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자료모음2013.06.14 01:33

 

암스테르담에서 부산까지:

WCC 총회주제들 안에 나타난 WCC 운동과 신학

 

정병준 (한국교회사, 서울장신대)

 

Ⅰ. 서론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탄생시켰고, WCC는 개신교선교운동으로 출발해서 개신교회와 동방정통교회를 포함하는 세계적인 기독교운동으로 발전했다.

 

WCC는 총회를 통해 자신을 세계 앞에 드러낸다. WCC중앙위원회가 총회 장소를 결정한 후, WCC 총회계획위원회(the Assembly Planning Core Group)는 주제를 비롯한 계획을 입안한다. 그 위원회는 총회 주제를 결정하기 위해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적ㆍ신학적 전통, 교회들의 공동희망, 에큐메니칼 콘텍스트, 총회 개최지의 콘텍스트, 에큐메니칼 운동의 우선적인 과제 등을 광범위하게 고려한다. 주제가 결정되면 본격적인 총회준비가 시작된다.

 

WCC 총회 주제는 단순히 총회를 상징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시대의 에큐메니칼 상황을 해석하는 지침 역할을 하고, 시대의 징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에큐메니칼 과제를 나타내는 복합적인 역할을 한다. 큰 의미에서 총회 주제는 에큐메니칼 항해를 하는 배의 방향타를 조정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WCC 중앙위원회는 2011년 2월 22일 제10차 WCC 부산 총회의 주제를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로 결정하였다. 이 시점에서 역대 WCC 총회의 주제들이 어떠한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시대의 징표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연구하는 것은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II. 역대 WCC 총회 주제들에 나타난 운동과 신학

 

1.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1948)

 

1) 장소와 참가자들

 

1938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WCC 창립을 결의한 후, 10년이 지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WCC가 창립되었다. 초대 사무총장 비셔트 후프트(Willem A. Visser’t Hooft, 1948-66)는 역시 네덜란드 출신 신학자였다. 창립총회에 147개 회원교회로부터 351명의 총대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주로 유럽ㆍ북미 교회들과 소수의 동방정교회 대표들이었다.

 

2) 시대적 배경

 

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개신교회들은 교회일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1921), ‘생활과 사역’(Life and Work, 1925),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1927)의 세 기구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진정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일치와 봉사를 통한 일치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1938년 ‘신앙과 직제’와 ‘생활과 사역’의 대표자들은 WCC를 창립하기로 하고 WCC 헌장도 작성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서구교회의 낙관론은 산산이 조각났다. 전쟁으로 분열된 교회공동체는 복음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는데 무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교회는 세상을 화해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일치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3) 총회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WCC는 세계와 교회가 함께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창립되었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 과제는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제1차 WCC 총회에서 교회 대표들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만이 인간의 무질서를 해결할 수 있고, 교회는 하나님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WCC는 교회가 분열을 회개하고 자기 갱신을 통해 일치를 추구할 것을 추진하였다. 1차 WCC 총회 주제는 인간의 교만함을 지적하면서 어떤 문명과 교회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하지 못한다는 바르트 신학이 나타나고 있다.

 

4) 교회일치론

 

초기 WCC의 교회론은 기독론 중심적인 ‘비교교회론’이었다. 비록 교회들은 분열되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일치(God-given-unity)가 있고 그것을 서로 확인하기 위해 ‘함께 모이자’는 것이었다.

 

5) 분과토론 주제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보편적인 교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교회의 증언

교회와 사회의 무질서

교회와 국제적 무질서

 

총회의 제1분과는 앞서 말한 교회일치를 다루었다. 제2분과에서는 선교론이 논의되었는데, ‘국제선교협의회’(IMC)가 WCC에 통합되지 않는 상황을 의식하면서 선교는 선교단체들만의 책임이 아니고 모든 교회의 공동 과제라고 선언했고, 평신도들의 선교적 책임을 강조했다. 제3분과는 교회의 윤리적 책임을 다루었는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된 세계에서 그 대안으로 ‘책임사회’(the responsible society)를 제시했다. 제4분과는 국제적인 문제를 다루었는데 특히 체코의 신학자 로마드카(J. Hromadka)와 미국의 국무장관 덜레스(J. F. Dulles)사이에 치열한 이념논쟁이 있었다.

 

2. 제2차 에반스톤 총회(1954)

 

1) 장소와 참가자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교회는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1937년에 북미교회는 WCC 중앙위원회의 60개 의석 중에 12석(20%)을 차지했으나, 에반스톤 총회에서는 총 90개 의석 중에 22석(24.4%)을 차지했다. 재정적인 면에서 미국교회의 기여는 두드러졌다. 록펠러는 WCC본부 건물 구입비 54만 불을 기부했고, 미국교회가 WCC의 연간 재정에서 부담하는 비율은 1949년에 82.9%, 1950년에 81.6%, 1953년에 78.2%에 달했다. 제2차 WCC 총회는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개최되었다. 이 곳에 161개 회원교회의 502명의 총대가 참석했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이 시기는 냉전대립과 탈식민지화 운동이 고조되었다. 첫째, 1948년에 동베를린이 봉쇄되었고, 194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결성되면서 미소 사이에 냉전 블럭이 형성되었다. 그해 중국이 공산화되었다. 둘째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셋째, 탈식민지화 운동으로 신생국가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1949년에 인도네시아가 독립했다. 1953년과 1954년에 이란과 과테말라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1950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관심은 탈식민지화와 신생국의 국가건설에 집중되었다. WCC 내부에서도 서구교회들과 신생교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1950년 한국에 전쟁이 발발하자 토론토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한국 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유엔이 한국에서 경찰행동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WCC가 초교회를 지향한다는 비난에 대처하기 위해 WCC의 본성을 밝히는 〈교회, 교회들, 세계교회협의회〉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한편, 1952년에 빌링겐 IMC에서 ‘하나님 선교’(missio Dei) 신학개념이 등장해서 WCC 선교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48~1958년의 10년 동안 IMC와 WCC 사이에는 통합문제가 논의 되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Christ - the Hope of the World) (엡4:4-7)

앞서 언급한 1950년의 토론토 WCC 중앙위원회는 차기 총회 주제에 대해서 “세계는 거짓 희망,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총회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세상 모두에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확증을 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WCC 헌장과 함께 이 주장은 향후 WCC 총회 주제들이 강력하게 기독론을 반영하도록 방향을 결정지었다.

에반스톤 총회는 교회들이 이념적 동서갈등, 경제적 남북갈등, 인종적 흑백갈등을 초월하여 서로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총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그 안에 있는 종말론적인 희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종말론적 희망(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그 역사적 관련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못했다. 주로 유럽교회들은 희망을 종말론적으로 이해했고 미국교회들은 그것을 현실적 낙관론으로 이해했다.

 

4) 교회일치론

 

에반스톤 총회도 암스테르담처럼 기독론 중심적인 ‘비교교회론’에 머물러 있었다. 다만 “함께 모이자”(Stay Together)에서 “함께 성장하자”(Grow Together)로 강조점이 변화되었다.

 

5) 분과토론 주제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됨과 교회로서 우리의 불일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교회의 선교

세계적 관점에서 책임사회

세계 공동체를 위해 투쟁하는 기독교인들

인종 및 민족분쟁의 와중에 있는 교회

평신도

 

제1분과는 교회일치를 다루었고, 제2분과에서는 “하나님 선교”를 다루었다. 제3분과는 1차 총회에서 주장한 ‘책임사회’ 개념을 더 발전시켜서 “책임사회는 사회ㆍ정치적 대안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평가하는 기준이며 우리가 선택할 사항에 대해 안내해 주는 지침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교회는 국가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신학을 제시했다. 제4분과에서는 최초로 제3세계의 경제적 저개발지역의 문제를 다루었다. 제5분과는 종교자유와 인종평등 문제를 다루었다. 에반스톤 총회는 인종평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그로 인해 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3개의 네덜란드 개혁교회들이 WCC를 탈퇴하였다. 제6분과는 평신도는 교회와 세상 사이를 연결하는 선교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평신도 신학’을 강조했다.

 

3. 제3차 뉴델리 총회(1961)

 

1) 장소와 참가자들

 

1960년대는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이 성장하면서 아시아의 영향력이 크게 등장했다. 또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장은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EACC)의 결성으로 나타났다. 서구권 밖 최초의 WCC 총회는 인도를 선택했다. 제3차 총회에는 197개 회원교회에서 557명의 대표가 참가했다. 이때 24개의 회원교회가 새로 WCC에 가입했다.

 

① 4개의 동방정교회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② 18개의 신생교회 (11개의 아프리카 교회, 5개의 아시아교회, 2개의 남미교회)

③ 2개의 오순절 교회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55년에 나토에 대응하는 동구권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결성되며, 세계가 미소 양대 블록으로 재편되자, 아시아.ㆍ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반둥 비동맹회의’를 결성하면서 제3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1956년에 스탈린은 헝가리의 자유혁명을 진압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강점하였다. 1957년 가나가 영국연방에서 독립하여 아프리카 민족독립의 선봉이 되었다. 1959년에는 쿠바가 혁명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다. 1960년 남아공정부가 샤퍼빌에서 흑인들을 대량 학살하였고, WCC의 인종차별반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WCC는 1955년부터 10년 동안 일어난 이스탄불 내전의 피해 복구를 지원했고, 소련의 헝가리 침공 때에는 난민들의 이주 정착을 지원했다. 그리고 1958년에 WCC와 러시아 정교회 사이에 대화와 방문이 활성화 되었다. 이러한 봉사와 대화는 4개의 동방정교회가 WCC에 가입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다른 한편, 아시아에큐메니칼 운동은 급속히 발전하여 1957년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EACC: CCA의 전신)가 조직되었다. 1958년 가나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는 WCC와 IMC의 통합을 결의했다. 아시아ㆍ아프리카 교회들이 양 기구의 통합을 강하게 요구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피선교지 교회들의 선교의식 성장

둘째, 양쪽의 회원권과 사업의 중복

셋째, 선교기구들과 교회 사이의 분립은 서구교회 안에서 생겨난 문제

 

1960년 WCC 중앙위원회는 WCC헌장을 개정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에 성서적이고, 복음적이고, 삼위일체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부름 받은 사명을 공동으로 완수하려는 교회들의 친교이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Jesus Christ―the Light of the World) (요8: 12)

뉴델리 총회의 주제는 신앙고백과 아시아를 함께 고려하여 결정되었다. 뉴델리 총회에서는 WCC 헌장의 확대수정, IMC와 WCC의 통합, 동방정교회의 가입, 여러 아프리카 아시아 교회들의 가입, 로마가톨릭교회의 업서버 참석, 타종교인들과 대화의 길 개방 등 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개념이 필요했고 ‘세상의 빛’이라는 개념이 선택되었다. 에반스톤 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사용했으나 뉴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용한 것은 당시에 WCC를 향해 ‘신학적 상대주의’ 혹은 ‘혼합주의’라는 비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주제는 “나는 세상의 빛”(요8:12)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너희는 세상의 빛”(마5:14)이라는 요청을 암묵적으로 담고 있었다. 예수님의 빛은 십자가라는 고난과 수치에 가려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지만 부활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교회도 십자가를 짐으로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증언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4) 교회일치론

 

1~2차 WCC 총회는 ‘비교교회론’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뉴델리 총회는 최초로 ‘가시적 교회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총회는 교회일치의 목적이 “각 처에 있는 모든”(all in each place) 그리스도인들의 가시적 일치(visible unity)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풀뿌리 에큐메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요셉 지틀러(Joseph Sittler)는 최초로 ‘우주론적 기독론’(Cosmic Christ) 개념을 사용해서 교회 일치를 주장했다. 그는 계몽주의 이후 은총에 대한 개념이 자연을 배제한 채 인간의 역사와 도덕의 영역으로 한정되었다고 비판하면서, 교회일치와 자연구원의 길을 연결시켰다. 이것은 훗날에 나타나게 되는 ‘창조신학’의 전조가 되었다. 또한 동방정교회 신학자 니시오티스(Nikos Nissiotis)는 동방교회의 ‘존재론적 교회론’을 WCC에 처음 소개했다.

