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정치'에 해당되는 글 68건

  1. 2013.08.31 국가내란, 이석기, 대한민국
  2. 2013.04.02 자살은 '누구'의 책임인가?
  3. 2013.02.22 일베에 관한 이야기 3 -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편협적 지성知性)
  4. 2013.01.26 일베에 관한 이야기 2 - 파블로프의 개 (6)
  5. 2013.01.24 사형제에 관해. (2)
  6. 2013.01.15 일베에 관한 이야기1 - 인간 존엄 (3)
  7. 2013.01.02 국가와 국민의 관계.
  8. 2012.12.28 '빨갱이'를 쓰는 이유(부제 : 권력자의 첫 교육)
  9. 2012.12.27 대한민국 킬링필드 - 경산코발트사건 (5)
  10. 2012.12.26 "너희는 왜 그렇게 빨간거야? 너흰 뭔가 잘못됐어!" (2)
  11. 2012.08.27 고 장준하 선생 이야기에는 왜 박정희가 등장하는가?
  12. 2012.06.25 6.25전쟁에 관해. (2)
  13. 2012.06.06 달도 잃고, 손도 잃고(부제 : 민주주의 '가치'를 잃으면..)
  14. 2011.07.13 망각의 나라
  15. 2010.12.27 2010년 이명박과 한국교회에게서 히틀러와 독일교회의 모습을 보다.
  16. 2010.12.24 이명박과 그 정권이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
  17. 2010.12.23 정의란 무엇인가 - 철학의 실재화.
  18. 2010.12.21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19. 2010.12.19 정치 아무나 하나?
  20. 2010.10.12 냄비근성?
  21. 2010.10.11 인터넷의 폐해 (1)
  22. 2010.09.11 '통일'과 '통일에 대한 자세(마음가짐)'
  23. 2010.09.10 '정신없다'는 말.
  24. 2010.08.19 도덕적 책무.
  25. 2010.08.17 현정부에게 있어서 '광복과 통일'은?
  26. 2010.08.11 정부-대통령은 왜 저럴까?(부제 : 철학적 사고)
  27. 2010.08.10 학교에서 뭘 배울까?(부제 : 철학적 사고)
  28. 2010.08.02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29. 2010.06.28 쉽게 말하고 착각하고있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의미.
  30. 2010.06.17 정대세 군과, SBS에 대한 소고. (1)
사회이슈정치2013.08.31 10:43




온라인에서 보는 이석기관련 내용 중 대부분은 '난 원래 이석기 안좋아하는데'로 시작합니다. 이석기 관련하여서는 이석기 자체가 어떤인간인지 중요치 않습니다. 사실 '그를 지지하네 마네'라는 멘트는 사건 본질을 흐리는게만 하니깐 말이죠; 


물론 그의 말이 중요하긴 합니다. 그런데 그가 한 발언이라는 내용을 읽어보면, 어릴적 아이들이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지껄이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그가 정치인으로 국회의원이라는 점이 있지만, 현실성없는 말들을 현실로 끌어들여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하는 점은 무언가 사건의 본질과 다른 연유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렇게 봤을때 몇가지 이 대대적으로 떠드는 사건에 대한 중요점이 생깁니다. 첫번째는 '국가내란죄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며, 두번째는 '국정원이 이를 요란스럽게 떠든 시기'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국가내란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라고 규정합니다.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국토참절', '국헌문란', '폭동' 등의 단어에 대한 헌법적 해석도 이해를 해야겠지요.

쉽게 말하자면, 국토참절은 대한민국 영토 중 일부에 대해 불법적 권력을 행사하거나 점거한 것을 말합니다. 국헌문란은 헌법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거나, 헌법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시키는 것 등을 말합니다. '폭동'의 경우는 여러사람들이 결합하여 일으킨 것으로 적어도 한 지방의 질서가 위협받는 수준을 말합니다.

자, 그럼 봅시다. 국가내란이 있기 위해서는 위의 국토참절, 국헌문란, 폭동 등이 이루어지거나 준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그런 것을 이석기가 가능케 할 수 있을까요?

하나 더 재미난걸 생각해봅시다. 저기 있는 국가내란을 이해하기 위해 국토참절과 국헌문란 그리고 폭동을 이해해야되는데, 폭동을 제외한 국토참절과 국헌문란에 대한 설명을 읽으시면 여러분들은 누가 그리고 무엇이 떠오르나요? 그리고 이석기에게 국가내란이란 것으로 요란하게 떠들며 수사를 진행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자, 제가 위에 중요한 점을 두가지 말씀드렸습니다. '국가내란죄'란 건 설명을 했고, 두번째 '국정원이 이를 요란스럽게 떠든 시기'를 생각해봅시다. 지금 정국이 어떤 상황이고 여기서 가장 곤경에 빠진 기관은 어디인가요?

아. 현실의 대한민국 과연 헌법이 말한 민주공화국이 맞는지요?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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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3.04.02 14:44




안뇽하세요 타칭 좌빨? 자칭 꼴보수목회자 숑숑숑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신에게솔직히' 이번 회 주제가 '사형제, 생명 그리고 자살'이었는데요.

자살관련해서 글 하나 적어보려고 합니다. 관점의 다양화를 위해서 말이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것. 그 책임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사람'에게 있지요.
보통 그렇게들 생각합디다. 그러면서 이런 말들을 하죠. 
'목숨 끊을 용기로 인생을 살아보지', '고작 그런 걸로 인생을 마감하냐?'


그런데요. 여러분들.
인간의 삶은 단 한순간도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출생부터 자신의 죽음까지 '홀로'인 것은 없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위험 가운데 우리는 태어나구요.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가르침이란 관계속에 우리는 성장해갑니다. 지금의 '나'란 존재가 있기까지 우리는 잘 못느끼겠지만 수많은 '관계'덕에 우리가 지금 있는 것이지요.

'관계' 그러니 이 예화를 이야기해야겠군요.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25분경, 서울 음대로 들어가는 골목 평화시장 입구 사람들의 틈에 서있던 한 청년이 불붙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멍청히 바라보다가 어느 누군가 불을 꺼야한다는 말에 술렁대었지만 어느 누구 선뜻 나서지 않았다. 작업복에 검은 빛 바바리코트를 입은 청년은 한 일 자로 굳게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불길이 상체에 붙어 타오른지 2분후 행인 중 몇 명이 잠바를 벗어 덮어씌웠다. 하지만 불은 점점 더 거세졌다. 시장 경비원은 2층으로 소화기를 가지러 뛰어갔다. 이때 이를 악물고 서있던 청년은 갑자기 벌떡 드러누웠다가 다시 일어섰다. 청년의 눈썹과 머리털은 타버렸거나 그을려 불길로 새까맣게 뒤범벅이 돼 있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시간을 단축하라”, “일요일은 쉬게 해달라” 그는 외치기 시작했다. 그 청년은 끝내 그 밤을 넘기지 못했다. 청년 전태일(23세)은 메디컬센터를 거쳐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날 밤 10시 끝내 숨졌다

전태일 열사 아시죠?
그는 재단사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명을 던졌던 이유는 자신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였습니다. 당시 미숙련, 반숙련으로 불리워졌던 시골에서 온 어린 소녀들이 하루 50원도 안되는 커피한잔의 돈을 받으면서 14시간 이상의 노동을 당하고,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과도한 노동으로 폐렴에 걸리기도 하는 상황을 보면서 노동운동과 노동법에 관심을 가졌던 겁니다. 즉, 자신의 생(生命)보단 '관계'를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바보회, 삼동친목회 등을 결성했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리고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아무런 도움이 없자 자신의 생(生命)을 마감하며 부르짖었던 겁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자신의 생이 꺼져갈즈음 고 이소선(전태일열사 어머니)께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고 유언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전태일이 없었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은 수십 년 뒤에나 존중받았을 것”이라 평합니다. 지금의 현재는 그가 있기에 그나마 있는 겁니다.


자, 이렇게보면..
그런 '관계'는 싸그리 무시하고 한 개인의 책임만 말한다면 그거 우스운거 아닌가요?
고통이란게, 아픔이란게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남이 볼때 별볼일 없는 것도, 너무나 고통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명(生命)을 끊어 죽음에 이를때는 
그 사람의 생(生命)에 대한 책임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그런 결단을 내리게 했을 '관계의 결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우리가 책임을 느낍시다.


그 죽음이 '성적에 의한 것'이든, '따돌림'에 의한 것이든, 
설사 별볼이 없는 것이든, '직장과 노동문제'에 의한 것이든..
그 한 사람의 생명이 죽음으로 가기까지는 그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끊었다라는 책임보다, 
우리가 관심가지지 못하고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관계의 책임'을 가집시다.


그리고 다시 어떤 사람도 자신의 생(生命)을 끊지 않도록 관심을 가집시다.


지금도 북아연동철거민, 강정마을.. 그리고 여러 많은 곳 특히 여러분 주위에 말이죠;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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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3.02.22 10:19



(본 글은 뽐뿌커뮤니티 이정토게시판에서 2012년 10월 31일 개재된 글입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군제대후 영어회화강사, 지금은 목회자로 ㅎ).. 

느끼는 점은.. 참 편협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일베에 관한 이야기3으로 생각했는데요. 사실 일베에 관한 이야기 1(인간존엄에 대해)이나 2(파블로프의 개)나 모두 일베를 까기 위한 건 아니였습니다. 한 단면 그것도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모습이 사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기에 글을 적었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
간결과 진중권씨의 토론을 보면서 더더욱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요.
제가 고민이 되었던 부분을 몇가지 적자면 이렇습니다.

1. 학력과 지성知性과는 비례할까 반비례할까?
2. 비논리적이고 편협적 지성知性은 어디서부터 기인된 것일까?
3. 그렇다면 왜 글과 말이 다를까(수준차)?


  우선 첫째, 과연 학력과 지성은 비례하는 것일까 반비례하는 것일까?
저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력과 지성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학력이란 것이 꼭 지성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학력이란 것 즉, 좋은 대학을 나온다는 것이 지성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가치를 존중하며, 인식의 틀을 넓히는 그런 교육이 아니라 답을 그저 외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성이라 함은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인식능력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네가 하는 교육은 객관적 인지를 교육하기보다, 주어진 답을 외움으로서 학력을 득하게 하죠. 이 '주어진 답'이란게 무서운 것입니다. 원인과 상황을 알려줌으로서 객관적인 인지(지성)를 하게 끔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답을 주입함으로서 필요에 의한 인간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둘째, 비논리적이고 편협적인 지성은 어디서부터 기인된 것일까?
앞서 첫번째 부분과 이어집니다. 이런 주입식 교육은 객관적 인지를 해치지요. 어떤 목적에 따른 주입은 곧 객관이 아닌 편협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 읽기 역시 그렇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편입해서 공부할때 있었던 일입니다. 소논문이나 리포트를 적어서 낼때 레퍼런스 즉, 인용을 하지요. 근데 아이들이 이 인용하는 걸보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책 전체의 흐름은 'A는 C다'라는 흐름이고 결론인데, 그 중간의 한 문장이 'A는 B라고도 생각하기도 한다'라고 나와있고 애들이 이 인용을 가져와 쓴다는거죠. 자신의 소논문 주제와 흐름이 'A는 B다'는 것 때문에 전혀 책의 흐름과 결론과 맞지 않는 단순 문장을 자신의 결론을 위해 '편집해서 인용'한다는 겁니다.
  이건 두 가지를 전제합니다. 1. 책은 다 읽었으나 자신의 결론을 위해 악의적 인용했다. 2. 책도 안읽고 그 부분만 인용했다. 첫번째가 되었든 두번째가 되었든 그 본연의 책 내용과 상관없이 '주어진 답을 도출'하기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죠.
  이거 인터넷상에서도 많이들 하지 않습니까? 필요부분만 악의적 편집을 해서 자신의 결과를 타당하게 이용하는 것. 이것은 전혀 '객관적 인지(지성)'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단 한번도 제대로된 책읽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독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부분 정말 중요합니다. 청소년기를 지나오면서 시험에 필요한 부분만 읽거나, 요점정리 하기 때문에 인문학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책을 한번도 끝까지 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글을 전체적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장애가 발생하게 되지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부분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나마 독서를 부모에 의해 강압적으로 혹은 자의적으로 하는 이들은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즉, 지성이라 함은 '객관적 인지능력'을 뜻합니다. 그런데 비논리적이고 편협적 지성이 어디서부터 왔느냐? 먼저는 주입식 교육에서 오는 문제때문이며, 또한 학력을 득하기 위해 바삐 주어진 답을 외우다보니 독서를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란 것이죠. 이미 어떤 것을 전체적으로 보고, 생각하며, 판단할 능력 자체가 결여된 것이란거죠.


