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이중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5.22 목사 이중직에 관해 2 (신에게솔직히 '목사이중직' 해설)
  2. 2014.05.20 목사 이중직에 관해 (1)





 신학잡지 '목회와 신학'에서 목사 이중직이란 말이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일을 하는 개념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80%가 미자립 혹은 자립했으나 넉넉지 못한 교회들이지요. 그런 면에 있어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과거 한량처럼 목회만하고 사모들이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목회사역 외에 일을 해야겠다는 인식이 많아졌습니다. '목회와 신학'에서 앙케이트 조사를 했는데요. 목회자들 '이중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골자로 했습니다. 결과는 과반이상의 이중직 찬성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이중직?을 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 볼때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o. 잘못된 노동에 대한 인식.

 대부분 '이중직'에 대한 찬성을 보낸 이들이 가지는 잘못된 인식 중 하나가 바로 노동에 대한 인식입니다. 목회를 위한 도구로서 '일'을 생각하고 있지요. 그래서 편해야되고, 시간적 효율이 높아야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외국에서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직업'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관계'과 자신의 '꿈과 계획'을 위한 것이니 말이죠. 하지만 이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죽을 만큼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목회자들은 이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목회를 위한 수단,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니 말 다했죠.

 몇몇의 목회자들은 '개혁'의 수단으로 이중직 혹은 노동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런 분들이 하는 이중직의 내용 역시 '카페'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요. 결국 목회를 위한 '공간'과 목회자의 '여유'를 생각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어떤 분들은 신학교(대학, 신대원)에서부터 이러한 이중직에 대한 커리큘럼을 만들자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방법론'이지요. 이미 이런 방법론은 사실 너무도 많거든요. 신학대학교나, 대학원을 다니면.. 이미 커리큘럼은 그 안에 다 있어요. 사실 그런 목회를 하면서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적인 커리큘럼을 배우기 이전에, 노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배웠으면 합니다. 
 제가 속해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의 전국 일곱개 신학대학교에서는 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경제이론, 그리고 생명과 노동에 대해서 매 학기마다 1-2과목이 개설됩니다. 그리고 1년에 한번 전국학교에서 수강한 이들과 이들을 가르친 에큐메니칼진영의 교수님들이 모임을 가지기도 하구요. 노동이 얼마나 가치있고, 이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지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중직' 즉, 목회하면서 개혁이나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o. 현재의 교회론으로 과연 이중직이 가능한가?

 그네들이 말하는 '시간'과 '여유' 그리고 '육체적 노동이 적은' 일을 하게 된다면.. 과연 현재의 교회 목회가 가능한가 저는 질문하고 싶습니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 주일예배 그리고 여러 심방들과 회의, 주보작업 등. 이게 가능한지요? 가능하다면, 당신이 하는 '이중직'은 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노동'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다면, 현재의 목회, 교회, 교회론이 수정되지 않고서는 유지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이중직을 찬성하는 목회자 대다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지요.

 보통들. 교회공동체라고 생각하면 많은 예배와 많은 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공동체성이란 것이 그런 것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제가 커뮤니티활동을 하면서 '숑숑숑'이란 닉네임의 목회자란 것을 사람들이 알았을때, 많은 쪽지와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쪽지와 메일은 그들의 삶에서 비롯된 많은 고민들이었구요.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쪽지와 메일을 보낼때 꼭 적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에게는 물어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과연 '공동체성'이라고 볼 수 있는지요? 수많은 예배와 일방적인 설교, 그리고 수많은 봉사를 함에도, 사소한 질문하나도 못하는 그것이 공동체랄 수 있는지요? 유교적 의식 좋습니다. 권위적일 수 있다? 좋습니다. 저는 적어도 교회란 곳은 그리스도 안에 모두가 한 형제 자매라고 믿습니다. 또한 다들 똑같은 한 인간으로서 힘들기도하고, 지치기도 하며, 부족하기도 하고.. 그리고 똑같이 노동을 하고, 가정의 생계를 걱정하기도 하며,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도 동일하다고 봅니다.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것도 좋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교회가 유지가 되어야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점에서 결국 이러한 현재의 모습만이 옳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이웃교회를 개척하면서, 저는 슈퍼를 운영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이웃교회는 모입니다. 같이 예배도 드리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신에게솔직히 팟캐스트 녹음도 합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가정에서 모여서 강단이 아닌 빙 둘러앉은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목회자 역시도 일에 지쳐서 실수도 하는 설교를 하고, 예배 후에는 허심탄회하게 설교에 대한 부분을 질문하거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신학적인 이야기, 사회이슈나 교회이슈, 교회역사에 대한 공부를 녹음을 이유로 하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몇시간 밖에 안되는 시간이지만, 저는 이런 것이 더 교회공동체성을 질적으로 향상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일을 하며 목회를 하니 일반적인 교회와 다른 것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교인 수가 늘어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면 좋죠. 하지만 많으면 불편합니다. 두번째는 헌금이 얼마가 모이든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 헌금은 점심식사비와, 구제를 위한 모으는 것밖에 없습니다(구제에 대한 부분은 향후 토의예정). 세번째는 목회자가 아니라 나 역시 성도란 생각에 자유롭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현재 이중직을 생각하시거나 찬성하시는 목회자분들. 너무 현재 교회론에 얽매이지 마세요. 교회공동체성은 많은 시간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부터 생활전선에 처절하게 뛰어들고 지쳐보기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o. 그렇다면, 정당한 노동을 하며 목회를 할 수 있는가?