 

5) 분과토론 주제들

 

증거(선교), 섬김(봉사), 일치(교회론)

제1분과에서는 최초로 종교간 대화 강조했다.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하지 않고 계신 적이 없다”는 포용주의 입장을 채택하면서도 혼합주의를 피하려고 경계했다. 제2분과는 신생교회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직면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하면서, 인류애와 신앙적 실천은 구분했다. 그리고 어떤 체제 안에서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에 복종할 수 있다고 하여 이념과 신앙을 구분했다.

 

4. 제4차 웁살라 총회(1968)

 

1) 장소와 참가자들

 

WCC가 창립될 때 한 축을 담당했던 ‘생활과 사업’은 1925년 스웨덴에서 조직되었고 그 대표적인 지도자는 스웨덴의 루터교 대주교 죄더블럼(Soederblom)이었다. 따라서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 유럽에서 열리는 WCC 총회는 스웨덴 웁살라로 결정되었다. 이 총회에 235개 회원교회로부터 704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는데, 뉴델리 총회보다 38개의 회원교회가 더 참여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다른 정교회들이 가입하였다. 이때는 WCC의 창립지도력이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일어났는데 제2대 사무총장은 미국 출신 유진 블레이크(Eugene Carson Blake, 1966-1972)였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60년대는 세계사적 혼란기였다. 첫째, 과학의 발전은 핵무기 경쟁을 가져왔다. 둘째, 충격적인 케네디 암살(1963)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1968)이 일어났다. 셋째, 1965년 월남전이 시작되었고 1967년 중동에는 6일 전쟁이 일어났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는 소련 군대의 학살로 막을 내렸다. 넷째, 혁명의 열기가 불타고 있었다. 1963년 미국에서는 20만 명의 흑인들이 인권시위를 했고 1968년 전 유럽에서는 학생들의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를 열어 교회개혁을 단행했고 메델린 주교회의(1968)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치적 선택을 하였다. 1963년 몬트리얼 신앙과 직제 대회는 동방교회가 참여하였고, 1965년도에는 로마가톨릭교회 대표가 ‘신앙과 직제’ 안에 있는 ‘연합연구위원회’(Joint Working Group)에 참여하였다. 1963년 멕시코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개교회의 선교구조를 다루었는데 선교영역은 6대륙 모두이며 서구와 비서구 모두의 책임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1966년 ‘생활과 사업’은 ‘교회와 사회에 관한 세계대회’(제네바)를 열고 경제정의와 개발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계21:5)

당시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 안건은 사회정의와 경제정의 문제였다. 혁명적 시기에 개최되는 총회를 준비하면서 WCC 지도부는 기독론을 넘어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주제로 삼았다. 주제로 인용된 성경구절은 역사의 최종적인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을 미리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 주제는 WCC가 ‘교회일치’와 ‘선교’ 보다도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관심이 ‘만물’에 있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가져왔던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즉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소이며 이곳에 교회가 함께 일하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하나님 선교 신학이 강하게 표현되었다. 주제 안에서 새로움(new)은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시는 새로움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4) 교회일치론

 

뉴델리 총회가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면 웁살라 총회는 교회의 가시적 일치와 인류의 일치를 연결시켰다. 교회 에큐메니즘을 인류 에큐메니즘의 중심에 놓고, 교회일치를 인류일치를 위한 종말론적 징표로 이해했다.

 

5. 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

 

1) 장소와 참가자들

 

최초의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총회는 케냐에서 개최되었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착취를 받은 가난한 땅이었고, 노예제로 수많은 인간이 수탈된 땅이며, 백인정권에 의해 인종차별정책이 여전히 남아있는 대륙이었다. 또한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지도력과 재정적인 면에서 여전히 서구교회로부터 자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1971년에 동아프리카 장로교회 총무였던 존 가투(Rev. Dr. John Gatu)는 선교 모라토리움을 제안했다. 이 총회에는 285개 회원교회로부터 676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당시 WCC 사무총장은 도미니카 출신의 필립 포터(Philip A. Potter, 1972-1984)였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제3세계 안에서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몸부림이 거세게 일어났다. 1969년에 리비아에서는 카다피가 집권했다. 1971년에 중국은 유엔에 가입하면서 국제무대로 다시 나왔다. 1972년에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1973년에 미국은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켰다. 1974년에 포르투갈에서 스피놀라가 집권한 후, 앙골라, 모잠비크, 기네비소, 쌍토메프린시페, 까보베르데를 독립시켰다. 사이프러스에 친 그리스계 정부가 등장하자 터키는 북사이프러스를 점령했다. 1975년에 크메르 루즈는 캄푸치아를 장악하고 3백만 명의 국민을 살해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점령했고, 유럽에서는 헬싱키 협정으로 냉전이 종식되었고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1939~1975)가 종식되었다.

 

남미에서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pedagogy)과 ‘종속이론’이 등장했다. 또한 ‘실천-반성’(Praxis and reflection)의 방법론에 근거한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들이 나타났다. 인종차별주의와 다국적기업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WCC는 웁살라 총회 이후 사회참여를 강화하기 위한 기구개편을 단행하였다. ① 인종차별철폐위원회(Programme to Combat Racism, 1969), ② 교회개발참여위원회(CCPD, 1970), ③ 그리스도교의료선교위원회(CMC, 1968), ④ 교육위원회, ⑤ 살아 있는 신앙 및 이데올로기와의 대화 등의 조직이 신설되었다. 1971년 기독교교육세계협의회는 WCC에 통합되었는데 WCC는 의식화 교육프로그램과 행동신학(Doing Theology) 연구를 지원했다. 일부 지도자들은 WCC가 사회참여로 경사되는 불균형을 우려했고 복음주의권의 그리스도인들은 WCC의 방향을 비난했다.

 

1973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를 발표했다. 방콕대회에서 아시아 교회들은 존 가투가 제안한 선교 모라토리움을 강력하게 지원했으나. 나이로비 WCC 총회는 ‘모라토리움’을 수용하는 대신 ‘선교적 동반자 관계’(partnership in mission)를 발전시켰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

나이로비 총회 주제는 종말론에서 다시 기독론으로 돌아왔다. 이 총회는 사회참여를 지속하면서도 해방과 진보의 슬로건에 가려있었던 선교와 일치의 주제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다. 필립포터는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웁살라는 출애굽의 분위기였고, 나이로비는 광야”와 같았다고 진술했다. 기존의 WCC 총회 주제들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해 ‘시대적 징표’(sign of time)를 담아서 대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딜레마는 예수를 해방자(frees)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분열자가 아닌 화해자(unites)로 고백하는 것이었다.

 

성경적 자유 개념은 바울 신학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 죄, 율법, 죽음으로부터 자유한다(갈6.7; 롬1:20; 갈5:1, 롬7;24).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운명을 극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이기 때문에 인류와 함께 연대해야 하는 정치성을 포함하게 된다.

 

총회 주제가 “하나 되게 하신다.”는 표현을 담은 것은 WCC의 신학적 방향이 웁살라 총회의 사회참여적 성격에서 통전적인 방향으로 교정된 것을 나타냈다. 또한 동방정교회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고 복음주의자들과 오순절 교회의 참여도 늘어난 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WCC 안에서는 교회의 일치가 ‘하나님의 선물인가?’ 아니면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냐?’ 하는 견해 차이로 논쟁이 있었다.

 

⑷ 교회일치론

 

1~2차 총회는 ‘비교교회론’, 3-4차 총회는 ‘가시적 교회론’을 나타냈다. 그러나 나이로비 총회의 교회론은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했다. 그 결과 개 교회들이 성만찬의 교제를 통해 가시적 일치를 표현해야 한다는 ‘협의회적 친교’(conciliar fellowship)를 주장하게 되었다. ‘협의회적 친교’란 개 교회(local)들이 각자가 지닌 독특한 은사를 지키면서도 보편교회(universal)를 나타내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편성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특수성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잘 나타낸 것이다.

 

또한 나이로비 총회는 에큐메니즘을 ‘전교회’(whole church)가 ‘전세계’(whole world)와 ‘전인격’(whole person)에 ‘전복음’(whole gospel)을 전하는 운동으로 정의했는데, 이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진정한 통전적인 에큐메니즘으로 확대된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이었다.

 

⑸ 분과토론 주제들

 

오늘 그리스도 고백

일치의 조건

공동체 추구

해방교육과 공동체

구조적 불의와 해방투쟁

인간개발: 권력ㆍ신학ㆍ삶의 질의 모호성

 

제1분과는 영성을 사회참여와 연결시켜 이해했다. 제2분과에서는 교회일치의 조건은 ① 공통의 목표, ② 동료의식, ③ 공동의 상황인식이라고 확인했다. 3분과에서는 참된 공동체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대화를 강조했다. 나이로비 총회는 최초로 타종교인들을 초청했다. 제4분과는 인간해방의 우선 과제를 ① 인권, ② 성차별, ③ 인종차별 문제라고 보았다. 제5분과는 “정의롭고 평화롭고 지탱 가능한 사회”(JPSS)를 제시했다. 당시 서구 국가들의 과학자들은 생태계 파괴와 자원고갈 문제에 대해 인류가 대처하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가들이 성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개발도상국가들은 이미 개발을 이루고 선진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서구국가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반발하였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WCC는 JPSS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6. 제6차 뱅쿠버 총회(1983)

 

1) 장소와 참가자들

 

WCC 총회는 유럽에서 두 차례, 그리고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각각 한 번씩의 총회가 열렸다. 제6차 총회는 북미의 캐나다 차례가 되었다. 301개 회원교회로부터 847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뱅쿠버 총회에서는 총대의 구성에 큰 변화가 일어나서, 여성 30%, 청년 15%, 평신도 46%가 되었고, 특별히 남반구의 교회들의 참여가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미 158 서유럽 152 동유럽 142 호주ㆍ뉴질랜드 26

아프리카 131 아시아 131 중동 53남미 30

태평양 22 카리브 19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77년에 파키스탄에서는 민주적인 정권이 다시 군사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다. 1979년에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반미 이슬람 정권을 세웠다. 니카라과에서도 독재자 소모사가 추방되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아프가니스탄의 대소항쟁이 전개되었다. 1980년에 살바도르 독재정권은 로메로 주교를 암살했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독재에 의해 고통 받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짐바브웨가 백인독재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고, 이 과정에서 WCC는 짐바브웨 해방 전선을 지원하였다. 한국에서는 신군부에 의한 광주시민 학살이 일어났다.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1982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제5차 나이로비 총회 이후 WCC 총회 가이드라인 위원회는 향후 활동 방향을 ①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신앙을 표현하고 교제하기, ② JPSS추구, ③ 교회일치와 인간 공동체 갱신의 관계연구, ④ 진정한 공동체를 위해 갱신과 교육 강화로 정리했다. WCC는 이에 따라 1977년에 종교간 〈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다. 1980년에 멜버른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가난한 사람들이 현대 선교에서 더 소외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선교의 대상이면서도 하나님 선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1979년에 MIT 공과대학에서 모인 ‘WCC 교회와 사회위원회’는 과학기술의 노하우 독점문제, JPSS를 위한 대체 에너지, 유전공학 문제를 가지고 회의를 했다. 1982년에 리마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BEM 문서〉와 〈리마예배서〉를 만들었다. 이 모임에서 판넨베르크는 WCC가 웁살라 총회 이후 ‘신앙과 직제’를 약화시키면서 사회정의와 교회일치를 연결시키는 경향성을 반대했다. 1982년에 WCC 중앙위원회는〈에큐메니칼 확언〉(An Ecumenical Affirmation)을 채택했다.