  셋째, 왜 글과 말이 다를까?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설교지요. 근데요. 설교는 단순히 준비만으로 되는게 아니랍니다. 물론 준비도 중요하지요. 제 말은 Text만을 훌륭하게 준비하여 적는다고, 좋은 설교가 되진 않는다는 겁니다.(제 말은 text를 준비하지 말란 말이 아닙니다;;)
  text가 준비되었다면, 그것이 삶으로 숙지되도록 소화를 해야된다는 겁니다. 한 예로.. '사랑'이란 단어를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의 유희로 text화했다고 해도.. 내 삶에서 '사랑'을 바르게 사유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짜 '지성'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키보드워리어란 말 익히들 아시죠? 왜 온라인에서는 그렇게 말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직접 만나보면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은 앞서 말한 첫번째, 두번째 부분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기본적 인문학 혹 철학 사유의 부재라고 봅니다. 어떤 정보가 있다면 그 정보의 원인과 상황을 면밀히 보고 그것이 타당한 것인지, 객관적인 것인지 인지하기 위한 '사유, 혹 생각'의 부재란 것이죠.


  앞서 처음 말씀드린것처럼.. 이건 단순 일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다해서 인간존엄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가치마저 잃어버리고 깔깔거리는 개가 되거나, 편협적 지성을 가진 사람은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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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3.01.26 12:10




본 글은 뽐뿌커뮤티니 이슈정치토론게시판에서 2012년 10월 2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1부 : 일베에 관한이야기(인간 존엄에 대해)


오늘 장례식을 다녀왔습니다. 입관예배를 인도했고, 

오늘 저녁 한번더 예배드리고, 내일 발인예배 예정입니다..
어제까지만해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어르신이신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니 너무 놀랬고 또 허무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와의 관계, 시간을 생각해보니 

그 분 자체의 존재가 참 커보였고, 또 그만큼 너무 허전했습니다.
장례예식을 하면서 '존재의 가치'를 고민해봤습니다.

누구든 모두 다 귀한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존재가치만큼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나의 태생적 '존재가치'는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그 '가치를 증명'하게 되죠.
예를 들면, 태어나면서 가지는 '존재의 가치'가 '귀한 병(valuable bottle)'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그 병(bottle)을 채우는 '귀한 무언가'란 거죠.
즉, 아무리 가치있는 병이라도 빈병이라면 원래의 가치를 잃는다는 것.
또한 아무리 가치있는 병이라도 그 안에 채워지는 것이 

귀하지 않으면 원래 존재가치를 잃는다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우리가 태생적으로 가지는(누군가의 고통과 노력에 의해 태어난 생명이니) 

존재의 가치 혹은 존엄성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원래의 태생적 존재 가치 혹은 존엄성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죠.

'파블로프의 개'라는 것을 들어들 보셨을겁니다.

파블로프는 러시아의 생리학자이죠.
개를 이용해서 '조건화에 대한 증명'을 했는데요. 
뭐 내용은 다들 아실거라 생각하고 간략히 적습니다.
1. 개는 먹을 것에 침을 흘립니다.
2. 먹을 것을 줄때마다 종을 칩니다.
3. 먹을 것을 주지않고 종만 쳐도 침을 흘립니다.
흔히들 우리가 '조건반사'라고도 이해하는데, 사실 '조건반사'의 사전적 의미와는 약간 다릅니다.
전혀 다른 A란 조건과, B라는 조건을 두고..
먼저 A라는 조건을 먼저 주고, 거기다 B라는 조건을 함께 더 한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A라는 조건을 빼더라도
우리는 전혀 다른 B라는 조건을 보면서 A를 떠올리거나, 

A의 조건에 대한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한다는 거죠. 


이게요.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참 무섭습니다.

인간 본연의 가치와 삶을 A라고 두고,
그 A와는 전혀 다른 
그 가치와 삶을 무시하는 B를 함께 준 후, 얼마후 A란 존재가치를 빼면..
여전히 B라는 무시를 받으면서도 A를 기억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가 가치있다고 받아들이는거죠).


이걸 어르신들에게 대입해보면,
왜 자신들의 피땀흘린 것을 독재의 추억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지요.
왜 반공이란 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건반사식으로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지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게 어르신들에게만 나타나는게 아니란겁니다.
일베를 하는 분들도 똑같은 패턴을 가지는걸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일베는 원래 생각없이 깔깔거리는 것들을 저장해놓은 공간이었고,
그것을 즐기면서 존칭, 존대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 누군가에 의해
어느 누군가 무거운 정치, 사회, 역사적 이슈들을 
정확지 않은 Fact로 우습게 만들고 깔깔거리고, 그것이 유머로 이해되어집니다.
 예로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화,
        피와 땀으로 희생된 산업화,
        한 사람의 수많은 고민과 아픔 그리고 죽음 등.
아무 생각없이 깔깔대는 그 공간에 웃음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나서는 원래의 깔깔거림은 사라지고,
정치, 역사, 사회 이슈의 왜곡이 마치 하나의 재미난 즐거움인냥 인식하게 된 것이죠.

결국, 애초에 자신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 가치'나..
살아가면서 채워넣을 '존재 가치의 증명'따위를..
잠시 생각없이 깔깔거리며 웃기 위해
나를 있게 한 우리네 부모의 '존재가치'와,
우리네 부모가 있게 한 우리 역사의 '존재가치'를 무시하고 왜곡하면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의 증명' 역시 '벌레' 혹은 '개'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거지요.


'인간'라는 존재의 가치는 사라지고,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받아들이게 되었단 말입니다.


근데요, 그래도 어르신들이 일베 분들보다 낫습니다.
어르신들은 당시 어쩔 수 없이 타의 혹은 환경에 의해 열심히 살아왔고, 피흘렸습니다.
너무나 힘들게 공포란 것을 직접 경험하며 살았기에 오류가 생기게 되었지만,
당신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알려고도 생각하려고도 안합니다.
그저 생각없이 깔깔대길 바랄뿐이죠. 

그것도 자신의 존재가치는 둘째치고 남의 존재가치까지 무시하면서 말이죠.
어르신들은 환경과 독재에 타의적으로 교육된 것이라면,
일베분들은 웃음을 위해 자의적으로 교육되어진 것이라 할 수 있죠.


파블로프의 '개'가 되지 맙시다.
인생이란거
그리고 당신의 태생이란거
훨씬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당신네 어머니가 그러라고 열달을 돌아눕지도 못하고, 
마음껏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지내오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당신을 낳고 키운게 아니니까.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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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피현상을 보며 공감도 안타까움도 들더군요. 상식보다 자극을 선택한 그들이 사회에서는 어떤 모양일지가 궁금하군요.

    2013.01.26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우선은 일베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기피가 되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지요. 힘들겠지만 대화하고 문제점을 인식시켜야할 듯 합니다.

      2013.01.29 09:29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냥 청소년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들의 직업이 공개된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마음이 힘드네요. 숑숑숑님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까 합니다.

      2013.01.31 12:53 신고 [ ADDR : EDIT/ DEL ]
    • 넵. 이해가 안되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계속 알려줘야된다고 생각합니다.

      2013.02.04 22:46 신고 [ ADDR : EDIT/ DEL ]
  2. 김미정

    우리를 질그릇이라 한 성경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랑할 것 없는 질그릇~ 과연 내 그릇에 뭘 담을 것인가?

    2013.02.06 12:01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떻게 준비하고 무엇을 담을 것인가 생각하지 않으면.. 인생이 끝나갈때쯤 후회할거 같습니다.

      2013.02.06 15:15 신고 [ ADDR : EDIT/ DEL ]

사회이슈정치2013.01.24 09:39



사형제에 관한 찬반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사형제도 찬반에 대한 정의나 뭐 그런건 안적겠습니다.

제가 별로 안좋아하는 미국 이야기를 하나 할께요.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게 있습니다.
한창 뉴욕의 범죄율과 지하철 범죄가 높을때 범죄자체 강력한 제재 의지보다,
사소한 환경(깨진유리창)을 정리하는 것이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지하철 범죄에 대해 범죄 자체 규제보다, 
지하철의 조명을 높이고 낙서를 지우고 나니 범죄율이 획기적으로 떨어졌다는..
물론 뉴욕의 범죄율이 낮아진게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강력한 제재장치(사형)보다, 
그러한 범죄를 사전에 저지르지 않게 하는 환경적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굳이 사형제 찬성을 해봐야 '나쁜놈 그냥 죽여버려' 이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이건 단순히 나쁜 짓 많이 하면 저렇게 된다는 '구분짓는 것'밖에 안됩니다.
그것보다는..
대형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어린 아이들부터 돈많고 적고를 떠나게 해주는 것.
공평하게 먹고,
공평하게 배우며,
누구에게나 충분한 기회가 돌아가고,
과정을 공평하게 한다면.
그 결과 역시 '정의'롭지 않겠습니까?

또한 제재장치를 두는 것은 
과거부터 역사적으로 기득권과 권력이 국민을 마음껏 규제할 수 있도록하는 '허울'이란 점을 기억한다면,

지금 우리가 생각해봐야 될 것은 '사형의 찬반'보다, 
'어떻게 공정하게, 시대적 희생자로 탈락되지 않게 할 것인가'이지 않을까요?



적고 보니, 누가 참 그립습니다.

Posted by 숑숑숑~
TAG 사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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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미정

    공평,정의... 이런 것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누가 콕(!!!) 찍어서 갈켜주면 좋으련만...... 정답이 뭔지? 어떤게 진실인지? ......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건지... 어쩌면 빛이 없어 어둠 때문인지...

    2013.02.04 17:03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사형제 이전에 기본적인 국민으로서의 의식과 생각들이 많아져서 사형제 자체가 존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2013.02.04 22:47 신고 [ ADDR : EDIT/ DEL ]

사회이슈정치2013.01.15 10:05





요즘 국민들의 정치에 관한 참여와, 정치흐름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데요.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바로 '일베'란 곳입니다.

. 우습게 넘길 수 있는, 마냥 철없는 장난이 있는 곳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과거 정치는 어려운 것, 무섭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현실에 와서는 쉬운 것, 나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는데요.

그 정치에 관해 '장난'스러움이 더해지는 것은 

정치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혐오'란 옷을 벗길 긍정적 영향이긴 하나, 

일베와 같은 곳에서 하는 '과도한 장난'는 

미래적으로 봤을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과도한 장난'이란게 무엇이냐?