 넵. 가능합니다. 저 같은 경우 슈퍼를 합니다. 오픈은 오전7시, 클로징은 밤 12시입니다. 집에 가서 누우면 새벽 1시, 기상은 6시입니다. 목회자일때와 기상, 취침시간은 같지요. 다만, 하루 일과가 힘듭니다. 문 열고 9시까지 도매에서 살 물건들을 체크합니다. 도매점, 과일, 야채시장을 돌면서 장을 봅니다.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돌아와서 정리를 하고, 12시까지 장사를 합니다. 쉬는 날은 없어요. 토요일이면 더 힘듭니다. 평일동안 시간이 날때마다 준비한 설교와 주보를 완벽히 준비합니다. 평균 새벽 2시 좀 넘어서 잡니다.주일이 되면 문을 열고 아르바이트가 올때까지 장사를 하다가, 1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교회로 갑니다. 교회 생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때는 2시간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바로 슈퍼로 다시 가지요. 그렇게 매일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화요일에는 팟캐스트 업데이트를 약속했기에 주말늦게는 그것 편집도 합니다. 쉼없는 나날이라 너무 피곤하지만, 제가 늘 이야기 했듯 시간은 만들면 납니다. 기존 목회의 완벽함을 생각하면, 우리 목회자 외 일반 성도들의 일반적 삶과 노동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삶과 노동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덜 자고 더 노력해서 목회를 할 수 밖에요. 이 관련된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대안점은 앞으로 업데이트될 '목사이중직 2부'를 들으시면 될듯합니다.

 이중직이란 말은 사실 틀린 말입니다. 인간은 그저 살아가거든요. 목회를 직업으로 인식하지 않는 분들이 개혁이나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이중'직이 된다는건 웃기지 않는가요? 제가 슈퍼를 하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목회란 것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게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삶 전체가 바로 목회이고 노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이중직이란 말은 틀린 것이지요. 대한민국에서 한 인간이 살아가는 것 아니, 그저 이 지구에서 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불확실성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회자 분들. 그 불확실성으로 투신하십시오. 그게 정말 목회자로서의 삶이요,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ps. 이 글은 이중직 관련된 녹음을 풀어서 설명한 것이며, 이 내용 외에 교단적 대안이나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있으니 팟캐스트를 함께 들어주시면 더욱 도움이 될 듯 합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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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는 다른 직업이 필요하다. 당연하다. 당연해. 그런데, 단지 '돈' 때문이라면 웃기지 않는가? 물론 돈은 필요하지만,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는 '돈' 혹은, '신자유주의'적 마인드를 따라가는 것 아닌가? '돈'이 필요하다면, 목회 안하고 돈 벌러가면 된다. 쉽고 간단한 방법이다. 


 현재 한국교회 문제의 근본 핵심은 '목회자'다. 그리고 그 목회자의 문제 핵심은 '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니다. 진짜 핵심은 '목회자'라는 특수한 삶의 자리가 있다는 착각의 문제이고, 이것은 한 인간으로서 삶의 자리에 대한 유리이다. 목회자라는 특권의식에서 오는 삶의 자리의 유리가 현재 한국교회를 부패시킨다. 그리고, 그 부패에 대한 반감에서 오는 쇄락이 목회자의 '돈' 문제를 생성시키고, 교회를 영업장으로 인식하고 돈에 의해 운영되도록 생각하며, 결국 현 사회패러다임에 종속되고 마는 것이다. 