 

3) 주제에 대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 (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 (요11:25, 14.6)

뱅쿠버 총회의 주제는 성령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독론적 신앙고백을 사용했다. 당시 시대적 징표는 ‘생명’이었다. 총회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적 억압,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 인권유린,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 등을 생명을 죽이고 손상하는 죽음의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고백하는 것은 바로 죽음의 세력에 대응하는 것이고, 그 내용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주제의 성경적 배경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1:25)이었다.

 

기독론은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대교회 이후로 성육신 기독론(from above)과 십자가 기독론(from below) 사이에는 긴장이 있었다. 바울은 십자가의 빛으로 부활을 이해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했고, 요한복음은 부활의 관점에서 성육신을 이해하는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독론은 성육신―십자가―부활을 연속적으로 연결시키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WCC 안에는 루터의 종교개혁 전통이 강조해온 ‘아래로부터의 기독론’과 동방정교회의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왔다. 개신교는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관계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면서, 부활을 하나님의 새로운 행동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동방정교회는 성육신하신 인자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불연속성을 강조하면 성육신을 약화시키고, 연속성을 강조하다보면 십자가의 의미를 약화시키게 된다. 그래서 WCC는 성육신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의 의미를 강조했고, 십자가 신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악과 투쟁하시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하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WCC 총회 주제들에 나타난 기독론은 이 두 차원을 상호 관련시키고 있다.

 

콘라드 라이저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이라는 뜻은 또한 ‘세상의 주인”(Lord)이라는 뜻이 라고 한다. 생명과 세상은 모두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세상의 창조주가 되신다. 그래서 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세상의 주인으로 아는 사람들의 고백이 된다.

 

4) 교회일치론

 

1-2차 총회는 교회분열 문제에 직면했고, 3-4차 총회는 일치의 목표를 설명했다. 5-6차 총회는 가시적 일치를 향한 실천의 중요성을 점점 더 강하게 강조했다. 밴쿠버 총회는 〈BEM 문서〉를 교회일치의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가시적 성례적 친교’(visible eucharistic fellowship)를 교회일치와 인류공동체에 대한 성례적 비전을 열어주는 징표로 사용했다. 교회란 회복될 인류공동체의 표징이고 인류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도구라고 역설했다.

 

7. 제7차 캔버라 총회 (1991)

 

1) 장소와 참가자들

 

지금까지 WCC 총회가 열리지 않았던 대륙은 오세아니아 뿐이었다. 환경 문제, 원주민 문제, 영성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호주의 캔버라가 선정되었다. 이 총회에는 317개 회원교회로부터 889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총회는 제4대 사무총장 에밀리오 카스트로(Emilio Castro, 1985-1992)가 준비하였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80년대 말부터 동구와 남아프리카에 변화의 바람이 몰려왔다.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동구권의 교회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1990년에 나미비아가 남아공에서 독립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통치가 끝이 났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곧 바로 새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 소련연방과 발칸반도 안에서 인종 충돌과 인종 학살이 일어났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페루 등지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민중들은 초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았다. 페르시아 만에는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

 

광범위한 환경 오염과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의 사막화 확대는 현 인류와 미래 인류의 생존권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폐기물 처리장으로 황폐화되고 있음을 호소했다. 사회적인 대안 모델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었다.

 

이 기간 WCC는 중국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캔버라 총회에서 중국교회는 회원권을 회복했다. 또한 WCC는 한국교회의 통일 노력을 측면에서 지원하기 시작했다. WCC는 1984년에 도잔소 회의를 개최했고, 1985년도에 제네바 글리온에서 남북기독자들이 성찬을 교류했다. 그 결과 북한교회 대표자들이 캔버라 총회에 초대를 받았다. 1988년에 WCC는 ‘여성과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10년 운동’을 지원하였다. 1989년에 산 안토니오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 대회에서는 ‘포용주의 구원론’을 받아들였고, 1990년에 서울 JPIC 대회가 열렸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

캔버라 총회는 성령론을 주제로 택하면서, 신앙고백이 아닌 기도형식을 사용했다. 총회 개막 연설에서 사무총장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 가지 우선 안건을 제시했다. 첫째, 탈근대화 시대에 세계적으로 종교부흥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교회는 성령이 모든 영성과 종교들 안에서 활동하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배타적으로 활동하는지 답해야 한다. 둘째, 사회주의가 붕괴했고 서구 자유주의(liberalism)도 파산했기 때문에, 교회는 대안적 사회 모델을 찾아야 한다. 셋째, 다양한 교파들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시적 일치가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카스트로의 말에서 주장하듯이 세계적으로 깊은 영적인 요구에 대한 열망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WCC는 새로운 성령론적 신학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총회는 환경문제와 생명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내었다. 총회 주제는 환경문제와 창조신학을 연결시켰고, 경제와 생태계에 대한 윤리가 교회의 삶 속에서 성찰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호주 원주민들의 땅에 대한 영성이 이러한 주제를 논의하는데 매개체가 되었다.

 

4) 교회일치론

 

캔버라 총회는 리마 예식서에 근거해서 4000명 이상의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것은 BEM 문서가 추구하는 일치를 예배로 표현한 것이다. 총회는 코이노니아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향후 WCC 교회론은 선교, 봉사, 일치가 교회론 안에서 통합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5) 총회 주제와 관련된 신학논쟁

 

캔버라 총회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성령론의 범위와 생태계 안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뜨거운 신학논쟁이 일어났다.

정현경 교수의 발표와 퍼포먼스는 성령의 활동이 기독론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과 동방정교회의 대표들은 그 입장을 종교 혼합주의 위협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현경 교수는 모든 교회들은 혼합적이며, 특히 서구교회들은 물질주의, 가부장제도, 군사주의와 혼합되었다고 응수했다. 동방교회 대표들은 성령에 관해 말하는 것은 성삼위일체에 관해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캔버라의 최종적인 결론은 “영들은 분별되어야 한다. 모든 영이 성령은 아니다. 성령을 분별하는 주요 기준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키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증언한다.”라고 했다.

 

또한 총회의 토론 문서는 생태계 안에서 인간중심성과 청지기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오만한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최종 선언문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고, 환경을 지키는 청지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했다.

 

8. 제8차 하라레 총회(1998)

 

1) 장소와 참가자들

 

WCC의 희년 총회는 아프리카 하라레에서 개최되었다. 아프리카는 그리스도인 인구가 집중된 곳이며, 가난, 인종갈등, 질병(AIDS/HIV)으로 고통 받는 장소이므로 희년이 절실하게 필요한 대륙이었다. 총회가 열리는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는데 WCC는 짐바브웨 애국전선을 지원하였다는 이유로 큰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1994년에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아프리카의 중요성이 고조되기도 했다.

 

하라레 총회에는 332개 회원교회로부터 960명의 총대가 참석했고, 4500명의 그리스도인이 모여 대규모 예배를 드렸다. 제5대 사무총장 독일의 콘라드 라이저(Konrad Raiser, 1993-2003) 박사가 총회를 준비했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동구권 해체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경제적 빈부차이를 심화시켰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외환위기가 초래했다. 경제적 위기로 인해 유럽 사회가 보수화 되었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과 재정에도 큰 위기가 나타났다.

 

1990년 이후 지구온난화와 엘니뇨현상이 세계적인 기상 이변을 일으켰고, 자원의 고갈과 인구 증가가 또 다른 위기로 등장했다. 1997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교토협약’(Kyoto Protocol)이 체결되었다. 1994년에 르완다 내전에는 끔찍한 인종 청소가 자행되었으나 국제 사회는 이것을 막지 못하고 묵인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Turn to God, Rejoice in Hope)

하라레 총회의 주제는 기독론, 성령론에 이어 삼위일체론으로 확대되었다. 이 주제는 희년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회개와 갱신을 강조했고, 로마서 12:12절에서 “소망 중에 기뻐하자”는 말을 인용했다. 사무총장 콘라드 라이저는 총회 주제를 언급하면서 ① 철저한 회개 및 방향전환과 자기평가, ②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화해와 일치로 초대, ③ 21세기의 전야에서 희망의 공동체가 되라는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브라질 여성신학자 데이펠트(Wanda Deifelt)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인간성으로 돌아가서 우리 시대의 특징인 고난과 고통과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코수케 고야마는 탕자를 끌어안는 아버지, 홈리스 예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붓기 위해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희망은 시간이야기”(time-story)가 아니라 “사랑이야기”(love-story)라고 말했다.

 

4) 총회의 특징

 

총회는 2000-2010을 ‘폭력극복을 위한 10년’(Decade to Overcome Violence)이라고 선언했고, 제3세계의 가난한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해 ‘부채탕감운동’을 전개하자고 선언했다.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공청회식 회무진행(Hearing)을 도입했고, 에큐메니칼 공간을 확대하는 의미로 ‘파다레’(열린마당)을 열어 놓았다.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의 이해와 비전〉(CUV)문서를 채택했는데, 이 문서는 향후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 ‘기독교포럼’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9. 제9차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2006)

 

1) 장소와 참가자들

 

포르토알레그레 총회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였다. WCC는 성장하는 오순절 교회들과의 친교를 확대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남미에서는 오순절 교회들이 급성장했고 이들에게는 사회참여 전통도 강했다. 식민지 착취와 군사독재를 경험한 브라질은 경제세계화의 결과로 극심한 빈부격차를 겪으면서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총회가 개최된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는 반세계화와 대안세계화 활동가들이 준비하는 세계사회포럼이 1~3회(2001-3) 개최된 곳이었다. 또한 남미는 좌파 및 중도 좌파 정권이 집권에 승리하면서 오랜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 총회에는 348개 회원교회로부터 691명의 총대가 참가했다. 제6대 사무총장 케냐 감리교회 출신의 새뮤얼 코비아(Samuel Kobia, 2004-2009)가 대회를 준비했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세계의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켰다.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2003년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자살 테러가 이어졌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2004년에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밀어닥친 최악의 쓰나미로 인해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5년 8월말에 카타리나 태풍으로 인해 미국의 뉴올리앙스에 1만 명이 희생되었다.

하라레 총회 이후 WCC 선교신학은 ① 복음과 문화, ② 세속주의 안에서 증언, ③ 건강과 치유라는 세 측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의 일치 안에서 선교와 전도〉(Mission and Evangelism in Unity Today, 2000)를 발표했다. 정교회 참여활성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합의결정제’(consensus decision-making)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 방식은 프르토 알레그레 총회에서부터 사용되었다. 세계평화를 위한 타종교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지속되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전에 대해 아가페 과정(AGAPE Process: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WCC는 특별히 아프리카의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HIV/AIDS극복을 지원하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권리를 강조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주제는 하라레 총회에 이어 하나님이 중심이 되었고 기도형식을 사용했다. 여기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다. 기독론적 주제에서 사용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와 세상의 대칭 구조가 여기서는 하나님과 세상의 대칭구조로 변화되었다. ‘은혜’라는 표현은 WCC의 3대 구성 요소인 개신교회, 동방교회, 오순절 교회의 신학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표현이었다.