역사나, 사회나, 정치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할때는 분명한 fact가 있어야 됩니다. 

다른 의견은 물론 있을 수 있으나

fact에 관련하여 틀린 것을 장난으로 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요.

왜냐

역사나 사회나 정치는 말로만 혹 언어적 유희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인생을 담보로, 피와 땀을 가지고 이루어져 온 것이며

 지금 역시도 그 생명의 담보는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fact와 이 존엄성이 버려진다면

그것은 단순히 '장난'이 아닌.. 누군가의 삶을 우롱하는 행위인 동시에

미래의 삶 역시 우습게 만드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누군가 가족 중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해되실 겁니다.

단순히 한 순간의 감정이 아닙니다. 수많은 아픔과 고민을 가지고 그러한 것이죠.

그것을 마치 우스운 농담처럼, 장난처럼 만들어버린다는 것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우습게 만드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더욱이 자신들은 그저 깔깔거리며 웃는 그 웃음을 위한 ''

사회적으로 아직 역사와, 인간 존엄성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fact'로 잘못인식된다면,

또한 그것을 이용하는 현재의 기득권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말을 계속 하는 거 같아서 실제 이야기를 하나 적어볼까 합니다.

 

 

예전에 근현대사 관련 인터뷰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일제시대상(1925-45)에 대한 실생활자료수집과 보존이 목적이었죠.

나이든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은게 있습니다.

 

평소 말씀을 안하셔서 처음엔 언어적 장애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가족들과도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말씀을 안하신다고..
근데, 제가 그 분과 인터뷰를 했어야 됐어요;;
결국 제가 마련해놓은 질문페이퍼를 두고, 녹음기를 켜놓고 그 분 혼자서 녹음을 하셨죠.
나중에 녹음된 파일을 들어보니.. 왜 침묵하시며 사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시대는 1930 몇년. 어느날.
학교에 가면 일본어로 황국신민서사를 외쳤다.

1.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3.
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이주해온 일본인.
그나마 조선선생님이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이 나와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을 야단치셨다.
난 그때 왜 그랬을까. 일본인 교장에게 달려가 그 분이 조선말을 가르치려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난 친구들과 내가 한 장난을 자랑했다.
그 다음 주 그 선생님은 전쟁으로, 16살 순이(순희?)누나는 징용당했다.
8
살난 복이가 날 보며 울던 그 눈빛을 난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잊어버렸다
친구들은 모두 복이네 가족을 놀렸고, 동네사람들은 외면했다.
복이는 산에 올라가 나무뿌리를 캐와서 먹곤 했다
동네 일본인 집에 끌려가듯 다녔기에 

철없던 나와 친구들을 복이엄마를 창녀라 놀렸고, 앞잡이라 놀렸다.
해방 후 전쟁때 복이와 그 엄마는 죽임을 당했다.
마을에 빨갱이가 있단 이야기에 

어느 누군가 그들을 지목해서 마을 전체가 살아남았단 이야기를 들었다.

. 한 가정을 파괴시키고 몇 명을 죽인 살인죄를 저질렀다
어린 마음, 서툰 말이 이리 무서운 줄 누가 알았으랴.
홧김에 한 거짓말이 부풀어져 거짓이 진실이 되었고
아이들은 그것으로 히히덕 거리며 그들을 내몰았다.
마침내 마을 전체가 그들을 외면했고 죽였다.

이 어르신이 평생 말을 안하려 했던 이유는 입이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아시겠는지요?
내가 하하 거리며 웃는 그것에 과연 사람의 생()이 달려있지 않은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정치가 무겁지 않고 가벼워지는 것까지는 좋으나,
수많은 삶과 생명을 주고 이룬 민주화를 마치 장난처럼..
숨쉴수없는 좁은 공간에서 폐병걸려가며, 강간당해가며 
고향집에 있는 부모와 형제 먹여살리고자 했던 

그 눈물겹고 존엄한 한 생()을 짓밟는 산업화를 존경하는..
파렴치한 장난은 그만두면 안될까요?

지금은 설익은 농이겠지만, 쉽게 한 말과 글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어느 누군가의 삶을 망쳐버리는 일이 된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 행위인가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과거도 그리고 지금도,
쉽게 말하고 웃고 떠들고 자기만 아는 이들의 그 쉬운 입과 눈과 손 때문에
아직도 비상식적인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익집단이 

스스로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합시다. 人間尊嚴!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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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실호도

    마찬가지로, 광우뻥 사태와 같이 유언비어로 선동당한 광주의 종북 애국열사들께서 (반어법은 배우셨을거라 믿습니다.)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의 구성원인 자기 업에 본분을 다하고 있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분들을 멋대로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서 애국한다고 슬픈 착각 하는 일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

    2013.07.19 00:58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5.02.15 09:55 [ ADDR : EDIT/ DEL : REPLY ]

사회이슈정치2013.01.02 15:07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기 쉽다고들 합니다.
국가의 존재 역시 그렇습니다.
국민들에 의해,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이며, '정부'입니다.
국가 혹은 정부의 성립은 국민들에 의해 가능케됩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위해 움직이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 혹은 정부 자체가 어떤 특정한 '힘' 혹은 '권력'으로 이해될 때,
국가는 국민을 이용하는 '권력의 정점' 혹은 '힘 그 자체'가 됩니다.
대통령, 정부, 국가가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권력이나 힘으로 이해되면,
어떤 당이든 혹은 그 당에 속한 이든 모두 그 힘을 얻고, 또 그 힘이 영원하길 바라게 됩니다.
결국 대통령, 정부, 국가가 그 본질을 잃게 되면 결국 그를 이룬 국민들만이 피해자가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정부나, 대통령의 비리와 부패가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이 그 비리와 부패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부 혹은 대통령은 자신의 비리와 부패를 인정하기는 커녕
도리어 그 사람에게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힘으로 법을 이용하여 그 입을 막아버립니다.
또한 비리와 부패를 밝힐만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을 감시하며,
그들의 삶을 자신들의 권력과 힘으로 더이상 부패와 비리를 생각할 틈을 주지않게 괴롭힙니다.
이런 일이 계속될수록 바른 것을 말하는 이들은 사라지게 되고,
국가는 권력 그 자체가 되며, 국민 위에 있게 될 것입니다.
즉, 국민은 더이상 국가의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단순히 국가와 국민 사이의 주종관계가 바뀌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될 대상인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면,
국가 내의 모든 삶의 부분들이 이런 힘과 권력에 의해 재설정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이익을 최선으로 하는 단체인 기업이 있습니다.
국가는 그 기업을 위해 자신의 삶을 투자한 국민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해야하지만,
이미 권력과 힘에 의해 국민은 보호할 대상이 아닌 이용대상이 된 이상
기업 역시 자신의 공동체 안에 있는 국민을 이용대상 이상으로 밖에 보지 않습니다.
삶 전체를 두고 일한 그 곳에서 어떠한 권리도 인정받지 못한채 한 순간에 퇴출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웃긴건, 단순히 이런 힘과 권력 구조뿐만이 아니라..
국민과 국민 사이에도 이 힘과 권력 구조에 편승하는 이들이 생겨난다는 것이죠.
사실 국가와 기업들이 이용하는 도구로서 쓰여지는데
웃긴건 자신들은 '도구'인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죠.
더 웃긴건, 마치 높은 연령층에서는 '충성', '애국'으로 받아드리고,
낮은 연령층에서는 그게 게임과 놀이인냥 즐거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 틈나는대로 핸드폰으로 'nothing but the truth'란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뭐. 적고보니..
왠지 씁쓸하네요. 젠장.. 먼나라 이야기같지 않네요;;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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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2.12.28 14:48




대한민국은 '토론'하기 참 힘든 나라입니다.
목소리만 크면 우선 한점따고 들어가고, 논리로 안되면 '빨갱이'드립치면 이기는 이상한 나라지요.
그건 아마도 전 세계를 통틀어 지난 100여년간의 혼란 역사종결국이기 때문이겠죠.
(지난 100여년동안에 전 세계에서 일어난 시대정신, 이념, 전쟁, 논란들이 대한민국현대사에 고스란히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뜻하지 않은, 그리고 타의에 의해 이루어진 '해방'과..
그 '해방'을 시작으로 이뤄진 이념적이면서도 국제정치적 땅따먹기식의 '분단'..
그리고 그 '분단'에서 타당성없이 얻어진 권력체계(이승만, 김일성 정부모두)의 자기체제 확립을 위해 터진 '전쟁'..
그것으로 남북 정부 모두 득하게 된, 타당성없는 권력의 국민교육 그 첫번째가 바로 '이념공세'입니다.
그 중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시도된 국민교육 첫 단어. 
'빨갱이'. 지금까지도 논리와 상관없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보통 학문적으로는 이 '빨갱이'란 단어의 어원을 말할때 학자들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놓습니다.
그 중 그래도 공통되고, 또 많은 학자들이 말한 '빨갱이'의 어원에 대한 주장은 이렇습니다.
첫째, 공산주의 혁명의 banner에 담긴 '붉은색'을 의미한다는 주장.
(붉은색은 전통적으로 급격한 혁명과 사회의 전복을 상징하며, 덧붙여 노동자의 피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음) 
둘째,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북한군을 부를 때 'REDS'라고 말했던 것이 '빨갱이'가 되었다는 주장.
이렇게 크게 두가지 주장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또한.. '빨갱이'란 단어가 실질적으로 사용된 시점은 한국전쟁 중에서부터라고들 합니다.
(제가 논문 등을 찾아본 바로는 한국전쟁 전에는 '빨갱이'란 단어를 쓴 표현이 없네요..)
이렇게 '빨갱이'란 단어의 어원에 대한 두 가지 주장이나, 역사적 사용시점 등도
'빨갱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를 돕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적으로나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란 단어가 주는 특수성을 설명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
이 단어 '빨갱이'는.. 단순 어원과 그 사용시점만으로는 그 단어가 주는 강력함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권력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국민'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이용한 첫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여러분들.. 여순반란사건, 4.3항쟁을 아시는지요?
4.3항쟁 진압을 위해 출동하게 된 14연대가 그 출동을 반대하고, 
단독선거로 단독정부가 된것을 반대한 제주시민의 항쟁에 대해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는 것과,
38선을 철폐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며, 조국통일을 이루자는 명목을 일으킨 사건으로 
출범 두달밖에 안된 이승만 체제를 커다란 위협으로 몰고 갔었죠.
이것은 미국에 의해 이뤄진 정권,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가져간 정권인
당시 이승만정권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자기타당성없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각계각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제정했고,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무제한적인 탄압을 제도화시켰으며 
좌익계와 광복군계를 포함한 모든 반(反)이승만 성향의 군인을 제거했습니다. 
또한 이승만 정부는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게 되었죠.
특히 보도연맹 등으로 수많은 국민들을 무참히 학살했고(보도연맹 - 경산코발트사건 글 참조), 
이후 전쟁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자신의 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을 숙청했습니다.
즉, 정당성이 없는 정권이 곤고한 지배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이념공세가 시작된 계기가 바로 이 '여순반란사건'에서 부터란 거죠.

