가 너무나도 잘아는 비유이다. 율법사는 예수께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 이는 나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 이웃과 동떨어져있다는 말이다. 즉, 이웃과 다른 사람이라는 거리를 둔 것이다. 이웃과 같이 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과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마지막에 묻는다. "네 생각에는 세사람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주님은 이웃이 되어라 말씀하신다. 그것은 도와주고 사랑해줘야 할 그 상대와 같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삶과 같이 그렇게 낮은자 헐벗은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눈

세상을 보면, 영남이니 호남이니..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서로 구분하고 나누며 산다. 사사기 마지막절의 말씀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데, 작금의 현실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저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면서, 정치와 규합하거나, 친일을 따라가거나, 기복적 신앙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스도인이라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라봐야 할 '눈'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판단하고 기준 삼아야할 '절대적 기준점'은 무엇일까? 답을 주기보다, 고민을 하여 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답을 줄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생각할 틈, 고민할 틈을 주지 ..

Amazing grace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찬송가 : Amazing grace(나같은 죄인 살리신) 이 곡을 작사한 존 뉴턴은 노예상인으로서 노예선의 선장이었다. 그는 20년동안 아프리카 사람들을 배에 실어 자메이카로 옮겼다. 한 배에 600명가량을 실어옮기곤 했는데 도착할때에 살아 있던 사람의 수는 300명도 안되었다. 손과 발과 목에는 쇠로된 고랑이 채워져서 어깨와 발은 탈구되었고, 관보다도 적은 침대에 누워잤으며 물은 배안에 고여있는 물이 전부였고, 음식은 최소한만 주었다. 대변과 소변은 그들이 있던 그곳에서 보았고, 오물들과 함께 600명의 인원은 죽어갔다. 선원들의 유희를 위해 젊은 여자들은 강간당했고 풍랑이 거칠땐 그 중 가장 아픈 사람을 바다로 버리곤 했다. 고작 차를 마시기 위해 넣는 설탕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 스스로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로마시대 많은 핍박을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콜로세움에서 때로는 아프리카로부터 공수해온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십자가에 못받혀 죽기도, 불태워져 죽기도, 도끼로 목이 베여 죽기도 했다. 그 모습을 목격했던 이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던 무리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했다. (행11:26에도 타인들로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얻음이 명시). 죽어가며 바보처럼 예수를 부르짖던, 때론 찬송을 불렀던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 눈에는 그리스도인이 눈 먼자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랬듯, "한 명의 눈 먼자가 만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 '그리스도'인.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