 

이번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내적 위기 극복, 종교적 다원성 안에서 기독교의 정체성 확인이라는 내적 과제를 해결하고, 경제정의ㆍ환경파괴ㆍ폭력극복 평화실현이라는 외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많은 안건을 다루었다.

 

10. 제10차 부산총회(2013)

 

부산총회는 1961년 인도의 뉴델리 총회 이후 42년 만에 열리는 아시아 대륙의 총회이다. 그러나 부산 총회의 주제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한국교회의 요청이 크게 반영되었다.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의견은 부산총회의 주제가 생명의 중요성과 한국의 통일, 아시아의 정의와 평화 문제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이러한 의견을 모아 “삼위일체 하나님과 생명, 평화, 치유”를 WCC에 제안하였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생명’과 ‘평화’ 문제는 WCC 중앙위원회 안에서 큰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다른 한편, 아시아에서 ‘정의’ 문제는 중요한 선교적 과제라는 제안이 필리핀 교회로부터 나왔다.

 

그 결과 부산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로 결정되었다. 총회의 주제를 뒷받침 하는 성경구절로는 이사야 42:1~4절로 하나님의 종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고”(3절),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른다”(4절)는 것이었다. “갈대”와 “등불”은 생명을 나타내고, “꺾지 아니하며” “끄지 아니라고”는 평화를 나타내며, “공의”는 정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제는 9-10차 총회에 이어 ‘하나님’에 중심을 두면서 교회의 선교과제가 ‘생명’, ‘정의와 평화’인 것을 강조했다. WCC 총회 주제에서 ‘생명’이 언급된 것은 6차 뱅쿠버 총회였다. 그러나 정의와 평화가 주제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생명, 정의, 평화 문제가 교회의 일치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또한 이 주제는 WCC가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정의, 평화, 창조보전(JPIC)이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의제라는 점을 나타냈다.

 

이번 총회 주제를 결정하는 일에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공헌을 한 것만큼, 이제는 이 주제를 해석하고 교회의 삶에 깊숙이 반영하는 작업이 WCC 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Ⅲ. 맺음말

 

1.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9차례의 WCC 총회 주제들과 제10차 부산 총회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차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2차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3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4차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5차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6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

7차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8차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

9차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 시키소서

10차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

 

2. WCC 총회 주제들의 신학적 특징을 분석하면

 

⑴ 철저하게 삼위일체론에 근거하고 있다.

① 하나님: 1차, 4차, 8차, 9차, 10차 총회 주제들

② 기독론: 2차, 3차, 5차, 6차 총회 주제들

③ 성령론: 7차 총회 주제

 

WCC 창립총회의 주제는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희년총회를 거쳐 9차 총회에서 하나님으로 돌아왔다. WCC 총회 주제의 가장 중심에는 기독론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은 WCC의 초기 헌장에서 나타나듯이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친교” 였기 때문이다. 기독론적 주제는 늘 신앙고백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시대적 징표가 함께 등장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기독론”과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배타적이지 않게 공존했다.

 

WCC 총회 중 해방과 진보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4차 총회가 종말론을 사용한 것은 인상적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혁명성을 가장 잘 드러내어 준다. 그러나 역사적 진보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신학적 과제로 남아있다.

 

성령론은 영성문제와 생태계의 문제를 다룰 때 사용된 주제였다. 종교적 다원성의 사회 안에서 성령의 역할을 어디까지 개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전통적인 관점으로 돌아갔다.

 

⑵ 9차 총회에 이르기까지 총회 주제들 가운데 주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었고, 그 대상은 “세상”과 “만물”이었고, “교회”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WCC 선교신학이 하나님 선교 개념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교회는 그 선교의 도구이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일하시는 현장이 된다. 10차 총회의 주제는 주어가 하나님이고 그 대상은 “우리”(교회)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끄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⑶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화해론적인 혹은 성례전적인 주제가 나타난다. 이러한 개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관계하는 구속사적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①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섭리”(질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근거, “은혜”, “생명”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② 기독론과 관련되어서는 “소망”, “빛”, “자유”, “일치”, “생명”이 사용되었다.

③ 성령과 관련해서는 “만물을 새롭게”(창조신학)가 사용되었다.

 

3. 총회 주제는 고정된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새롭고 창조적인 에큐메니칼 성찰과 논쟁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을 택하였다. 주제형식은 다음과 같다.

 

⑴ 표어형식 :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1차)

⑵ 신앙고백 형식: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2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3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 (6차)

⑶ 성경인용 :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4차)

⑷ 선언 :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5차)

⑸ 기도형식: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7차)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9차)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10차)

⑹ 초대형식 :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8차)

 

4.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는 ‘세상’과 ‘교회’와 ‘성서’의 세 축이 긴밀하게 연결된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WCC의 주제와 분과토의 주제들을 보면 현실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WCC 주제들은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반드시 신학적 성찰과 과거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과(신학, 선교, 봉사)를 깊이 고려해서 결정하였다. WCC 총회주제는 교회의 신앙고백과 함께 세상의 시대적 징조를 해석하는 예언자적 통찰력과 신앙적 비전을 직관하는 예리한 수사학이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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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 이형기 옮김. 세계교회협의회 역대총회 종합보고서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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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자료모음2013.06.12 04:04

 

WCC란 무엇인가?

 

 


WCC 제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1. WCC란 무엇인가?

 


세계교회협의회 (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는“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입니다. ( WCC 헌장 제1조 )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세계의 흩어진 모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적 기구입니다. '에큐메니칼(Ecumenical)'은 헬라어'오이쿠메네'( oikoumene)에서 시작됐으며, '만물들이 살고 있는 온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이쿠메네는 신약성경에 몇 차례 등장하는데,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오이쿠메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지향하는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개념입니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 이를 통한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바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서입니다. 지금의 WCC는 1910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태동했습니다. 이 대회 후 당시 세계교회들은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와‘ 신앙과 직제 ’( Faith and Order ),‘ 삶과 봉사 ’( Life and Work ) 등 3개의 지속가능한 위원회를 구성했고, 이중에서‘신앙과 직제’와‘ 삶과 봉사’위원회가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전 세계 1백50여 개 교단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국제선교협의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WCC 3차 총회 때 WCC와 통합된 뒤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WCC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개신교회를 비롯해서 정교회와 가톨릭까지 참여한 가운데 성경이 말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확산해 나가는 것입니다.

 

 

2 .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말하는 일치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말하는‘ 일치 ’란 무엇일까요? 이 일치에 대해서 혹자는‘ 하나의 교회’를 만드는 구조적인 일치라고 주장하면서, 기구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에 있는 WCC가 결국은‘ 슈퍼처치 ’(거대한 하나의 교회 )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WCC 3차 총회가 채택한 선언문에서‘ 일치 ’에 대한 세계교회들의 입장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선언문에서는“ 교회의 일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단 한 번에 완전하게 주어졌다. 그 일치가 아버지께서 성령 안에서 아들과 함께 이루시는 삼위일체적인 일치에 근거한 것이다. 교회의 결정적인 근거인 이 일치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교회사에서 나타난 분열로 인해 이 일치가 무색해져 버렸다. 따라서 일치는‘ 하나님의 은사인 동시에 우리들의 과제 ’이다. 교회는 이 본질적인 일치를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또 친교와 증언, 그리고 봉사를 통해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워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라며 일치의 개념을 명확히 합니다.

 

이를 통해 본다면 WCC가 말하는 일치는 교회들 사이에서 관계된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치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치는 기본적으로‘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되는 것 ’(being the church)과 관련되어 있는 셈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모든 교회들이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교리와 질서, 그리고 삶에서 나타나는 교회들의 차이점과 반대되는 견해들을 상대화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강화시킴으로써, 교회들이 친교를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한 채 차이점과 반대 견해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 일치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말하는‘ 일치 ’는 적어도 신앙에 대한 공동의 고백, 성례전, 그 중에서도 특히 세례와 성만찬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실행, 사역에 대한 상호 인정, 의사 결정과 권위있는 가르침을 위한 공동의 결의 방법들에 대한 폭넓은 동의가 이루어져야만 실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WCC 회원은 누구인가?

 

현재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전 세계 1백40개국에 속한 3백49개의 교단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WCC는‘ 교회들의 협의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교회협의회(WCC)에는 개인이나 단체가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교단만이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교회협의회들은 파트너로서 협의체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5억7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교회 협의회로서 WCC는 세계에서 가장 폭넓고 포괄적인 에큐메니칼 기구이며, 정교회를 비롯해서 성공회, 개혁교회, 침례교회, 루터교회, 감리교회, 연합교회와 오순절교회까지 회원교회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 4개 교단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륙별 회원교단 현황을 보면 아프리카 대륙이 92개 교단, 1억3천2백만여명의 교인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 유럽대륙이 81개 회원교단으로 뒤를 잇고 있지만 교인수는 2억8천7백만여 명으로 아프리카를 상회합니다. 아시아교회는 75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으며, 교세는 6천2백6십만여명 수준입니다. 북미 대륙은 31개 교단(7천2백만여 명),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28개 교단(4백50만여 명), 태평양과 중동은 각각 17개 교단(20만여 명)과 12개 교단(9백70만여 명)이 WCC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4. WCC의 교회론은 무엇인가?


1948년 네델란드 암스텔담에서 창설된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협의회(The Council)의 성격, 협의회와 회원교회와의 관계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를 통해 깊이있게 논의하였습니다. 당시 토론토 중앙위원회는“ 교회, 교회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The Church, the churches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란 성명서를 채택했는데 ‘ 토론토 성명서 ’로 알려진 이 문서는 이후 WCC의 성격과 교회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이 문서는‘WCC가 아닌 것’과‘ WCC의 기초가 되는 강령들 ’에 대해서 명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WCC가 아닌 것 ’으로 다섯 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WCC는 단일교회(Super Church)도 아니고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2. WCC의 목적은 교회 간의 연합을 협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 간의 연합은(연합을 원하는) 교회의 주도로 교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일 뿐 (WCC가 하는 일은) 교회들이 서로 접촉하고 교회 일치 문제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촉진하는 일이다.
3. WCC는 특정한 교회 개념에 기초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WCC는 교회론적 문제를 예단하지 않는다.
4. WCC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그 회원교회가 자기 교회의 개념을 상대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5. WCC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교회일치의 본질에 관한 어떤 특정한 교리를 수용해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명서는 WCC가 단일교회를 지향하지 않으며, 어떤 특정한 신학이나 특정한 교회개념에 의해 구성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WCC 안에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떤 특정 교회론이나 신학의 목소리가 높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교회론과 신학들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곳이지 어떤 특정 신학과 교회개념을 규정하는 곳은 아닙니다. 또한, WCC의 기초가 되는 강령들을 다 종합하면 결국 WCC에 가입하여 회원이 된다고 해서 WCC가 규정하는 어떤 획일적인 교회론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회원교회는 자기 교회가 믿고 있는 교회론과 치리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교회를 모두 부정할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 안에서 진정한 교회의 요소들이 있을을 인정하고 다른 교회에게도 부과하신 주님의 사명을 확인하고 성부와 성자, 성령이 맡기신 사명을 함께 감당하는 거룩한 교제를 하자는 뜻입니다.