이 사건을 거치면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정권은 
당시 통제된 여론을 가지고 자신들의 학살에 반대한 이들을 
도리어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마, 비인간, 악마처럼 교육시켰고,
(당시 유행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라서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된 좌익, 진보단체 및 인물들은 
전쟁 이후 '빨갱이'란 단어로 정의하고 불리어졌습니다. 
결국 이 '빨갱이'란 단어는 
인간의 기본적 위엄과 권리를 박탈당한 '죽여도 되는' 존재, '죽여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죠.
당시 남북 동족의 살상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 경험한 국민에게는 이보다 좋은 이념공세는 없었죠.
이 '빨갱이'라는 낙인은 정당성없이 권력을 잡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행한 구조적 폭력 법적 제도적 폭력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고,
이런 역사속에서 국민 속의 비국민 만들기, 내부의 적 만들기는 
정당성이 취약한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 매우 기능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즉, 이렇게 '빨갱이'란 단어는
왜곡된 시각을 만들고, 과거 국민이 가진 아픔을 이용하고
국민 내부를 분열시킴으로서 자신들의 권력증대를 이루고자 함이란 것이죠.
그러므로 단순히 빨갱이의 어원이나 사용시점으로만 이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저들의 정치적 의도에 이용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남북의 분단을 통한 이념공세에 피해자는 결국 '국민'뿐입니다.
얼마나 어떻게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채 교육된 대로 미워하고 반목함으로서 
우리가 얻는게 무엇일까? 생각해본다면.. 없습니다.
'교육된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국민'으로 진정 민(民)이 주(主)된 나라가..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이 없어지지 않는..
우리를 떠난지 오늘로 3년째되는 되는 그 분이 그리던 '사람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ps. 1.'동무'란 아름다운 말도 이념에 의해 사용되지 않게 되어 개인적으로 참 가슴 아픕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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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2.12.27 15:58




이 '일'들을 아십니까?


4.3사건, 보도연맹사건, 2.28운동, 4.19혁명, 전태일열사분신사건, YH 무역 여성근로자 사건, 부마항쟁, 박종철고문치사사건, 6.10항쟁, 미국쇠고기촛불집회, 쌍용차문제, 한진중공업문제, FTA통과, 민간인 사찰사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그래서 경험하고, 실수하면서도 또 되풀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요,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고민과 사유를 통해, 또한 그 사유로 인한 행동으로 인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불완전성을 보완하고 진보되어 나갑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진보가 아닌 퇴보 혹은 망각에 휩싸인거 같습니다. 그렇게도 '잘사는게' 좋았던지, 윤리 도덕도 무시한채 과거로 회귀를 했으니 말이죠.


위의 사건들을 보시죠. 무엇을 느끼시는가요? 아. 혹 위의 사건들을 모르시는건 아니겠지요? 이 땅과 이 나라를 사랑한다면.. 한번쯤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지요.. 즉,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귀하고 主가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시지요. 적어도 위에 제가 올린 사건들만이라도 보시지요. 저기에 국민이 主이 되어 있습니까? 그나마 자기목숨 버려가며 主가 되려 노력해도, 결국은 인권이 유린되고, 몇몇의 이익에 의해 묵살되고, 죽음까지 이르지 않던가요?

저는 오늘 위의 사건들 중에.. 이 나라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사건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고, 스스로 생각하시고,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경산 코발트사건' 아시는 분 계신가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TK지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TK지역사람 중 3명 중 1명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적는 이 이야기를 읽어보신다면, 지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여러분들의 판단은 더욱 명확해질 것입니다.





1. 보도연맹.

보도연맹이란거 아십니까? 정식 명칭은 국민보도연맹. 이 단체는 1948년 12월에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키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어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자 또는 전향자로 분류된 인사들을 이 단체에 빠짐없이 가입시켰습니다. 근데 웃기는건 지역 경찰들이나, 공무원에게 할당 비슷하게 내려져서 대부분은 농민들, 심지어는 중고등학생도 많았습니다. 거기다 문화예술인, 이승만정권이외의 사회정치세력들도 많았습니다.

정확히 다시말하자면,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 중 실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관리들의 실적을 위해 문서에 기록된 사람들도 대부분 이었다는 거죠. 1949년말까지 이 단체의 가입자 수는 약 30만 명이나 됐고, 서울에만 1만 9,800명정도 있었습니다. 웃긴건 심심하면 불려나가서 기합과 반공교육을 받았다는 거죠. 집합시켰는데 안가면 주위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거기다 이 보도연맹의 체제는 일제강점기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의 체제를 모방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제 잔재가 그대로 남은 것인 동시에 절대 '민주'와 동일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죠.

이후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우익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보도연맹관련자들이 전국에서 학살됐는데, 약 20만명정도가 학살당했다고 합니다(추산). 여러분 잘아시는 '태극기를 휘날리며'에서 여주인공이 이것과 관련되어 학살당하지요. 밤 중에 불려나가서 도시 인근의 야산이나 바다 혹은 폐광등에서 총살당하거나, 일제시대 순사들이 가지고 있던 일본도로 참수당하기도 했습니다(아이러니하죠? 해방되었는데, 일제잔재로, 일제무기로.. 그 소유한 주인은 어떤존재일까요?).

이후 4.19혁명이 일어나고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되었으나, 박정희정권이 이전의 조사 내용및 자료를 모두 소각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유가족 대표들을 연좌제로 '국가 보안법'으로 처벌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정권때 진상규명이 되어지고, 노무현정권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2. 경산코발트사건.

이 코발트광산은 1930년대 후반 일제에 의해 개발된 군사용광산이며, 일명 보국광산으로 불리웠습니다. 40년대 초반 폐광될 때까지 대동아전쟁 등에 소요되는 군사용 코발트를 공급했었습니다. 2차 대전 종전 직전 폐광된 후 방치되어 오다 대규모 민간인학살 적지로 지목되어 학살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1개월 정도 지난 7월 초에서 8월 초까지 경산시 평산동 산42-1번지 일대 폐광산 수직갱도와 인근 골짜기에 대구형무소 재소자와 경산 청도지역 보도연맹원 약 3,500명을 군경이 학살되었습니다. 


학살된 이들 중 재소자들(2574명 추정)은 대부분 미결수로 정치범이 다수였고, 보도연맹원의 경우는 당시 경산과 청도․ 영천 등 인근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경찰에 의해 지서단위로 예비검속 당한 뒤 경산경찰서 등 해당지역 경찰서에 인계된 후 광산으로 보내지거나 CIC(방첩대)에 의해 예비 검속된 뒤 바로 광산으로 보내져 군인들에 의해 학살당했는데,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보도연맹 원들은 대부분 좌익사상이나 반국가 활동과는 무관한 단순 가담자나 부역자였으며 직업도 농민이 가장 많았고 연령은 10-70대까지 다양했습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먼저 당시 목격자들은 흰옷을 입은 약 30명을 실은 군용트럭이 하루에 10대, 열흘 정도 경산역전을 지나 평산동 쪽으로 갔다는 증언이 있으며 약 3000명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60년 당시 경산중앙초등학교에서 열린 위령제에 약 400명의 유족들이 참가했다는 증언과 60년 4대 국회 양민학살특위에 신고한 학살자 수도 356명이어서 청도지역 보도연맹원과 합치면 500명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이들 숫자를 모두 합치면 3,500명이라는 추청학살인원이 나오는데, 당시 경산경찰서에 근무했던 황모 씨가 생전에는 진술을 거부하다 임종하기 전에 자식에게 광산에서 약 3,500명이 죽었다고 증언하기도 했죠.

그럼 이들을 어떻게 죽였는냐? 수감자들은 포승줄로 묶인 채 군용트럭으로 끌려와 수직갱도 입구에 나란히 세운 뒤 총살되거나 산 채로 수장되었는데요.. 약 8명씩 포승줄로 이어 묶은 후 앞에 한명을 총으로 죽이면 쓰러지면서 수직갱도로 빠지면서 나머지 묶인 이들도 따라 빠지게 했습니다.
수직갱도의 깊이는 약 100미터.. 너무 많이 죽여서.. 그 수천 구의 시체가 넘쳐서.. 수평 갱도 바깥으로 밀려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죠. 


보도연맹원들은 예비검속 조치에 따라 자발적으로 경찰서로 가거나 집에서 그 지역 지서 경찰들에게 끌려가 경찰서나 담배창고, 수리조합 창고 등에 구금되어있다가 광산으로 끌려가 학살당했는데, 학살방법은 위에서 언급한 총살형이나.. 일부는 도끼 같은 예리한 흉기로, 일부는 기름에 태워져 잔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당시 보도연맹원 가운데 일부는 소 한 마리 값의 돈을 주고 풀려나거나 아는 경찰관의 도움으로 살아나기도 했고, 간혹 광산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이 있었으나 다시 잡혀가 남천변 등에서 공개처형되거나 먹을 것이 없어 애기호박을 따먹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3. 현재의 상황

앞서도 적었지만, 4.19혁명 이후 진상규명위원회 발족되었으나.. 박정희정권에 의해 기존 자료마저 빼앗기고 소각되었고 유족들은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받았습니다. 또한 이후 유족들은 해외여행이나 공무원시험에 합격해도 발령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연좌제죠.)

이후 유족들이나 지역주민들은 쉽게 말할 수 없었고, 쉬쉬 했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지나서 김대중 정권당시 민간인학살에 관한 여론이 생기게 되었고(1999년 노근리사건), 과거사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는 듯 했지만, 서울과 지역의 유력 일간지들(아시죠 뭔지?)은 경산 코발트사건을 외면했었습니다. 왠진 몰라요~

또한 경산 경찰서를 찾아 사건 당시 문건과 관련 서류 공개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하기도 했고, 유엔에서 파견단이 오기로 했으나 정부에 의해 입국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2006년 4월이 되어서야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2009년 12월 1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 경산 코발트 광산 사건을 '국가에 의한 양민 학살'로 결론 내렸습니다. 학살이 일어난지 60여년 만에 국가가 인정한 것이지요. 이것은 과거사위의 권고내용입니다.


"경산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관할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과 대구형무소에 미결 또는 기결상태로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불법 사살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비록 전시였다고 하더라도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하여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국가는 경산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민간인들을 불법적으로 집단 학살한 것에 대해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위령사업 지원과 같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직까지도 수많은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 경산코발트광산의 경우 현장을 잘 보존하여 군인과 경찰, 공무원을 비롯해 초․중ㆍ고등학교 학생과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평화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게 2009년 말이었습니다. 사실 과거사위는 이명박 정권과, 그 떨거지 세력들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곳 중 하나였지요.  학살은 코발트광산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주변의 골짜기에서도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지금 경산 코발트 광산의 바로 옆에 요양 병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변의 산과 골짜기는 지금 골프장이 되었습니다. 골프장이 개발될 당시에 유족들은 공사 중단과 현장 보존을 강력하게 요청했지요. 하지만 정부는 골프장 허가를 내줬고... 결국 수차례 학살이 벌어졌던 대원골을 비롯, 보존되어야 할 유골 발굴 장소들은 전부 골프장으로 덮였습니다. 당시 공사중에서 유골이 발굴되었지만, 대충 유골을 수습한 뒤 공사를 강행했다고 합니다


2012년.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최근 근황이 없어서.. 처음 경산코발트사건을 취재한 '경산일보'에 전화를 해봤습니다(2012.4. 5. 아침). 그 담당기자 왈 "유족 측은 돈이 없어서 발굴 중지된 상태이고, 경산시에 시민단체와 유족들이 요청하여 평화공원 조성을 허용받고 예산도 내려왔는데, 사유지주인과 골프장 병원들과 협의는 안된 상태이고, 현재 민사소송 1심이 올해 5월에 판결 나올 예정인 상태"라고 하더군요. 다시 기자와 통화를 요약하면,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시와 협의를 해놨지만 답보상태'인 것이죠.