 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투잡은 불가능하다. 이게 현실이다. 한국은 말이지,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번다. 그렇지 않는가? 투잡? 과연 목회와, 일에 모두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목회를 위해 다른 곳에서 돈을 번다는것은 이 나라에서의 노동을 비웃는 거다. 한번 해보라. 하나의 일도 죽도록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경쟁이 있는 곳에서 목회하며 일한다라.. 내가 만약 사측이라면 그렇게 두진 않을것이다. 이 사회는 자신의 일에 집중해서 돈 벌 인력은 넘치고 넘치기 때문이다(사회구조를 비꼬는 의미이니 이해하시라).

 이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투잡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말하기보다, 목회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할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이고, 이것은 이제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성도들의 삶을 너무 쉽게 본 착각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돈은 이 한국사회에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그런 것은 아니다. 피와 땀이 있어야 겨우겨우 쥐꼬리만하게 나오는 것이다. 그것으로 성도들은 헌금을 한다. 하지만, 목회자는 그런 헌금의 의미를 알리 만무하다. 전도사 때부터 그런 헌금으로부터 나오는 사례비를 너무도 쉽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기막힌 경험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과거 신대원을 다닐 시절, 졸업여행에 대해서 논의한 적이 있다. 거기서 우리 학년들은 졸업여행 코스를 국내 선교지탐방에서부터, 제주도, 일본, 중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안들이 나왔다. 웃긴 것은 제주도나 외국을 가자는 의견에 대해서 '너희들 매번 학비가 비싸다느니, 책 값이 비싸다느니, 사례금이 적다느니, 생활하기 어렵다고 매번 말하면서.. 어디서 그렇게 비행기타고 갈 돈은 있느냐?'의 질문에, '교회에 말하서 지원받자'는 대답을 들을때는 정말 이 놈들이 나이를 많이 쳐먹든 적게 쳐먹든 거지새끼와 다를 바 없구나.. 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게 현실이다. 


 2. 물론 위의 예와 다른 목회자들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시라. 과연 나가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진짜 이 대한민국 현실의 삶의 자리와 마주한 적 있는가? 돈은 사례금 받듯 쉽게 나오지 않는다. 죽을 만큼 일한다면, 과연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절대 할 수 없다. 물론 현재의 교회의 모습과 그 시스템, 그리고 목회자의 일과로는 말이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 심방, 주일예배.. 그것과 일이 병행될 수 있는가? 자, 그렇다면 현재 한국교회 모습으로는 절대 병행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현재 대형교회화를 추구하는 모든 교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습지 않는가? 돈이 필요하니 일하고, 목회는 대형교회를 쫓아가니 현실은 불가능하다는거다.


 3. 방법은 없는가? 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제발 자신의 전문성을 놓지말라. 그리고 작게 나마 피부로 삶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라. 시간은 만들 수록 늘어난다. 현재의 교회시스템을 쫓지말라. 한 마을와 상생하는 작은 교회를 추구하라. 교회공동체성은 심방이나 수많은 예배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돌아가자. 가난한 목회자가 투잡을 해서 돈을 번다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조류에 편승하는 현 교회 시스템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실의 한국교회의 문제는, 한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삶의 자리에서 유리된 목회자의 문제이다. 그러니, 교회여 윤허해달라, 장로들이여 윤허해달라는 말보다.. 목회자 자신이 노동과 성도의 보편적인 삶의 자리를 피부로 느끼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 나는 목회자다. 어려서부터는 대형교회에 있었고, 부모는 목사였고, 나 역시 기존의 교회에서 모든 일을 순종으로 다 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봐왔던 목사들은 하나같이 성도들의 돈을 우습게 보았다. 그러면서도 돈을 가장 좋아한다. 그게 싫어서 편안하게 생활할 자리를 나왔고, 지금은 슈퍼운영을 한다. 목회는 물론 기존의 교회처럼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목회는 교회 안에서의 것만은 아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그네들의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한다. 성도들과도 다른 무엇보다 그런 직접적 삶을 나누는 것이 교회공동체를 위한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또 성서의 내용을 '종교적 언어'가 아닌, 그 삶의 자리에서 정말로 귀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통해 얻어진 '삶의 언어'로 나누는 것이 설교라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여한다는 목적으로 다른 직업이 필요하다는 걸 넘어서, 모든 인간의 삶의자리를 존엄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부딪히는 목회자가 많아지길 바란다. 그게 이시대 한국교회가 해야되는 최우선의 개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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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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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이어스

    교회의 공동체성은 심방이나 수많은 예배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는 말씀 공감합니다..

    2015.10.13 12:1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