WCC의 교회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절대적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서로 상대적인 교회들이 대화하며 교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거룩한 교회를 바라보며‘ 함께 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봉사하며, 함께 자라자’는 것이 WCC의 정신입니다.

 

 

5. WCC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WCC의 신앙고백이 의심스럽다?


WCC는 헌장 제1조에서“ 세계교회 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Fellowship, Koinonia)이다.”라고 그 신앙적 근거와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WCC는 같은 헌장에서“ 한 믿음, 한 성례전적 교제 안에서의 가시적 일치, 예배와 공동생활, 세상을 향해 함께 증언하고 봉사함으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어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 ”이라고 그 목적과 기능을 밝히고 있습니다. WCC는 이처럼 성경,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위에 굳게 선 세계교회 연합체입니다.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저희가 다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하기 위한 세계교회의 공동 노력입니다.
WCC에는 기독교를 사칭하는 온갖 단체가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예수를 안 믿고 다른 종교를 믿는 단체도 들어와 있지 않느냐고 극단적인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WCC의 회원교단이 되는 과정만 살펴봐도 드러납니다. WCC의 회원이 되려면 먼저 헌장 제1조에 해당하는 교단의 신앙고백을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중앙위원회 회원영입위원회가 이를 심사하고 통과되면 해당 국가에 이미 회원이 되어 있는 교단에 신청교단에 관한 확인을 요청합니다. 만일 입회신청을 한 교단이 정당한 교단이 아니라면 WCC는 결코 그 교단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WCC의 신앙고백은 분명합니다.


2. WCC는 선교에는 관심이 없다?


1910년 에딘버러에서 선교와 일치를 위해 전 세계교회가 함께 모인 세계선교대회가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직접적 배경인 것은 엄연한 역사적사실입니다. 지금도 WCC안에는 에딘버러 대회의 전통을 이어오는“선교와 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가 지속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무국에는 ‘ 선교와 전도 일치국’이 설치되어 세계교회의 선교와 전도에 대한 지원과 협력, 선교신학의 성찰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WCC 선교와 전도위원회는 복음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증언되어야 하는 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WCC는 총회와 별도로 총회만큼이나 큰 규모로 진행하는 양대 대회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독교 교리를 다루는 신앙과 직제 대회이고 다른 하나가 선교를 다루는 선교와 전도 대회입니다. 2013년 부산총회에서도 새로운 에큐메니칼 선교선언이 채택될 예정입니다.


3. WCC는 용공이다?


WCC는 교회의 협의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한 적이 없습니다. WCC에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인가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WCC는 냉전시대 때 공산체제 속에 있는 교회도 회원교회로 받아들였고 함께 교제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용공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은 복음을 이념 아래에 두는 셈이 됩니다.
우리가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은 공산체제아래 있던 교회들의 보존을 위해 WCC가 엄청나게 노력했고 그 노력으로 공산권이 무너졌을 때 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북한 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는데도 WCC가 정치적 장벽을 무릅쓰고 교제를 시도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편, WCC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를 통해“ 우리는 유엔이 세계질서의 도구로서 이 침략에 맞서서 신속한 결정을 취해 줄 것과 모든 회원 국가가 지지하는 경찰 조치를 허가해 줄 것을 권고한다 ”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WCC의 용공시비는 인간의 이념의 산물입니다.

4.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


WCC 안에는 선교와 전도, 기독교교육 이외에 거대한 양대 산맥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 ’로 신앙과 일치를 강조하는 면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 ’로서 복음의 사회적 증언을 강조하는 측면입니다. 한국에는 WCC가 70, 80년대의 사회상황과 관련해 인권과 민주화 등에 많은 지원을 했기 때문에 WCC의 사회선교적 측면만 부각되어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고 알려진 듯합니다. 그러나 WCC 안에는 신앙과 일치를 강조하는 흐름과 복음의 사회적 증언을 강조하는 흐름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선교에도 두 흐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인권이나 민주화 같은 사회적 증언이고 또 하나의 흐름은 사회봉사(Diakonia)입니다. WCC의 사회선교에는 봉사의 면도 강하게 포함돼 있습니다.


5. WCC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사실 WCC의 신학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WCC는 회원교회들의 다양한 신학이 서로 대화하고 조정하고 공통의 신학적 견해를 찾아가는 문자 그대로‘협의체’(Council)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하면 WCC 고유의 신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WCC 안에는 여러 신학노선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자유주의 신학도 존재하고 엄청나게 보수주의적 신학도 존재합니다. 정교회의 신학은 한국의 보수신학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회원교회 중에는 복음주의교회, 오순절 교회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습니다.

 

6. WCC는 가시적 일치를 주장한다?


 

WCC가 추구하는 그 가시적 일치란 외형적 일치 혹은 구조적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일치를 가시화하자는 것이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것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도 하나가 되어 하나이신 하나님 안에 있길 원하셨고 그 목적은 세상으로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선교와 일치의 부름은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모태가 된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의 비전이기도 했습니다.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는 이런 선교적 목적 때문이지 결코 세계 교회의 외형적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7. WCC는 다원주의다?


WCC는 종교 간의 교리를 섞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WCC 밖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도 그렇지만 WCC 안에 있는 양대 교회, 즉 정교회와 개신교회도 결코 서로의 교리를 섞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에 교리적 일치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하물며 종교 간의 교리를 섞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WCC는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함께 독립선언을 했듯이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류의 화해를 위한 인류공동의 과제 때문에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교 간의 협력과 다원주의는 다릅니다. WCC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하는 이유는 첫째는 선교를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타종교가 다수종교인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셋째는 인류의 평화나 생태계 보호와 같은 인류 공동의 과제를 위한 종교 간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종교 간에 협력을 하는 모습은 세속사회가 종교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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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자료모음2013.06.09 17:14



 2012년 3월 2일, 극동방송 주최 ‘한국교회와 WCC 부산총회’ 특집 좌담회


참석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김장환 목사(극동방송이사장)

김삼환 목사(WCC한국준비위원장)

사회 최이우 목사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WCC(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는 세계 기독교에 있어 가장 큰 축제로 한국교회에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WCC 부산총회를 소개해 달라.


김삼환 목사 - WCC 부산총회는 2013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진행된다. 총회장소는 부산 벡스코로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다. 세계 140개국에서 349개 교단 지도자가 참석한다. 이들 지도자들은 21세기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토론하며 전세계교회가 해야 할 일을 찾는다. 그 결정에 따라 7년간 세계교회가 사역을 추진한다.




128년 역사를 지닌 한국교회가 WCC 부산총회를 계기로 세계 교회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


김장환 목사 - 조용기 목사님과 저는 세계적으로 여러 대회도 많이 참석하고 한국에서 대규모 대회도 치러봤다. 한국에서 WCC 총회가 개최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 위상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해외 지도자들이 새벽기도회와 금요철야 등 말씀중심의 영적 분위기를 배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특히 김삼환 목사님 같이 말씀과 교회론, 새벽기도 등에서 보수신앙을 지닌 분이 WCC 한국준비위원장을 맡았다는 게 한결 마음이 놓인다.




한국교회 안에는 아직도 WCC가 어떤 기구인지 모르는 성도들이 많다.


김삼환 목사 - 종교개혁 전까지는 로마 가톨릭이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교회를 통치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등 여러 교파로 나뉘었고 공동의 목적 아래 대화와 선교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결과 140개국, 5억8000만 크리스천이 참여하는 WCC가 1948년 창설 됐다. WCC는 남한은 물론 북한도 도우면서 구제와 봉사에도 힘쓴 선교기구다. 기독교에서 전체 세계 교회를 품는 기구는 가톨릭과 WCC밖에 없다.




보수적 교회와 교인들은 여전히 WCC가 친북성향을 갖고 있다고 우려한다.


조용기 목사 - WCC 부산총회 문제를 두고 친북 좌파 논란과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끌어들이면 안된다. 우리는 WCC 운동을 통해 북한과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북한을 도울 때 남북통일의 좋은 기초를 닦을 수 있다. 친북 좌파는 보수주의 기독교에서 WCC를 공격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이다. 오해다. 사실 극보수 하면 저라고 할 수 있다. 제가 여기에 참여하게 된 것은 세계 70개국 400여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한 경험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교파가 있는데 서로 내 교회, 내 교파를 따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한 하나님 아버지, 한 성경, 한 성령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합쳐 연합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김장환 목사님과 나는 교단적으로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거룩함,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캐릭터는 같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목적 아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WCC가 종교다원주의와 연관돼 있다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조용기 목사 - 기독교는 다원주의를 절대 허용할 수 없다. 구원은 예수님 밖에 없다. 인간이 여러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는 있지만 구원은 한 길밖에 없다. WCC는 분명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잘못 전달된 것이다.


김장환 목사 -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으로 5년간 재직할 때 천주교 쪽에서 교황과 대화를 하러 오라고 초청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갔다면 보수적인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는 미국 밥존스대학교 동문에서 제명당했을 것이다. 물론 예수의 이름으로 대화는 할 수 있지만 그들이 믿는 신앙은 신봉하지 않는다. WCC가 다원주의를 신봉했다면 나 역시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건설적인 면에서 부산 대회를 협조하고 도왔으면 한다.


김삼환 목사 - 일례로 우리 가족은 여당도 지지하고 야당도 지지한다. 하나의 가족이지만 사회 참여와 정치적 문제에선 다양한 표현을 한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극좌나 극우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WCC의 신학자 중에서 한 사람이 다원주의를 주장했다 하더라도 전체를 다원주의로 몰면 안 된다. WCC의 신앙고백의 핵심은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국준비위원장인 나부터 절대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WCC 부산총회가 한반도 평화통일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말씀해 달라.


조용기 목사 - 이솝우화에서 외투를 입고 가는 사람의 옷을 벗겼던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었다. 북한도 압력을 가하면 저항하기 위해서 점점 더 강하게 반응하게 돼 있다. 사랑을 베풀어야 조금씩 마음 문이 열린다.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북한을 위해 헌금하고 기도회를 하면 남북통일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탁의 말씀을 해 달라.


김삼환 목사 - WCC 총회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섬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7년마다 열리는 총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50∼60년 안에 다시 한번 개최하기 어려울 것이다. WCC가 다원주의나 용공이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저는 그분들이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해 강한 사명감을 지닌 분들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한다. 그분들의 염려를 꼭 참고하겠다. 우리는 다원주의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 하나님 없는 무신론주의와 끝까지 싸워야 하고 복음으로 회개시켜야 한다. 이 잔치를 잘 개최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 여러분의 많은 충고와 기도부탁 드린다.


김장환 목사 - 원래 큰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이제는 성숙해야 한다. ‘저 사람이 하면 난 절대 안 한다 ’하는 이런 자세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자기가 가진 외고집을 내려놓고 협조해야 한다. 총회를 열기도 전부터 칼날로 자르듯 난도질하면 안된다. 큰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협조하고 평가는 그 다음에 하는 것이다. 김삼환 목사가 준비위원장이라는 어렵고 힘든 자리를 맡아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일을 하고 있다. 우리 고문들도 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겠다.


조용기 목사 -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공했기에 총회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고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교회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힘을 합쳐야 한다. 저 역시 김삼환 목사님을 정말 존경한다. 목회도 훌륭하게 하고 최근 교회도 잘 지었다. 고문으로서 WCC총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적극 돕겠다.



Posted by 숑숑숑~
WCC 자료모음2013.06.08 16:40


WCC 란 무엇인가?