4. 결론

자,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국민이 주인이죠. 하지만, 현재도.. 국민 개개인은 이 대한민국의 진정 주인이 되진 못하고 있습니다. 해방이후 미국의 입김에 의해 남한이 먼저 정부를 수립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과거 친일세력을 척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남한정부수립 당시 여전히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두려웠던 것은 '국민의 힘'. 이들이 이용했던 것은 '이념'이었습니다.

현재도 특정정당에서 '국부'라고 존경하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그 정점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지기반과 기득을 위해 국민 한사람의 인권과 삶을 밟고, 죽였습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 그것도 귀한 한 생명을 하찮은 자신의 소욕을 위해 전국적으로 학살을 명령, 방조, 묵인하였습니다.

제 개인적 사견으로는.. 저도 대구출신이지만.. 저희 조부께서도 대구 10.1사건 중 무고하게(시민) 돌아가셨지만.. TK는 아주 좌파적(어느정당에서 보기에)인 곳이었습니다. 일제시기 국채보상운동부터, 해방 후 10.1사건, 4.19혁명의 시작인 2.22학생운동 등.. 잘못된 것에 옳은 말과 행동을 하던 도시이자 지역이었습니다.

이 한 가운데 경산코발트 사건이 있지요. 또 이 즈음 이와 관련된 척결이 많았고.. 이들의 자녀들은 연좌제를 당했습니다. 70년이 넘어오면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갈등을 박정희가 만들었고, 연좌제를 당하던 자녀들은 부모들이 어떠한 죽음으로, 누가 죽였느냐 보다.. 살고자.. 미워해야할 대상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역(전라도)'과, '이념(빨갱이, 종북좌파)'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때는 물론 지금보다도 언론장악이 심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누구나 궁금하면 찾아볼수 있고, 알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자, 보세요. 오늘 제가 올린 이 사건에 중심에 흐르는 것은.. '국민을 호구로 생각하며 자신의 기득을 위해 명령한 대통령권력남용 및 직무유기', '자신의 부도덕한 과거(친일, 친미)를 감추려 이념이란 도구를 사용', '사건과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기 위한 개발독재'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릴까요? 이승만은 미국을 등에 업고 마치 스스로 왕인냥 국민을 학살하였습니다. 그것도 과거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우리 선조의 사상을 바꾸려했던 그 방법 그대로 말이죠. 거기다 이념을 이용하여 선동하고, 명령함으로서 학살했고,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 이를 드러내지 않고 묵인 묵살 엄폐했으며(박정희),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의 정당과 기득권들은  자신들을 위해 이곳을 개발함으로서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 친일. 이념. 개발. 독재. 지금은 어떤가요? 역사 속에선 어땠나요? 4.3사건, 보도연맹사건, 2.28운동, 4.19혁명, 전태일열사분신사건, YH 무역 여성근로자 사건, 부마항쟁, 박종철고문치사사건, 6.10항쟁, 미국쇠고기촛불집회, 쌍용차문제, 한진중공업문제, FTA통과, 민간인 사찰사건.. 어떤가요? 

지금 우리에게 국민이 주인된 진정 주권이 있습니까? 아. 겉으로 교육받는 그 주권말고요. 때린 놈보다 맞은 사람이 더 나쁜 현실 아닙니까? 부동의 30%.. 특히 TK분들. 여러분의 가족, 부모, 이웃이 당하고도 여전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투자한 작은 시간과, 작은 손으로 여러분들이 선택한 정권과 정당에 따라.. 제가 글을 통해 적었지만, 이 사건이 엄폐되기도 했고, 진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과거사위의 발표와 상관없이.. 발굴된 뼈마저도 컨테이너에 방치상태입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민간인 학살을 ‘대한민국의 출생의 비밀’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건국 초기의 묻혀진 역사, ‘출생의 비밀’ 때문에 사실상 현대사의 비극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겠죠.


과거 60년전 이승만은 자신이 왕인냥 무고한 국민들을 학살했고(민간인 학살), 이명박과 박근혜는 자신이 왕인냥 무고한 국민을 사찰하고(민간인 사찰) 국가권력으로 언론을 선동조작하고 있죠(국민 유린) 60년이 지나도 똑같습니다. 단지 '형태'만 다를뿐......................................

 

생명.
生은  命입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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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있었군요.
    엄청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대강의 사실만 알았지,
    경산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잘 배우고 갔니다.

    2013.07.06 17: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대구 사람으로서 애통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2016.04.21 01:05 [ ADDR : EDIT/ DEL : REPLY ]
  3. 그래봤자 개누리 찍는 그들에게는 명복 빌어줄 가치가 없습니다

    2016.07.21 20:07 [ ADDR : EDIT/ DEL : REPLY ]

사회이슈정치2012.12.26 15:28



늦가을에 실내온실식물원에서 숲으로 옮겨심어진 은행나무가 숲의 나무들을 보면서 말합니다.
"너희는 왜 그렇게 빨간거야? 너흰 뭔가 잘못됐어!"
심지어, 자신과 같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것을 보면서도 말합니다.
"넌 나와 같은 모습인데 왜 너마저도 노랗게 물든거야?"
그러자 숲의 나무 중 빨간 단풍나무가 대답합니다.
"그거야 우린 이 땅에 있는 나무들이니까."
그 대답에 온실서 온 은행나무는 발끈합니다.
"아니야. 이제까지 내가 있던 곳에는 너랑 똑같이 생긴 애들도 모두 푸른 색이었어.
그러니 여기 있는 너희가 뭔가 잘못된거야!"
그 말을 들은 숲의 소나무들이 대답합니다.
"어쩌면 저 은행나무 말이 맞을지도 몰라. 우리도 이 숲에 있는데 늘 푸르렀으니까"
그러자 싸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숲에 있던 모든 나무들이 그 은행나무 하나에 온통 엉망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숲에 사는 것도, 저 온실에 사는 것도 아닙니다.
4계절이 있는 한반도에 사는 것이죠.
이념이니 좌우니 지역차이니 빈부차이니 이런 것들은 개똥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고유의 공동체성이 무엇이냐? 의 문제지요.
좌니 우니 하는 것도 가장 좌에 위치한 이에게는 모두가 우로 보일 뿐이고, 반대로 우에 치우치면 모두 좌일 뿐이죠.
그러니 그런 것가지고 누가 옳은 것이냐? 좌냐? 우냐?를 따지는 것은 그저 분란을 만들기 위하는 것 뿐입니다.
또한 그러한 이념이나 지역이나 어떤 것으로든 한반도를 구분짓는 이들은 그 분란을 이용하는 것 뿐입니다.

한반도의 고유공동체성은 바로 '홍익인간 -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입니다.
그 기준에서 대통령이든 누구든 분석하고, 지역을 분석하고, 사건을 분석해야..
모두에게 그나마 보편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닌 이념(국가가 먼저냐? 국민이 먼저냐? 경제가 먼저냐? 복지가 먼저냐?의 문제)이나,
지역(경상도냐? 전라도냐? 서울이냐? 세종시냐?의 문제)이나,
좌우(반공이냐? 친북이냐? 빨갱이냐? 수구냐?의 문제) 등으로 어떤 사건을 분석하게 되면 그것은 혼란만 있을 뿐입니다.
왜냐? 그것은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지, 어떤 것이 정확히 맞다 틀리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 따위로.. 상식이냐 비상식이냐, 도리이냐 비도덕적이냐는 판단할 수 없죠.
자신과 같은 입장에 놓인 이들에게나 상식, 비상식, 도리, 비도덕이 되는 것이지
한반도 모두에게 보편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인 상식은 그 공동체마다의 공동체성으로 유일하게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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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chiman

    홍어의 일기장.

    2013.07.19 01:04 [ ADDR : EDIT/ DEL : REPLY ]

사회이슈정치2012.08.27 14:59




흠. 고 문익환목사님 관련 논문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문 목사님의 민주운동 투신의 과정이었죠.
거기에 문 목사님의 절친인 고 장준하선생의 죽음이 매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던 터라..
장준하 선생에 대해서 조금 연구를 했던게 있어서 이정토 내에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답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고 박정희씨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때, 거의 유일하게 박정희를 비판했던 분이 바로 '장준하 선생'이었죠.
어느정도였냐면 언론인이었던 장준하선생이 합법적인 제도정치의 틀 안에서 박정희와 싸우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고,
박정희에 대한 비판으로 '구속'된 첫번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박정희와 장준하는 복잡한 한국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기로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함으로서 극명하게 다른 삶을 표본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장준하의 이름이 오르내리면, 박정희의 이름은 저 구석으로 쳐박힐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
편하고, 쉽고, 개인의 사욕을 위한 선택을 했느냐?
자신보다 남을, 내 민족과 미래를 위한 선택을 했느냐?가 아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죠.


1. 장준하선생의 학도병 자원입대.
요 문제로 어린이들이 장준하선생을 까는데, 
학도병 자원입대를 이해하려면 당시 상황을 잘 파악해야합니다.
당시는요. 내가 가기싫어 안가는 그런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1943년 조선인 징병제가 법령으로 공포되기 전에 중국 혹은 만주로 피하거나,
스스로 학도병으로 지원하거나, 징병되어 끌려가는 것 셋 중에 하나였습니다.
한 예로 함께 일본에 있었던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장준하는 다 다른 길을 갔습니다.
첫째, 문익환은 일본을 위해 총을 들길 거부하여 만주신학교로 갈 수 있게 동경신학교장과 담판을 지었습니다.
(만약 신학교장이 반대할 경우 바로 체포되는 상황입니다.)
둘째, 장준하는 징병되면 같은 피인 독립군과 싸울수 밖에 없어 
학도병으로 지원하면 중국전선에 배치를 받을 수 있기에 지원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부분은 후에 다루겠습니다.)
셋째, 윤동주와 송몽규는 징병되어 '일본의 국력이 약해지거나 패전하는 기회를 타서'
조선의 무장을 돕는데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계획을 가지고 징병당했습니다. 
(후에 두 분 다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생체실험 혹은 가혹한 노동과 투옥에 의해 옥사 당합니다.)
이렇게 보수적이거나 급진적 행동의 예(첫번째 문익환과 세번째 윤동주 송몽규) 중간에
장준하가 선택한 '학도병으로 자원입대'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자원으로 입대하여 중국에 있는 독립군으로 가기위해 탈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죠.
거기다 장준하에게는 자원입대를 해야하는 2가지 개인이유도 있었습니다.
첫째, 목사셨던 부친의 신사참배반대로 학병까지 회피할 경우 집안에 닥칠 위기에 대한 장남으로서 책임.
둘째, 신안소학교 교사시절 제자였던 김숙희와의 결혼을 앞두고 결혼함으로서 정신대징발을 막겠다는 책임.
(학병에 징집하거나, 자원입대하지 않는 경우 결혼을 성립할 수 없었던 시기였음)
이런 개인적 이유와 현실적 대안이 있었기에 자원입대 후 탈영 그리고 독립군을 참여하게 된 것이죠.
사실 장준하는 1월 입대, 7월 탈영, 그리고 중국군으로 편입되었다 광복군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이거 가지고 까는 분들께 이런 말 감히 해드리고 싶네요. '니들이 그때 있어봐라 어떻게 할거 같냐?'


