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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업 현상] 신학의 부재에서 신학의 부정으로.

Intro. 사실 난 '박성업'이란 존재를 몰랐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무엇이 대단해서 내가 그에 대해 글을 적어야되나 싶었다. 그가 무슨 말시온이나 근래의 신천지정도 되는가? 그러다가 내가 전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의 5가지 패러다임을 보게 되었고 또 자연스레 그 패러다임들 속에서 한국교회의 문제를 끄집어 내면서.. 이게 왠걸? 여기저기서 ‘박성업’이라고는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가 강조하는 궤적이 묘하게 한국교회의 역사와 얽혀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그리하야 자의든 타의든 어찌 되었든 이번 방송이 '박성업 헌정방송'이 될 듯하고, 이렇게 글까지 끄적거리게 된 것이다 젠장. 본 글 적기에 앞서 필자는 그냥 간단하게 박성업에 관련된 현상만 잘라서 적고 싶지만, 그래도 방송을 준비하며 ‘왜 그런 ..

앙드레지드의 '좁은문', 예수의 '좁은문 그리고 박성업의 '없는문'

1. 사람들많이 모인다고 그게 '공동체'가 되느냐? 묻는다면, 난 '아니다'라고 당당히 대답할 것이다. 교회공동체는 그런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예수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을 직접 경험한 이들이 '그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는 그리스도시다!'란 것을 고백하며 시작된 공동체는 다양한 패러다임 속에서도 그 본질(주는 그리스도시다)를 놓치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의 시간동안의 고백을 인정하지않고 그저 모였다고 공동체라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주의 몸이란 '공동체'는 그저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또한 신앙을 정의하기에 있어서 내가 믿은 것이라 말한다면, 난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보고 내가 깨닳은 것은 나의 가치관과 이 시대의 패러다임 안에서 해석한 한낱 '나의 감..

화분과 생명

아. 제가 돕는 교회에 화분이 있습니다. 설교하는 단상 뒤에 있는 화분인데요. 바람도 안통하고, 햇볕도 안들어서 식물들이 살기 어렵죠. 그러다보니 심심치 않게 죽어나갑니다. 그래서 건의했더랬죠. 차라리 조화를 두지 그러냐고.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성전(예배당)에 생명 없는 것을 두면 이상하지 않냐?' 였드랬죠. 뭐. 저야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듣고 가만 있는 성격이 아닌지라.. 이렇게 답했습니다. "생명이 죽어나가는게 우스워보이냐? 예수께서 그리 가르치시더냐?" 그렇게까지 말해도 전혀 이해를 못하더군요. 아. 빨리 개척해야겠어요;; 사실. 제가 좀 오바하는 경향일 수 있겠지만.. 저는 꽃이나 나무를 화분에 두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마음껏 뿌리내릴 곳에 있어야할 생명들을 인간의 만족을 위..

장례와 제사에 대해

'장례'라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살아오며 가장 예를 갖추는 몇 가지 의식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어떤 시대와 문화와 가치 속에서도 동일한 것이 바로 '장례'에 대한 '예'겠지요. 그만큼 '장례'라는 것은 슬픔을 당한 가족들이나, 조문을 하는 손님에게나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가진 교리적 부분, 성서적 본질을 가지고 한국문화 속 '장례'와 그와 빼놓을 수 없는 '제사'의 부분을 한번 건드려볼까 합니다. 1. 고인에 대한 '절'의 문제가 생긴 배경. 보통 가톨릭 형제들은 장례식에 가면 영정 앞에 절을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의 경우 절은 하지 않고, 국화를 두고 고인을 위한 기도로 대처하고, 절은 상주에게 '예'로서 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