WCC 논쟁과 관련하여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WCC에 대해 잘 모르고 한다는 점이다.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WCC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WCC는 무엇인가? WCC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WCC, 즉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전 세계 140개국에 산재한 349개의 정교회와 개신교회가 공동의 신앙고백을 하고 공동으로 선교하고 공동으로 지구사회에 봉사하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연합체이다. 그러나 WCC가 규모보다 더욱 중요하게 추구하는 것은 신약과 구약에 나타난 두 핵심적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신앙적 응답 때문이다.

첫째로 WCC의 목적은 예수님의 기도를 응답으로 성취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구원사역을 다 마치시고 잡히시기 직전에 하나님께 이렇게 최후 기도를 드린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예수님의 최후의 기도의 핵심적 목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세상의 모든 인류와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이 믿게 하는 선교이기도 하다. WCC의 직접적 목적은 바로 예수님의 이 기도에 응답하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둘째로, WCC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시고 장차 완성하실 그 한 세계를 지향하는 신앙운동이다. WCC가 전개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말의 어원인 희랍어 ‘오이코스’(Oikos)는 ‘집’, ‘가정’이란 뜻이다. 기독교에서는 전 우주를 ‘하나님의 집’으로 본다. 에큐메니칼이란 말은 희랍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온 말로서 그 뜻은 ’하나님의 집에 사는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식구들‘, 에베소서 2:19절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의 권속‘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태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고 번성하며 살라고 하셨다(창 1-2장). 창조 후 하나님은 ”보기에 좋다“고 만족해 하셨고 사람을 지으시고는 ’매우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집 이름을 ’기쁨‘이란 뜻인 ‘에덴’으로 지으셨다. 인간의 타락 후 이 하나님이 기뻐하신 조화로운 세계가 깨어졌는데 이 깨어진 하나님의 한 세계, 한 가족을 회복하는 것이 곧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계획, 원대한 구원계획에 응답하는 교회의 신앙적 응답이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곧 복음적 운동이다. 에큐메니칼 비전을 반대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비전을 반대한다는 말과 같다. 진실로 에큐메니칼 하면 에반젤리칼 하고, 진실로 에반젤리칼 하면 에큐메니칼 해야 한다.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WCC가 창설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세계 제1, 2차 대전이었다. 역사적으로 유럽이 기독교 국가였는데 소위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대륙에서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순전히 인간의 이념 때문에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이후 유럽교회들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우리가 소위 기독교국가들이고 세계문명을 기독교문명으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세계선교를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있는가?” 그래서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 국제연합을 만들어 다시는 전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일어났는데 교회는 신앙적 차원에서는 세계교회를 함께 모으는 WCC를 창설하여 하나님의 본래의 명령을 이 시대 속에 이루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WCC는 오랫동안의 준비를 거쳐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WCC를 창립했다. WCC는 분열만 하는 세계와 세계교회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 명제를 붙들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바로 서고 복음의 명령에 신실하게 응답하려는 세계교회들의 참회운동이고 신앙고백운동이다.


1. WCC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WCC에는 이슬람, 불교, 심지어, 시민단체도 가입되어 있다는 오해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안에는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 불교, 심지어 시민단체도 가입되어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WCC의 존재근거의 시작인 헌장 제1조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Fellowship, Koinonia)이다.”[각주:1] 라고 그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WCC는 교회들의 연합체이고 교회가 아니면 WCC에 가입할 수 없다. 심지어 NCC도 가입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NCC가 WCC의 산하단체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협력단체일 뿐이다.

WCC에 가입하려면 가입하고자 나는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것이 WCC 헌장 1조의 신앙고백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서류심사가 통과되면 같은 지역의 기존 회원교회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국의 경우 회원교회인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한국정교회대교구의 동의를 구하게 되는데 이 중 한 교회라도 반대하면 가입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는 교회는 참여할 수 없다. 심지어 기독교기관도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만이 아니라 마호메트, 석가모니, 심지어 모택동까지 신봉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 무근이며 거짓 증거이다. WCC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동증언, 공동봉사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2. WCC는 다양성속의 일치를 추구한다.

WCC가 모든 교파를 통합하여 단일교회를 만들려 한다는 의심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가 세계의 모든 교단을 통합하여 세계단일교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의구심은 합동과 통합의 분열명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WCC는 최초부터 단일교회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지금 단일교회가 되지도 않았다. WCC가 추구하는 일치는 획일적 일치나 기구적 일치가 아니고 다양성속의 일치이다. 즉 개 교회의 보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로 연결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1950년 토론토에서 열린 중앙위원회가 “세계교회협의회는 단일교회도 아니고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그 성격을 규정한데서도 명백히 나타난다.[각주:2]

WCC가 항상 강조하는 일치는 다양성속의 일치이다. “WCC의 기초가 되는 강령들” 8항에 따르면 “WCC 회원교회는 서로 영적 관계 속에 들어가 서로 배우며 서로 도와주어 그리스도의 몸을 굳건히 세우고 교회의 삶이 갱신되도록”[각주:3]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함에 있어서 1항에서 “WCC 회원교회들은 대화를 하든지 협력을 하든지 교회의 공동증언을 하든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거룩한 머리라는 공동의 인식에 근거해서 해야 한다”[각주:4]라고 밝히고 있다. WCC는 이렇게 세계교회가 다양하지만 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다양한 지체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정통 기독론(451년 칼케돈신조)과 정통 삼위일체론(381년 네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을 배경으로 하는 ‘교리헌장’을 공통분모로 하여 ①사도적 신앙의 공동이해, ②성례전의 상호인정, ③권위 있는 공동의 가르침과 결의구조 등을 함께 하는 교회의 협의회적 친교를 추구한다. 이것이 곧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각주:5]이다. WCC는 ‘일치는 교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각 교회는 보편적 교회지만 전체는 아니다. 각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거룩한 교제로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보편적 교회성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 있다.'[각주:6]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도신경의 우주적 공교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3. WCC는 성경의 권위 위에 굳게 서 있다.

WCC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는 낭설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혹은 성경 전체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위에 굳게 서 있는 한국의 회원교회들을 비롯한 전 세계 349개 교회들의 교제인 WCC는 성경의 권위위에 굳게 서 있다. WCC 정신의 근간이 되는 헌장 제1조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라고 WCC의 존재기반이 성경위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WCC의 성경관을 확연히 밝히고 있는 1978년 방갈로문서[각주:7]에 따르면 성경은 ‘전 창조세계와 민족들과 개개인의 삶을 다루고 계시는 한 분이며 동일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라고 전제하고[각주:8] 신약의 특수성을 ① 하나님을 계시한 예수 그리스도, ② 성육신이 되신 말씀, ③ 화해의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④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하나님에 의한 희망의 역사 완성, ⑤ 성령을 통한 구약의 메시지의 보편화 ⑥ 구약성서와 신약성경의 상통성 등으로 밝히고 있다. 동 문서는 구약의 특성으로 ① 하나님을 창조주, 역사의 주, 정의의 심판자로 계시 ② 하나님의 거룩성과 피조물에 대한 애타는 사랑 강조, ③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창조와 자연에 대한 관심, ④ 개인의 도덕과 윤리뿐 아닌 구조악의 변혁에 대한 요구, ⑤ 공동체성과 현세에 대한 관심 강조 등도 밝히고 있다.[각주:9] 이 외에도 WCC의 대부분 문서는 어떤 신학적 주장을 할 때 성경 인용을 하면서 성경적 근거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WCC는 성경을 믿지 않는다거나 부인한다는 것은 거짓 증언이다.


4.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부정하고, 석가, 마호메트, 공자, 모택동 등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WCC는 헌장 제1조에도 이렇게 밝히고 있지만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가진 창립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선포했다: “세상을 위한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은 세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선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하신 말씀으로서 사셨고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이 악의 세력을 단번에 부수시고, 모두가 성령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문을 여셨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역사와 각 개인의 행위에 대한 최후 심판이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심판이 될 것이며, 역사의 종말은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이 세상을 사랑하셨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이다.[각주:10]

이 메시지는 WCC가 창립하면서 세계 앞에 공표한 것으로서 WCC의 공식적 입장이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하신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최후의 심판과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의 희망의 역사로 이끄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WCC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다거나 다른 피조물과 동격으로 놓는다는 주장은 거짓된 주장이다.


5. WCC는 편파적 신학이 아닌 온전한 신학을 추구한다.

WCC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 일변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WCC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회원자격요건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중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WCC의 교회일치노력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교회일치를 위한 WCC의 기본원칙은 ‘다양성속의 일치’ 혹은 ‘다양성 속의 코이노니아’이다. 교회의 최대 아픔중의 하나인 교회분열의 명분은 항상 교리에 대한 이해차이였다. WCC안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 속에 있는 349개의 다양한 교회가 있다. 신학적 이해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한 교파의 신학을 다른 교회에 강요할 수 없다. 따라서 WCC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를 통해 세계교회간에 신학과 교리의 차이에 대해 늘 대화하면서 공통의 분모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WCC는 각 교회가 처한 상황을 반영한 신학적 다양성을 상호 인정하면서도 정통 기독론(451, 칼케돈신조)과 정통 삼위일체론(38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을 배경으로 하는 ‘교리헌장’을 공통분모로 하는 다양성 속의 일치, 다양성 속의 코이노니아를 늘 추구해 왔다. 따라서 WCC는 회원교회가 가진 다양한 신학을 함께 성찰하면서도 그 다양한 신학적 사고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일치점을 항상 추구하는 온전한 신학을 지향하고 있다.

WCC 반대자들은 WCC의 사회참여와 시대의 도전에 응답하는 복음의 증언을 자유주의 신학으로 규정하는 것 같다. 이것도 WCC의 복음이해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잘 모르는 이해부족이다. WCC의 신학이 사회참여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던 정통복음주의권인 로잔언약 그룹도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를 위한 국제대회’에서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형태의 소외, 억압,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임도 의미한다.”[각주:11]며 ‘기독교 사회적 책임’을 선언함으로써 복음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했다.[각주:12]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제2차 로잔 복음주의자세계대회(1989, 마닐라)와 “제3차 로잔 복음주의자세계대회(2010, 케이프타운)로 이어진다. 2012년 3월 마닐라에서 열렸던 WCC선교대회에 참여한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의 선교는 ‘온전한 교회로서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온전하게 증거하는 것’이라는 WCC의 선교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복음의 통전적 넓이에 공감을 표현하였다. 세계교회에는 이처럼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칼권의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고 있다.


6. WCC는 선교와 전도를 교회의 존재가치로 고백한다.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가 다원주의를 신봉하며 개종전도금지를 선포했다고 하는데 WCC는 결코 개종전도금지를 선포한 적이 없다. 이것은 WCC의 생성동기나 역사나 현재의 선교노력,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하는 말이다. WCC가 태동한 모태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였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WCC 제1차 총회 메시지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아직 수많은 동료인류가 복음을 듣지 못했다. 우리가 여러 대륙에서 여기에 모인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교회를 독려하시어 복음이 세상 만방에 전해지도록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사랑 안에 살며 그가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기를 기도한다.”[각주:13] 또한 1982년에 발표한 WCC 공식선교문서인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이란 문서를 보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이 임무는 하나님의 나라의 세포인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섬기는 교회가 모든 인간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각주:14]고 강조한다. 이런데 어떻게 WCC가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고 하는가?