2. 박정희를 싫어한 이유?
장준하가 박정희를 싫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시절 그 상황은 역사의 물음 앞에 한 개인이 서있고, 
모두 어떠한 선택과 응답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때였는데..
한 예로, 윤동주와 송몽규는 학도병으로 무기를 받아서 기회를 보고 부대내에서 혁명으로 일본에게 겨누길 계획했고,
장준하는 학도병을 탈출해서 광복군으로 넘어가길 바랬으며,
문익환은 징집령이 내리기 전에 회피함으로서 피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선택들 중 친일적 행보도 물론 있죠. 
그 중에서도 가장 용서받기 어려운 최상급의 길을 선택한 것이 바로 박정희였기 때문입니다.
1942년 만주군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졸업생을 대표하는 답사를 할 때 그 인생은 정해져있었습니다.
   "만주국의 왕도락토를 지켜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는 성전에 참여, 저는 벚꽃처럼 산화하겠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충성심(아마도 지 한몸 잘먹고 잘살자했던)으로 일본 육사에 입학하는 특전을 누리게 되죠.
1944년 일본육사 57기 중 3등으로 졸업하고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소위가 됩니다.
이후 충성경쟁으로 일본군 14연대를 거쳐 
만주국 보병 8연대 소대장으로 팔로군 활동지역 게릴라 소탕전의 임무를 수행하고 1945년 7월 중위가 되었는데,
아뿔싸~~~~~~ 8.15 해방을 맞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무장해제 당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에 증오심을 가진 만주출신 사병들이 조선 출신 일본군을 비참하게 보복하는 상황에서
미노루 중위는 민간인 복장으로 탈출, 피난민 대열에 끼어서 베이징에 주둔하고 있던 광복군 제3지대를 찾아가
급한대로 광복군에 가담했고(지 한몸 살기 버프) 전투경험을 인정받아 광복군 제1중대장이 되었죠.
근데 웃긴건, 미노루씨가 이미 훨씬 전에 학도병으로 탈출해 광복군 간부가 된 장준하와 만나게 된 것이죠. 
웃기지 않나요? 지 한몸 살자고 자신이 족치던 광복군에 편입한 사람과, 나라를 위해 탈영해서 광복군이 된 사람.
장준하가 박정희를 두고두고 비판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지 한몸 잘먹고 잘 사는 기회주의적 처신 때문에 역사의식 형성이 전혀없는 자가 감히 강압적으로 위정자가 되어
결국 지 한몸의 영원한 권력을 위해 개개인의 삶과 자유를 박탈하니 얼마나 싫고 용서할 수없었겠습니까?
그랬기에 장준하는 박정희를 '밀수왕초'로 말하기도 했고(재벌비호의 앞잡이로),
한일협정비준 이후 즈음에는 '어떤 사람이나 다 일정 자격을 갖추면 모두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박정희만큼은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시켜서는 안될 사람'으로 말했죠.
그러나 단순히 박정희의 과거 삶때문에 박정희를 미워만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7.4공동선언이 발표되었을때, 장준하는 '민족적 양심 앞에 살려는 사람 앞에 갈라진 민족, 둘로 나누어진 자기를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것 이상의 명제는 없다. ... 중략 ...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의 명령은 없다.'라고 하며
기대했지만.. 7.4공동선언으로 들뜨게 한 이후 치밀한 계산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체제를 만들어 버리자,
장준하는 바로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벌였고,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는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선포, 
장준하와 백기완을 구속시키고 징역 15년형을 선고합니다. 이후 간경화와 협심증으로 구속 10개월만에 풀려나죠.
병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자극해 범야권 단일화를 제의합니다. 
이후 윤보선, 김대중, 김영삼, 양일동씨가 4자회담을 열고 야권통합에 합의하게 되죠.
그리고 8월 15일 김대중 선생과 장준하 선생 간의 모종의 중대결단을 내리기로 약속한 가운데 사망하게 됩니다.


3. 의문의 죽음.
문익환선생과 그 동생 문동환 선생이 부음소식을 듣고 여러정황을 수집해본 결과 이상한 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습니다.
첫째, 높은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다고 하는데 그가 메고 있던 마호병(보온병?)은 상하지 않았다.
둘째, 귀 뒤 급소에 못으로 구멍이 뚤린 듯한 타박상이 있었으며 
        낭떠러지에서 떨어질때 생기는 상쳐가 없는 대신에 양팔꿈치에 무엇인가 꽉 조여진 자국이 있었다.
이 두가지 점은 문익환 문동환 선생이 신체검사를 하고 사진까지 찍어 확인한 상황이고,
사고가 날 당시의 장소에 대한 의문점도 있습니다.
첫째, 추락사고 지점은 산이 너무 험해 젊은 등산가도 오르지 못하는 
        경사 75도, 높이 12미터의 절벽인데 아무런 장비없이 장준하 선생 홀로 내려오려 한점.
둘째, 사고현장 벼랑 위를 오를 때는 멀리 등산코스를 돌아올라가갔는데,
        내려올 때는 등산코스가 아닌 벼랑으로 내려오려 한 점
셋째, 사고 직 후 김씨가 장준하 선생의 시계를 차고 있엇던 점.
        (사고 후 신고나 인명구조로 바쁜 시간에 왜 장준하 선생의 시계를 찼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자신이 장준하 선생의 곁을 떠난 사이 다른 등산가들이 시계를 훔쳐갈까봐 그랬다'고 진술)
넷째, 1965년부터 3년 동안 김씨는 신민당 서울 제 4지구당 총무로 있었는데,
        사고당일 등산길 버스 안에서 우연히 장준하 선생과 만났다고 진술한 점과,
        김씨가 사고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군부대에 신고한 점.
뭐. 이후 명동성당에서 김수환추기경의 집전으로 이루어진 영결식의 
장례위원장을 맡고 조사를 읽은 문익환 목사는 그 때부터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유신독재를 비판하기 시작했죠.

 


모르겠습니다.
지금이 그때처럼 급박했던 시기라면 시기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여전히 동일한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단순히 나 하나만을 위한 선택의 순간이진 않다는 겁니다.
장준하 선생의 삶처럼 살진 못하겠지만, 
박정희의 삶처럼 자신만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살지 않는 선택을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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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2.06.25 15:41




반복된 역사에 관한 글을 적다가.. 에이 귀찮다. 바쁘다 하며 쓰다지우다하다가..
한국전쟁(6.25)관련 논쟁이 있길래 짧게 글 하나 적어보고자 합니다.

요한 갈퉁(Johan Galtung)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실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란 이름보다..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이 더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성격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어느 특정한 사건 하나만 꼭 찝어서 보는데, 사실 역사란 그런게 아니지요.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앞뒤 상황과 정황을 바라봐야 그 사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는 되어지는 거랍니다.

남침했냐? 북침했냐? 다들 그게 궁금하신거 같은데..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이 남한을 계획적으로 공격하여 정확히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이 발발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을 바라볼때 반드시 이해해야될 몇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1. 한반도는 남북의 국민의지와 상관없는 이데올로기를 가장한 강대국과 그에 빌붙은 이들의 놀음터였다.

당시 세계정세는 2차 대전 이후 모든 강대국들이 침체하게 되었고 그에 비해 피해가 적었던 미국이 세계정세의 패권을 가지게 되었죠. 그러나 이러한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나라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마르크스주의(Marxism)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멸망을 주장하며 정치, 경제, 군사적 능력에서 미국의 몇 안 되는 경쟁자였던 소련이었습니다. 소련은 그리스에 공산주의를 전파하고 소련의 영향권 아래 들어 있던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등으로 하여금 그리스 공산주의자를 지원하여 권력을 장악하도록 시도하는 등 공산주의 확장을 꾀했죠. 그리스 뿐 아니라 터키에도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자, 두 나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영국은 미국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협조의 내용이란.. 영국은 붕괴 위기에 처해 있는 두 나라를 공산 세력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경제적 군사적 능력이 없으니 미국이 나서서 소련의 침투를 막아 달라는 것였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것이 1947년 3월 발표된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입니다. 소련의 세력 확장에 맞서 자유국가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인데.. 중동 지역의 관문이랄 수 있는 두 나라가 공산화되면 중동 지역에서 서구 세력의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중동의 석유 자원도 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죠(사실상 강대국놀음). 트루먼 독트린의 후속 조치로 나온 것이 3개월 뒤에 발표된 마샬 계획(Marshall Plan)인데요. 공산주의 팽창으로부터 유럽을 지키기 위한 경제적 처방으로,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 경제를 복구하고 나아가 경제 혼란을 틈타 공산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유럽에 전폭적인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꼽사리로 한반도의 문제가 있었고, 미국이나 소련은 한반도의 일이 자신들의 일의 한 가지 예시가 될 수 있었기에.. 한반도 문제는 미국의 영향아래 있었던 유엔으로 넘어갔고, 1948년 5월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강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1948년 8월 남쪽에 대한민국이 들어서고, 1948년 9월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섬으로서 이데올로기적 체제 분단이 이루어지게 된 거죠.
뭐랄까.  당시 이데올로기 놀음이 한창일 때, 
남에 영향력을 주던 미국도 북에 영향력을 주던 소련도 자신들의 똘마니들이 필요했죠.
그게 바로 김일성과 이승만이었습니다. 
당시 한반도에 사는 이들 대부분의 상황은 정치적 계파에 따라 이념적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일제의 식민지 반봉건(反封建)적 잔재모순과 미국소련의 분단구조 속에서 
제 2의 해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은 각기 김일성과 이승만을 이용해서 
공산주의 확립, 반공(反共)이라는 기치(旗幟)를 내걸고 사회 정치 인사들을 처단하게 되지요. 
남북이 정권을 세우기 1-2년전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데올로기'라는 말로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쥐려했던 이들에게 당했는지 모릅니다. 
제주도에서도, 전라도에서도, 경상도에서도, 강원도에서도..
그저 생을 살아가고자 했던 무고한 이들이 '이데올로기'따위 전혀 모른 채 수 만명 - 수십만명이 죽어나갔단 말입니다.
지금이야. 반공이니 빨갱이니.. 그런 인식이 잡혀있지만.. 
당시는 그냥 배불리 먹고 살고, 해방되어 이 땅의 주인으로 평등하면 그만이었거든요. 

즉, 남이고 북이고 내적으로 청소(살육) 중이었습니다.
남과 북이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땅에 살아가는 이들을 무고하게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이데올로기'를 사용해서 무자비하게 청소(살육)한 거죠.
그러면서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적'의 개념을 심기 시작했죠.


2. 그때는 현재의 휴전선이 없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민간인통제구역이 있고, 휴전선이 그어져있어서 남북이 정확한 위치에서 대립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저 미국놈 장교둘이 30분만에 땅따먹기하듯 줄 그어놓은 38도선에서 서로 대치하며,
앞서 말한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청소과정에서 자신의 장소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남으로 북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기꺼(인구는 재산이니) 북으로 남으로 가니 안되겠다 싶어 지키게 되고 
대치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서로 충돌도 일어나게 된 것이죠. 
사실 이와 관련하여 38선을 두고 1945년 9월부터 1950년 6월 이전까지 수 만명이나 희생되었을 정도입니다.
(천안함이니 연평해전에서 사상자와 비교해보세요 수만명의 개념이 얼마나 큰건지 이해될테니..)

즉, 6월25일 북한군의 계획적 남침이전에 전투가 없었냐? 아니죠. 있었고 많이들 죽었습니다.
군에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발이나 충돌, 작전, 전쟁이란게 우발적으로 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6월25일 전까지도 남과 북의 계획에 의한 충돌과 전투가 있어왔고,
사실 이승만의 경우 6.25이전부터 북침을 하길 미국에 강조하기도 했죠
(미국에서 이승만을 갑갑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어느정도의 대립을 원하지, 충돌은 원하지 않으니깐요).
그러나 '전쟁의 시작이 언제냐?'는 다른 의미라고 생각되고, 그 기준도 다르다고 봅니다.
계획된 전투와 충돌은 나름 있었지만(이것은 침략의 문제와는 다른거죠).
북한의 경우 1950년 6월25일 남침을 한 것은 그 전까지의 충돌이나 전투와 전혀다른 계획된 침략이란 겁니다.
이걸.. 남침이 없었다고 해석하면 안되죠.
그렇다고 6.25이전에 남북간의 전투가 없었다고도 못하고요.




결론.
이 6.25문제가 민노당관련해서 몇몇분들이 북한관련 이해를 떠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거라고 보는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6.25.
남도, 북도 개새끼였다는 겁니다. 
누구만의 책임이 아니라, 지 배불리기 원하고 지 권력 영원하려고 개수작부리던 열여덟놈같은 새끼들이 만든거죠.
이걸 단순히 남침했니 안했니 사회적 정황 등 무시한채 옳고 아니고 따질거 없단 겁니다.
분명한 건 '국민'의 관점으로 이 전쟁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어느 누구하나 원하지 않은 아픔이고 슬픔이며, 현재까지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며
아직도 기득권의 권력에 도움을 주는 요소이지요. 이거 없으면 벌써 진작에 모두 평화로웠을겁니다.
전쟁의 직접적인 경험을 한 이들은 권력자들이 이용하는 '이데올로기'에 쉽게 이용당할 뿐이지요.
그 전쟁의 직접적인 경험이 더 객관적인 관점을 잃게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하게 하고있구요.
한반도에 사는 땅의 주인으로서
이 전쟁은.. 누구의 탓이기 보다, 지금도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뿐입니다.
호도당하지 맙시다. 
누구 탓'만'하기 보다, 
이 전쟁을 통해 아파한 이들이 누구이며, 누가 가장 이득을 얻었냐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가 사라지고,
과거를 잊어버리면, 미래가 사라진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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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어냄새

    하나 분명한건 남쪽에서 먼저 칠일은 없었다는 점.. ^^;
    이런 말씀 하시는 와중에도 특정국가에 대한 증오심을 확대 재생산 하는 이중잣대적인 우를 범하시면 안되겠지요. ^^

    2013.07.19 01:10 [ ADDR : EDIT/ DEL : REPLY ]

사회이슈정치2012.06.06 14:50




흠. 현충일 앞뒤로 종북논란'만' 많아서..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하나 써봅니다.

1. 뭐. 요즘 아이들보면 참 공부 열심히 합니다.
근데, 너무 기특해서 그 공부하는 걸 물어보면 아이러니한 점을 느낍니다.
한 예로 사회/역사의 경우 역사적 사건을 잘 외우긴 해요.
근데 그 사건의 본질이나, 발생배경, 의의를 물으면 답을 한명도 못하더군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과정과 연관된 한글창제과정에 이뤄진 다른 업적을 이야기해보라 
뭐 이렇게 질문하면 답을 못하더군요(질문이 어렵긴 합니다만;;).
그래서 물었습니다. '공부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
애들이 대답하길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구하고 블라블라..'

2.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물론 배려가 넘치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주 간혹..). 
이전 세대처럼 우르르 몰려다니긴 하지만 옛적 '친구'라는 개념도 현재의 아이들과는 많이 다르단 느낌이 듭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이나 필요에 의해 모여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정말 왜 저러나 할 정도로 '따'를 시키고 그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더군요.
즉, 아이들을 볼때 '배려'라는 단어를 이해도 못하고, 필요성도 못느낀다는 느낌을 많이 가집니다.

3. 더이상 '교육'은 사람'됨'의 추구가 아니라, 한 개인의 필요에 의한 '스펙쌓기'의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친구의 개념, 선생님에 대한 개념, 학교의 개념은 자기 필요에 대한 어떤 필요충족의 과정일 뿐이더군요.
그러니 자신에 손해가 가거나, 필요에 불필요하다면 아주 과감해지는 면을 많이 느낍니다.

4. '이렇게 커간 아이들이 가지는 사회적 시각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당연히 자신에게 필요한 부류에게는 상냥하고, 또 일종의 대단한 스펙을 가진 이들에게는 굽실대죠.
즉,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한 인간으로서 평등이라던가,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이나, 가지게 된 것에 대한 사회적 돌봄과 나눔에 대한 의식은 사라지죠.
결국 예전처럼 태생적 계급화는 아니지만, 암묵적 계급화가 이뤄지는거 같습니다.

5. 대한민국을 민주주의공화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교육의 실태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멉니다.
한 예로 법은 더이상 만인의 평등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법치의 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스펙에 따라 이해해주는 식으로 변해가죠.

6.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자유는 물론 보장됩니다.
어떤 사상적 이해를 개인이 가지느냐는 자유죠.
그러나, 그 사상적 이해가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다면 문제가 되겠죠.
종북. 문제입니다. 
근데요. 그것도 그거지만 눈 앞에 빵빵 드러나지 않는, 암묵적으로 이해되어지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이 무서움에 대해서는 왜 종북만큼 말하지 않을까요?

7. 모든 인간은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모두 동일하죠.
그렇게 태어난 한 생명에는 누가 더 귀하고, 더 천하고가 없습니다.
'숑숑숑~'이라는 한 사람을 볼때, 그가 가지고 있는 외형적 모습과 스펙 혹은 특징을 보는 것은..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면,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 '숑숑숑~'이 아닌,
살아숨쉬는 한 인간이 아닌 그 한 인간의 '외부적 포장' 혹은 본질 외의 '외적 도구'만을 바라보는 것이겠죠.
그러니, 너무도 쉽게 다른 이의 삶의 모든 것을 '홍어'니 뭐니하며 히히덕 거리며 비웃을 수 있고
           삶의 모든 것을 너무도 허무하게 빼앗김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것도 아닌냥 내 일이 아니니 지나칠 수 있겠지요.
결국 외적 치장을 강요하는 그 누군가만, 강력한 스펙을 가진 어떤 부류만이 '인간'으로 대접받고 살겠지요.

 

그냥. 사회적 이슈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미래인 아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오늘은 목회자인 '저'의 껍데기를 빼고, 불교의 가르침 중 하나를 남기고 글을 맺을까 합니다. ^^ㅎ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손가락을 따라 당연히 달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가 손가락을 보고 달의 본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이 어찌 달만 잃은 것이겠는가,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다. 
                                                                            -능엄경 중에서- 

사회적 좀비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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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1.07.13 15:26



현재의 우리나라는 망각의 나라라고 생각이 됩니다.
망각이란 무언가를 잊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망각을 하는 이유는 크게 심리학적으로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번째, Decay 즉, 희미해짐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내용을 보존하는 과정을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 기억이란 것은 경험의 결과가 흔적으로 남는 것을 말하며,
반대로 '망각'이란 이 경험의 흔적이 쇠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두번째, Interference 즉, 간섭과 영향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망각이란 것이 단순히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나타나는 것 뿐 아니라, 
이전에 경험하거나 학습한 내용을 이후의 일어나는 어떤 일이 간섭하기 때문에 망각이 일어남을 말합니다.
즉, 새롭게 하게된 경험 때문에 이전의 경험이나 학습내용이 간섭받거나 영향을 받아 망각이 일어나기도 하고,
이전의 경험 때문에 새롭게 경험한 것이나 학습내용이 간섭이나 영향을 받아 망각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번째, suppression or repression 즉, 억압 혹은 은폐가 그 이유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왜곡하길 원합니다.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좋은 것만을 기억하길 바라고,
반대로 원하지 않는 것들, 자신에게 충격적인 것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망각하길 바라는 것이죠.
사실 사람의 기억이란 '사실'보다는 자신에 맞게 왜곡된 부분이 참 많이 있는.. 그런 것들을 말합니다.

왜 이런 망각의 이유들을 설명했느냐고요?
바로 현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 망각의 이유들을 내포하고 있고, 
이런 망각의 모습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한 모든 왜곡된 현실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망각의 첫번째 이유은 '희미해짐'
우리는 흔히들 근현대사의 단추를 잘못 꿰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역사 가운데 우리가 경험했던 것에 있어서 
우리는 너무도 오랜 시간에 의해 너무 아프고, 괴로운 것들로 부터 무뎌져서 '희미해짐'을 느낍니다.
거기다, 내 외부적인 '간섭과 영향' 즉, 두번째 망각의 이유가 첨가되어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계속되는 혼란스러운 새로운 경험들과, 요구들로 인해 우리는 과거의 기억도 잊고, 현재의 기억도 모호해져 갑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혼란스러움에 대한 패닉은 
우리 자신들로 하여금 '망각'을 종용당하거나, 스스로 '망각'하길 소원합니다.
이로서 새번째 이유인 '억압 및 은폐'까지 우린 망각의 이유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해가 잘안가시는가요?
몇가지 단순하고 직접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라를 건국한 대통령 이승만
- 40년 가까운 일본의 억압과 식민지 안에서 어린 누이들은 팔려가고, 형들은 총알받이에, 아이들은 원치 않는 신민서사까지..
  그러면서도 그래.. 해방된 나라 잘 꾸려보려고 그 억압에 함께하고, 우리네 가족과 이웃들을 죽이고 괴롭힌 것들을 쓰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이 임금인냥 천년만년 해먹을려고 한 것이 건국 대통령인가?
  우리는 무엇을 '희미하게 잊어가고', 무엇에 '간섭과 영향'을 받았으며, 무엇에 '망각을 종용당하거나 망각하길 소원합니까?

  경제를 발전시킨 대통령 박정희
- 새마을 운동이니 뭐니 노동을 운동으로 만들고, 노동자들의 피로 산 발전을 독재자에게 몰아주는게 정상인가?
  우리는 무엇을 '희미하게 잊어가고', 무엇에 '간섭과 영향'을 받았으며, 무엇에 '망각을 종용당하거나 망각하길 소원합니까?  
  누구에 의해서 그렇게 기억을 삽입당하고 간섭 영향받았는가?

이 밖에도 많네요.

  친일파와 위안부 할머니들, 빈부격차, 최저임금, 등록금문제, 무상급식, 비정규직 문제, 선거무관심..

우리가 '망각'하고, 우리나라가 '망각'의 나라가 되어 있으니............. 나라가 이 꼴인듯 합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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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12.27 15:12

2010년 한해를 정리하면서 사회를 바라보고, 제 분야인 종교를 바라보니..
왠지.. 2010년 대한민국의 사회와 종교분야의 모습이 마치 1920-40년 사이의 독일교회와 히틀러의 모습을 보는듯 합니다.



1. 1차대전 이후 독일은 혼란스러웠다.

1차대전 이후 독일은 정치적 혼란, 수많은 실업자와 경제적 공황, 공산주의의 확산 등으로 복잡했었습니다.
그 가운데 독일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과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합리적인 대처와 설계보다, 비합리적인 이상을 바라보게 되죠.
사실 위기를 풀어나가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느리지만 거대한 계획으로 차근차근 극복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나,
국민들은 그러한 시간과 계획보다, 눈 앞에 들어나는 타겟과, 심리적 안정을 더 바라게 되면서
'민족적' 모습을 띠게 되고, 그것은 마치 '신앙적, 종교적' 색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2007년 대한민국은 안정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론들과 수구들의 주창에 의해 경제적 위기가 왔다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마치 실제적으로 경제적 불황이 온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지요.
마치 합리적 현실보다 비합리적 이상을 바라는 독일인들처럼 다른 것 다 필요없고 '죽지도 않은' 경제만 살리면 된디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의 과장은 사회적 불안이 되고, 만족감을 모르는 국민들은 '경제를 살려야한다'는 '신앙적'모습을 가지게 되었죠.



2. 히틀러와 나치의 등장.