WCC는 2011년 세계복음주의연맹과 로마카톨릭교회와 더불어 선교에 대한 행동강령에 합의한 바가 있다. 이 합의는 모처럼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칼권과 로마카톨릭교회까지도 선교강령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는데 큰 뜻이 있는데 혹자는 이 문서에서 다른 종교가 강세인 지역에는 선교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표명같은 것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회의 본질이 선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는 그리스도인의 복음전도는 그 표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행해야 하며, 복음전도는 어떤 국가나 어떤 문화나 어떤 체제도 막을 수 없다는 ‘신앙의 자유’를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다종교 사회 속에서 복음전도를 할 때는 타인에 대해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도활동을 함에 있어 속임수나 물질공세나 강압적 수단과 같은 부적절한 방법을 쓴다면 이것은 곧 복음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각주:15] 말하자면 이것은 양 훔치기식 전도방식(Proselytism)이고, 역증거 혹은 ‘증거의 부패’가 된다는 말이다. 사실 에큐메니칼운동이 염려하는 것은 기독교교회간의 양 훔치기식 전도방식이다. 예를 들면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기존 교회가 있는 500미터 안에는 교회개척을 할 수 없도록 하는데 이 규정을 세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20세기 초 에큐메니칼운동이 시작된 동기 중의 하나도 바로 이 문제이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후 자본주의권의 교회가 러시아와 같은 동구권에 들어가 가전제품 같은 물질을 상품으로 걸고 전도운동을 할 때에 이 문제가 극심했다. 이것은 복음을 상품화하는 행위이므로 이런 식의 전도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 WCC에 참여하는 교회들의 생각이다.


7. WCC의 선교유예선언은 아프리카교회의 자립성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WCC는 선교유예를 선언함으로써 선교를 포기했다는 거짓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가 선교유예(moratorium)를 선언하고 더 이상 선교하기를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인용하는 선교유예는 케냐의 동아프리카 교회 지도자인 존 가투(John Gatu) 목사가 선언한 것인데 그가 선교유예를 선언한 내용의 문맥을 살펴보면 결코 선교를 포기하거나 중지선언하지 않았다. 가투 목사가 선교유예를 절규한 이유는 아프리카 교회의 독립과 자립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다. 수백 년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아프리카 교회가 계속 서구교회의 선교사들과 선교자금에 의지한다면 결코 자력으로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프리카교회가 아프리카 상황 속에서 선교를 수행할 능력을 키우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정부들과 국민들이 경제적, 사회적 의존성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바로 선교자금과 선교사를 계속 받는 것을 중지하는 선교유예가 되어야 한다.”[각주:16]는 것이 그의 선교유예론이었다. 말하자면 자력으로 선교하고 목회하는 교회가 되려면 서구교회로부터 선교사와 선교자금을 받는 것을 중지해야하며 그래야 아프리카 교회는 자립할 수 있는 교회가 된다는 요지이다. 이 속에는 아직도 그 숙제가 풀리지 않는 아프리카 정부들과 국민들의 경제적 자립, 정치사회적 독립까지도 염두에 둔 깊은 고뇌의 선택인 것이다. WCC가 1982년에 발표한 공식선교선언문인 「선교와 전도-에큐메니칼 확언」이란 성명서에는 “선교의 유예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좋은 선교를 위한 선교유예는 언제든지 가능하며 어떤 때는 필요할 것이다.”[각주:17]라고 선언되어 있다. 선교유예는 선교중지나 포기가 아닌 더 좋은 선교를 하기 위함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사상 드물게 교회성장과 자립성을 동시에 이룩한 교회이다. 여기에는 한국 선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네비우스선교방식도 큰 영향을 끼쳤다. 네비우스선교방식은 ‘자치, 자립, 자전'의 원칙이다. 아프리카 교회가 선언한 선교유예는 바로 아프리카 교회가 자치적, 자립적, 자전적 교회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것은 오늘의 한국교회의 자립적 성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네비우스선교방법의 아프리카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피 선교교회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교회성숙의 과정중의 하나이다.


8. WCC가 사회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전적 선교를 한다.

WCC는 사회선교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는 사회선교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 WCC를 전체적으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가 사회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WCC활동에는 양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흐름으로 신앙과 일치 문제를 다루는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흐름으로 복음의 실천적 증언을 다루는 분야이다. 여기에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교육’이 덧붙여져 WCC활동의 4대 분야를 구성한다. 여기에서 ‘삶과 일’의 흐름은 다시 두 분야로 나뉘는데 한 분야는 인권운동, 평화운동, 정의운동과 같은 사회적 증언운동이고 또 다른 분야는 긴급구호, 재해구호, 재건 등의 봉사활동이다. WCC 창설직후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유럽을 재건하는 일이 WCC의 주된 사회선교영역이었다.

이런 WCC의 통전적 활동이 한국에는 사회선교, 정치참여로만 각인된 데는 한국의 70년대 80년대 상황과 관련이 있다. 70, 8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상황은 군사독제, 인권침해, 민주화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이 상황 속에서 WCC는 한국의 인권신장,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공동선교, 협력선교, 기독교연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독재정권으로부터 반정부운동으로 비춰졌고 따라서 당시 정권은 WCC가 정치집단, 용공세력, 반정부단체라고 역선전하였다. 이 때문에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 정치집단이다. 반정부집단이다, 불온한 단체이다.’라는 각인이 찍혔다. 그러나 WCC의 이러한 연대는 한국의 민주화, 인권신장, 사회정의,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늘 동행하며 민족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옴으로써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교회와 ‘짐을 서로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갈 6:2) 세계교회의 공동선교활동이라고 보아야 옳다.

WCC의 사회적 증언은 단순한 사회참여 차원이 아니고 ‘성경적 근거’와 ‘신앙적 부름’때문에 이루어지는 복음증언이다. 인종주의에 대한 WCC의 입장이 그 한 예이다. 1954년 제2차 에반스톤 총회에서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총회는 '인종, 피부색, 종족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복음과 교회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선언하고 모든 회원교회가 자신들의 삶과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나치주의에 대한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이외의 어떤 주권도 인정할 수 없는 독일교회의 신앙고백 행동이었고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고 격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대한 저항은 그리스도 안에 어떤 인종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복음을 거역할 수 없다는 고백이었다. 바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룬”(고전 12:13) 교회가 인종차별을 한다면 이것은 복음에 대한 배반이고 속임이다. WCC가 인종차별철폐를 한다거나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평화를 세우는 일은 사회참여, 정치참여가 아니라 그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선포이자 신앙의 증언이다.


9. WCC는 복음의 가치가 인간의 이념보다 상위라고 선언한다.

WCC는 용공 및 게릴라 자금지원단체라는 허위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의 또 하나 비판은 WCC는 용공단체이며 공산게릴라에 자금을 대주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산권에 있는 교회들이 WCC에 가입하고 있으니 용공단체가 아니냐는 식이다. 사실 관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오히려 복음과 교회를 인간의 이념에 종속시킬 수 있는 행위이다. WCC의 기본입장은 ①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우선한다. ② 인간의 어떤 이념이나 정치체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부여신 인권, 자유, 평화, 신앙의 자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책임적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WCC 창립총회부터 나타났다. 그 때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에서 온 대표들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을 때 WCC는 ‘교회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해서 안 되고 “어떤 인간의 문명이나 이념도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각주:18]며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우선하며 기독교인은 어떤 체제 속에 있더라도 책임적 사명을 다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WCC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 그 교회가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더라도 회원교회로 받아들인다.

WCC를 용공단체로 낙인찍은 일은 미국의 극우반공주의자 칼 메킨타이어와 그가 이끄는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은 남아공 인종차별백인정권이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될 때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은 백인, 흑인, 유색인종을 철저히 분리하는 인종분리정책을 써왔다. WCC는 제4차 총회(1968, 웁살라)에서 인종차별은 단순한 인권문제가 아니라 복음과 위배되는 신앙적 문제로 인식하고 ‘인종차별철폐운동’을 전개한다. 이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흑인해방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미국의 백인보수세력과 유럽의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식민사관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웁살라총회에서 주제연설을 하게 되어 있었으나 직전에 암살당했다. 또한 당시 아프리카 도처에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것도 과거 식민지 지배를 하던 서구의 보수세력에게는 크게 위험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WCC를 비롯하여 인종철폐운동과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모든 단체들을 용공세력으로, 그들이 지원하는 운동을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매도했다. 남아공 백인정부를 대변하던 ‘아프리카 인스티튜트 뷸러틴’에 실린 ‘테러후원’이라는 글[각주:19]에는 테러후원단체가 망라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WCC뿐 아니라 UN, 아프리카일치기구(OAU), 아프리카교회협의회, 영국교회협의회, 심지어 미국연합장로교회까지 공산주의를 지원하는 테러후원세력으로 분류했다. 로데시아 반군 자금지원설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것이 게릴라지원운동이라면 한국의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지원도 모두 게릴라지원이 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교회는 세상이념이나 세상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안 된다.

WCC는 동서가 이념으로 갈라져 있을 때 꾸준히 공산권에 있는 교회들을 WCC에 참여시키며 세계교회와 교제하게 했다. 그 결과 1990년대 공산권이 해체되었을 때 교회가 그나마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고 러시아나 동구권 교회 안에 세례희망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우리 한국교회는 WCC를 용공이라 비난할 것이 아니라 WCC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북한선교에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던 1980년대에 북한에 신앙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 그리고 교회가 존재하는데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바로 WCC이기 때문이다. WCC의 교섭과 활동으로 북한에는 1983년에 분단 후 처음으로 성경찬송 5천부가 인쇄되었고 1988년에는 평양봉수교회가 건립되었다. 1986년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그리스도인들을 제네바에 초청하여 남북교회가 만나게 했고 이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세계로 불러내 세계교회와 교제케 했다. 교회는 월남했어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월남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면서 에스겔 37장에 유다와 이스라엘, 남과 북을 통일시켰듯이 북한교회와 남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을 하셨다고 믿는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도운 것이 WCC이다. WCC는 용공단체가 아니라 공산주의체제 속에 있는 교회도 지켜온 선교단체이다.


10. WCC는 기독교신앙에 굳게 서서 종교 간의 대화를 도모한다.

WCC는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이 근자에 가장 많이 제기하는 문제가 WCC가 다원주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도 WCC가 왜, 종교 간의 대화를 해 왔는지, 어떤 입장으로 해 왔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그러나 WCC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기독교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표가 서로 다른 교파들 사이에 교리적 일치를 이루는 것인데 성찬에 관한 교리가 달라서 아직 회원교회가 성찬도 같이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데 어떻게 기독교교리를 타종교의 교리와 섞는 것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WCC가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아랍 국가들처럼 다른 종교가 국교나 다수인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기독교신앙으로 개종하는 개인이나 교회의 활동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이들의 신앙과 교회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장치가 필요해서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위한 협력을 위해서이다. 3.1운동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독립선언을 선포한 예가 바로 민족공통의 문제를 위해 종교 간에 협력을 한 예이다. 9.11 테러 이후 종교가 국가나 문명 간의 갈등에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 간의 협력의 필요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 경우 협력을 할 뿐이지 결코 교리적 사안은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세 번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신앙적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만유의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어떻게 역사하실까? 말씀이 태초부터 계셨는데(요1:1) 기독교복음이 전해지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유 안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으며 하나님의 영 역시 오순절 이전부터 역사와 창조 속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다면 이것이 모든 종교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종교간의 대화 이면에는 이런 신학적 질문이 늘 있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는 1961년 뉴델리 총회 이후 본격화 되었지만 종교 간의 문제에 대해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은 1928년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국제선교대회가 발표한 「세계를 향한 부름」이란 성명서이다. 요지는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비추신 생명의 빛이시다. 빛은 안 비추이는 곳이 없다. 따라서 비록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빛으로 비추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각주:20] 이것은 종교 간의 대화라기보다 선교선언이 아닌가?

WCC가 다원주의라고 비판하는데 주로 인용되는 문서인 바아르문서 「종교적 다양성: 신학적 관점과 확언」에 보면 첫 문장이 이렇게 되어 있다. “종교 간의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만물 속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각주:21] 이와 같은 주장은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신앙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이다. 초월적인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역사와 창조세계 안에 내재하시면서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또 하나의 비판은 WCC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구원이 온다고 한 것을 회개한다고 했다는 비판이다. ‘회개’란 말이 나온 문서는 1979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발표한 「다른 신앙이나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지침서」이다. 그러나 거기에 나오는 회개란 말은 종교개혁 정신의 회개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수용자란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회개[각주:22]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그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WCC는 결코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 지침서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증거를 분명히 하면서 대화에 임하라.”[각주:23]고 거듭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를 다원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1. WCC는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정현경의 켄베라 총회주제 강연 비판에 대하여

WCC 캔베라 총회에서 행한 정현경 교수의 주제강연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당시 WCC총회에서도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정교회는 아주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발표는 WCC가 복음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교회 대표의 주제발표가 정통 삼위일체의 성령에 대한 성찰에 집중한 반면 정현경의 발표는 문화적 접근을 하였다. 정현경은 초혼제의 문화의식을 하면서 성경 속에 있는 인물과 인류역사 속에 부당하게 죽임당한 영들을 한 맺힌 영으로 보고 그들의 영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제발표의 본문에 해당하는 신학적 성찰에는 문제가 없다. 성령은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이미 계시며, 창조와 생명의 바람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영은 당신의 백성을 출애급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시고, 교회를 해방적 공동체로 시작하신 바로 그 영이시다.”[각주:24]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성령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라고 지적하고 인간중심주의, 이원론적 사고, 죽음의 문화에서 회개하고 생명중심주의, 상관성주의, 생명의 문화로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는 회개의 촉구를 하였다[각주:25]. 그리고 마지막에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아멘"하고 마쳤다.

정현경의 주제발표 본말은 기독교성령론의 이해를 따르고 있고 도전부분에는 성령의 역사를 물신주의, 생태위기 등 인간과 지구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과 잘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본문 서두에는 신학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 맺힌 영혼을 부르는 목록의 끝에 예수의 영도 열거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은 앞에 열거한 한 맺힌 영들과 동격이 아니다. 예수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며 그의 희생과 죽음은 만물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자신의 내어주심’이므로 한 맺힌 영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정교회 쪽에서 “개인의 영이나, 세상의 영이나, 다른 영들을 성령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각주:26]고 경고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무속의 형식을 그대로 사용한 점이다. 사실 이 점은 WCC가 종교간 대화 지침서에서 이미 경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WCC는 ‘성경을 번역할 때 번역하는 문화의 내용을 너무 차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문화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본질이 모호해 질 수 있음으로 주의하라’[각주:27]고 했다. 정현경이 취한 무속초혼형식은 바로 이 주의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이런 선을 넘은 예가 많다. 예를 들면 성탄절은 이제는 예수님의 생일이 되었지만 원래는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고 로마 태양신 아들의 생일이었는데 바로 그 아들이 예수님이란 의미로 고대기독교에서 채용을 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부를 때 중국문화전통에서 부르던 ‘상제(上帝)’란 개념을 채용했고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 하나님을 부를 때 이슬람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 “알라”(Alla)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처럼 기독교는 다른 문화권과 만날 때 일정부분 서로 형식의 차원에서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질은 늘 지켜야 한다. WCC는 이를 지키려고 늘 조심하고 있다. 정현경의 주제발표는 문화속에서 성령을 숙고해 보려는 한 개인의 입장이지 WCC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다. 개인적 영성순례행보는 전통적인 기독교인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보는 WCC와 무관하다.


12. WCC는 인간의 성(性) 전반에 대한 성찰을 한다.

WCC가 동성애 지지 결의를 했다는 허위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중에 가장 허망한 것이 동성애 문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WCC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어떤 공식적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WCC는 인간의 성(性) 문제를 50년 전부터 다루어왔다. 그러나 동성애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해 다루어왔다.[각주:28] WCC가 성 문제를 최초에 다룬 것은 제3차 총회(1961, 뉴델리)에서였다. 여기에서는 혼전경험, 성폭력, 축첩, 부적절한 관계, 단기혼인, 쉽게 하는 이혼, 종교가 다른 사람, 혹은 교파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 다문화결혼 등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한 문제가 다루어졌다. 제4차 총회(1968, 웁살라)에서는 위의 문제에 덧붙여 피임, 산아제한, 가족계획, 낙태 등의 문제가 추가되었고 동성애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웁살라 총회는 성문제는 교회 안에서 아주 민감한 사항이고 문화와 문명에 따라 아주 다양한 관습과 이해가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해보도록 권고하였다. 제6차 총회(1983, 뱅쿠버)와 제7차 총회(1991, 캔베라)에서는 생명공학의 발달이 인간의 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성, 성과 인간관계 등 문제가 토론되었다. 캔버라 총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교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고 민감한 문제이므로 여기에 대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대화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제8차 총회(1998, 하라레)를 준비하면서는 아프리카 짐바브웨가 동성애자들을 체포한데 대한 인권적 차원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8차 총회를 기점으로 인간의 성에 대한 연구를 성지남력(sexual orientation)차원에서 인간의 성(human sexuality) 전반에 대한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WCC가 동성애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성의 보편적 접근을 위해 취한 포괄적 장치인 셈이다. 이후 개인의 성윤리, 혼외정사, 유전자공학과 성, 에이즈, 콘돔사용문제, 성폭력, 심지어 난민촌에서 구호요원들에 의해 자행되는 난민여성들의 성폭력 문제 등이 인권차원에서 제기되었다.

WCC가 다룬 성 문제는 인간의 성 전반에 관련된 것이고 동성애 문제는 주로 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화되고 있는 북미나 유럽에 의해 제기되는 현실이며 여기에 대한 남반구 교회는 대부분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여서 WCC안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문제이다.


맺는 말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고 완벽했던 교회는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묘사된 교회이다. 그러나 이 하나 된 아름다운 교회는 사도행전 5장부터 분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이 교회의 분열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았다. 초대교회가 문화의 차이, 인종의 차이, 교권의 차이, 신학적 차이 등 여러 요인으로 계속 분열해 나갈 때 사도들은 예루살렘공의회를 소집하고 신학적 공감대를 형성함으로 이방인선교에 나서게 되었다. 교회들의 공의회는 이렇게 끊임없이 교회들이 하나 되어 공동선교에 동참하기 위한 교회들의 노력이다. 2013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WCC 제10차 총회는 세계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도 신학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선교, 공동봉사에 나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3. 5. 4. 박성원(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이형기(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공동작성>


  1.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a fellowship of churches which confess the Lord Jesus Christ as God and Saviour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therefore seek to fulfill together their common calling to the glory of the one God, Father, Son and Holy Spirit.” [본문으로]
  2. 「The Church, the Churches,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Central Committee, Toronto, 1950, Michael Kinnamon and Brian E. Cope,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Geneva: WCC Publications, 1997) 464. [본문으로]
  3. Ibid., 468 [본문으로]
  4. Ibid., 466. [본문으로]
  5. 「Called to be the One Church」, Luis N. Rivera-Pagan (ed.) God, in your grace... Official report of the Ninth Assembl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Geneva: WCC Publications, 2007) 255-261. [본문으로]
  6. "Each church is the Church catholic, but not the whole of it. Each church fulfills its catholicity when it is in communion with the other churches." Called to be the One Church」, Ibid., 257. [본문으로]
  7. WCC문서보관서 FO/73:20 [본문으로]
  8.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 반 리어/이형기 옮김, 신앙과 직제 문서 제99호, 엘렌 플레세만-(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영문, 1980). 104-105. [본문으로]
  9. Ibid., 108-113. [본문으로]
  10. "There is a word of God for our world. It is that the world is in the hands of the living God, Whose will for it is wholly good; that in Christ Jesus, His incarnate Word, Who lived and died and rose from the dead, God has broken the power of evil once for all, and opened for everyone the gate into freedom and joy in the Holy Spirit; that the final judgment on all human history and on every human deed is the judgement of the merciful Christ; and that the end of history will be the truimph of His Kingdom, where alone we shall understand how much God has loved the world. This is God's unchanging Word to the world." Message, First Assembly of the WCC, Amsterdam, 1948 Michael Kinnamon and Brian E. Cope, op. cit., 22. [본문으로]
  11. "The message of salvation implies also a message of judgement upon every form of alienation, oppression and discrimination." Lausanne Covenan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Lausanne, 1974, Ibid., 360. [본문으로]
  12. Ibid. [본문으로]
  13. “Millions of our fellow men have never heard it. As we are met here from many lands, we pray God to stir up His whole Church to make this Gospel known to the whole world, and to call on all men to believe in Christ, to live in His love and to hope for His coming.” Message, First Assembly of the WCC, Amsterdam, 1948 Ibid., 22. [본문으로]
  14. “This task of sowing the seed needs to be continued until there is, in every human community, a cell of the kingdom, a church confessing Jesus Christ and in his name serving his people.", 「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 WCC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1982」Ibid., 376. [본문으로]
  15. 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 Recommendations for Conduct, WCC-WEA-PICD, 2011. [본문으로]
  16. "Thus, as a matter of policy, and as the most viable means of giving the African Church the power to perform its mission in the African context, as well as to lead our governments and peoples in finding solutions to the economic and social dependency, our option has to be a moratorium on the receiving of money and personnel.", Ibid., 364. [본문으로]
  17. "There can never be a moratorium of mission, but it will always be possible, and sometimes necessary, to have a moratorium for the sake of better mission." Ibid., 381. [본문으로]
  18. "No civilization can escape the radical judgement of the Word of God." Marlin Van Elderen, Introducing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Geneva: WCC Publications, 1990) 22. [본문으로]
  19. “Terrorist Sponsorship" Africa Institute Bulletin XII-5 (1974), http://www.rhodesia.nl/wccterr.html [본문으로]
  20. 「The Call to the World", Meeting of 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Jerusalem, 1928」, Michael Kinnamon and Brian E. Cope, op. cit., 394-395. [본문으로]
  21. "Our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religious plurarity begins with our faith in the one God who created all things, the living God, present and active in all creation from the beginning." 「Religious Plurality: Theological Perspectives and Affirmations, WCC Sub-unit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Consultation」, Baar, 1990." Ibid., 417. [본문으로]
  22. Ibid., 408. [본문으로]
  23. Ibid., 408-409. [본문으로]
  24. “This wind of life, this life-giving power of God is the spirit which enabled people to come out of Egypt, resurrected Christ from death and started the church as a liberative community", 「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WCC Sub-unit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1979., Ibid., 232. [본문으로]
  25. Ibid., 233-237. [본문으로]
  26. “We must guard against a tendency to substitute a 'private' spirit, the spirit of the world or other spirits for the Holy Spirit..." Ibid., 238. [본문으로]
  27. 「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WCC Sub-unit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1979.」 Ibid., 409. [본문으로]
  28. 이 부분에 대한 정리는 다음의 WCC문서를 참고하였다: Churches' response to human sexuality, WCC's contributions to the discussions on human sexuality, From Harare to Proto Alegre, Background Document. [본문으로]
Posted by 숑숑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