독일의 이러한 혼란 가운데 히틀러와 나치(민족사회주의정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들은 국민들의 요구를 교묘히 이용하여,
민족적 색채를 가지고 국민이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시킬만한 적을 만들고 선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들이 행하는 것에 국민적인 타당성을 확보하고
눈 앞에 드러내놓은 것들을 국민이 봄으로서 실재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독일 민족과 아리안 종족의 우수성을 곱씹으며 철저히 비독일적인 것과 대립시켰고,
이러한 편협한 민족주의를 형성시키면서 우월함을 위해 국민은 국가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세계에 다시없는 불황에도 한국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선전을 계속하고,
4대강살리기를 마치 일자리창출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인냥 떠들면서
한민족 공동체적 모습보다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여 다시금 '반공'이라는 기치를 가지고, 적을 삼고
눈 앞에 드너내놓은 것들을 국민이 보게 함으로서 실재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기업의 국가 수출과, 원전수출, G20 등의 일들을 국가적 과업으로 뻥튀기하여 선전함으로서
편협한 민족주의를 형성시키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국민은 국가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3. 독일 크리스천 운동

1933년 나치가 권력을 확실히 잡기 이전인 1927년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우익보수종교단체와, 당시 자유주의신학자(이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논리)들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확산에 대한 위기와, 기존의 유행했던 신학(자유주의)의 논조를 지키고자 했던이들이
나찌의 반 공산주의운동을 지지하면서.. 이들은 민족사회주의와 병합되었고, 결국 나찌의 정치적 이용물이 되었습니다.
당시 혼란스럽고 비관적이었던 사회환경 속에서 신앙인들은 실제적 삶보다, 피안의 세계를 바라는 현실도피나 부정이 만연했습니다.
1933년에는 나치와 바티칸이 협약하여 체결한 문서에는
"모든 사제는 정치적 활동을 금하고, 주교는 나치정권에 협력하고, 나치는 교회의 특권과 권리를 보장"하도록 약속했습니다.
급기야 "독일 크리스천의 과제는 독일이고, 그 능력은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함으로서
모호한 구원에 대한 개념과 현실도피적 신앙이 민족적 토속신앙의 종교로 둔갑되어
국가 밑에 종교가 권력의 시녀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또한 히틀러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신실한 신자인냥 연설과 사석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거명하고,
종교적 인물들과의 친분을 선전하여 신앙이 있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를 지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급기야 독일교회는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는 독일민족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자 성령의 길이다(1934.3)"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10여년 동안 대형교회와, 반공친일수구종교인들에 의해 '시국집회'가 수십번에 걸쳐 열렸습니다.
한편으로는 과거 친일과 반공으로 권력과 함께 성장했던 대형교회들이 그 기반을 잃어버림으로서
정치수구세력을 지지하게되고, 이들은 결국 정치수구세력의 정치적 이용물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현실의 삶에서의 겸손한 모습과 가난한자를 위한 나눔보다,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주의와 자기구원만을 강조하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사회와 교회의 구분과 담을 만들었습니다.
구원과 믿음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음은 잊은채, '누가 강도만난이의 이웃이 되겠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교만한 종교지도자들처럼 '내가 구원받기위해 도와줘야할 이웃은 누구입니까?'의 모습을 가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2010년에 이르러 정권에 협력하는 대신, 교회의 특권과 권리를 보장이나 받은 듯
여타종교에게 알력을 행사하고 마치 특권을 가진듯 여러문제들을 만들어왔습니다(통도사역문제, 템플스테이, 기관봉투..).
급기야 뉴라이트라는 조직으로..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가 밑에 종교가 권력의 시녀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또한 이명박은 공공연하게 자신이 신실한 신자인냥 연설과 사석에서 '신앙인'임을 거명하고
종교적 인물들과의 친분을 선전하여 현실도피적, 기복적 신앙의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을 지지토록 하였습니다.



4.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후 독일교회와 나치의 이러한 불의 가운데, 바르트를 위시한 젊은 신학자들은 '바르멘 선언'을 발표합니다.
독일교회와 나치에 반대하고,
교회는 정치와 결탁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잘못을 짚어주고 하나님앞에 절대 겸손한 존재로서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서는 안되지만, 결탁되어서도 안되며, 종교는 정치를 견제하고 바른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죠.
또한 깨어있는 신학자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은 고백교회로서 새롭게 모이길 요구했습니다.
젊은 천재 신학자였던 본회퍼는 다른 동료들의 만류에도 독일로 돌아가
"악한 행위보다 악한 존재가 되는 것이 더 나쁘다."며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다가 사형당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을 마감하는 즈음..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희망이 있을까요?
다시금 '사람사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개신교는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얼마가지 않아 역사교과서에서..
과거 면죄부를 팔던 가톨릭보다 더한 부끄러움을 받게 될거 같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이 시대와 이 나라, 그리고 제 신앙 앞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한없이 서글퍼지네요.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2011년에는 희망이 있길 바랍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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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12.24 08:30
이명박과 그 정권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신뢰(Trust)를 얻게하고, 잃게 하는지를 알면 되겠지요.

신뢰(Trust)를 얻기 위해서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또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 그리고 그 사람이나 부류가 추구하는 '가치'가 타당하거나, 이해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 그리고 그 사람이나 부류가 추구하는 가치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람이나 그 부류의 '자질', 사람이나 그 부류의 '행동', 사람이나 그 부류의 '규범'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요.

즉,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질', '행동', '규범'적 관계가 되어져야되고,
반대로 신뢰(Trust)를 상실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나 부류의 '자질', '행동', '규범'이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자질'이라고 하는 것은 타고난 성품이나 소실을 뜻합니다.
즉,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이렇게 각 개인이 태어날때부터 고유하게 가진 '자질'을 통해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짐으로 관계는 시작됩니다.

둘째,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행위 혹은 영향력 그 자체를 말합니다.
즉,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질'로서 드러나는 모든 삶의 반경을 뜻하는 것이지요.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가 쌓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이 어떠한 것을 보여주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셋째, '규범'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집단에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것을 말합니다.
즉,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질' 그리고 그것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사회에서 마땅히 타당하게 여겨지는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그 사람이나 부류를 신뢰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았을때,
이명박과 그 정권에 이러한 세 가지를 대입해봅시다.
과연 이들이 신뢰(Trust)를 받고 있는가?
길게 적지 않겠습니다.

1. 이명박과 그 정권의 자질.
이미 여러분들도 이 정권이 시작되었을때 '고.소.영'이란 단어를 들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명박이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린다'고 했을때,
그가 현대와의 연관성, 서울시장이라는 것의 효과가 그의 자질을 대변했었습니다.
물론 조금만 그에 관해 알아본다면, 이것은 허울일 뿐이란 것도 알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허울에 속고, 그 자질을 의심하게 되었지요.
남들과 달리 잘 할 수 있을 거란 특정부분에도 삽질하는 것을 보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과 그 정권은 신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2. 이명박과 그 정권의 행동.
소고기 문제나, 용산사태, 천안함 사건, 4대강, G20 등.. 에 대한 이명박과 그 정권의 행동들을 보면 무엇을 느끼는가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부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명박산성을 쌓고, 경제적 가치로 국민따윈 안중에도 없고, 
안보의 위기를 떠넘기기나 하고, 수백년을 내다보는 계획보다 당장의 이익을 바라보는 행동들,
세계가 지켜본다는 말로 전 국민을 휘어잡으려는 저 태도, 그저 생색내기 위해 시장을 찾고, 오뎅이나 잡수는 행동 등이
그의 자질과 함께 투영되면서
국민들은 이명박과 그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이명박과 그 정권의 규범.
대한민국은 단순히 60여년전에 건국된 것이 아닙니다.
남북으로 갈리워진 대한민국이 있기 전에 한반도가 있고, 우리는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를 싸그리 무시하고 '오륀지'를 외쳐되는 규범.
경제나, 성공만을 강요하면 역사를 무시하는 행동들.
수천년을 이어온 자연을 단순간에 재단하는 모습들.
거기다 법적 규범 또한 지키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이 한반도 역사적 규범, 인간으로서의 일반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그 스스로 신뢰를 잃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합쳐서보면,
그는 자질도 없고, 행동은 자기가 속한 부류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한반도의 역사적 규범과 동떨어진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과 그의 정권이 왜 신뢰를 못받느냐고요?
어느 것하나, 소통하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질도 없고, 행동은 맘대로에, 규범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저들을 신뢰(Trust)할 수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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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12.23 08:00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의 하버드 강의를 동영상으로 살짝보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여러분이 기차 기관사라고 할때, 전차는 시속 100킬로로 달리고 있고 철로 끝에는 인부 5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차를 멈추려했지만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상황은 절박합니다.
계속 달리면 그 인부 5명은 모두 죽게 됩니다.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비상철로가 눈에 띕니다.
그곳엔 인부 1명이 일합니다. 핸들은 고장나지 않아서 비상철로로 방향을 돌리면 1명은 희생되나, 5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옳을까요?
사람에 따라 그 가치의 기준에 따라, 답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가진 그 답에 대해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를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지요?
뭐.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확한 답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것도 '정의'를 내세울 수 없을 겁니다.
단 하나, 만약 자신이 희생하여 그것을 멈출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겠지요.
즉, 타인의 생명을 그 의사와 상관없이 공리주의적으로 다루는 것이 '정의'일 순 없고,
오로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그 스스로의 결정으로 그 상황을 막을때, 그나마 '정의'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철학의 필요성'과, '철학적 행동으로서의 희생'입니다.

1. 철학의 필요성.
철학은 실재에 대한 끝없는 비실재적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학이 실제 삶에서 뭐가 필요하냐?' 질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철학적 고민이 없다면, 우리에게 가장 '옳은 것', '정의로움', '인간됨'을 추구하는 것이 사라질지 모릅니다.
위의 예를 들면서. 아주 단순하게 답을 얻으신 분들은 다시 한번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답을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1명의 인부가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실런지요? 5명의 인부 중 한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실런지요?
그리고 당신의 가족 때문에 다른 길로 간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것일까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라도, 철학적 고민은 계속 되어야 하며, 우리의 인생이 가볍지 않도록 철학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철학적 고민이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이 현실의 일들과 맞닿지 않고 동떨어진 것이라면,
그 철학적 고민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시간버림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로서.. 얼마전 개신교의 땅밟기나, 통도사지명문제 등을 보면..
성경의 문자적인 이해만 가지고, 본질을 보지 못하며 자신과 다르면 다 적이란 식의 행동을 보면..
Text에만 머물러 있고(그것도 잘못된..), Context를 보지 못하는 모습이 바로 비실재를 실재로 끌어내지 못하는,
본질은 잊고 (잘못된 자신이 이해한 요상한) Text에만 갇혀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필요하며,
그 철학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심층적 고민으로 비실재와 실재에 맞닿아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2. 철학적 행동으로서의 희생.
철학적 행동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 희생을 요구하는 철학적 행동은 바로 '정의로움'을 뜻합니다.
얼마전 카유게에 올라왔던 동유럽국가의 복지에 관한 동영상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국민은 소득의 60%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국회의원은 거의 해택이 없이 스스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가치'를 보며 일합니다.
그러한 개개인의 철학적 행동으로서의 희생이 바로 바른 국가를 만드는 기초가 됨을 볼 수 있습니다.
마냥 그러한 것들은 부러우면서도,
자신은 철학적 가치를 생각해본적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고, 희생따윈 생각지 않는다면..
영원히 부러워만 하는 '꿈' 안에서만 사는 기계가 될 지 모릅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생각지 않고(철학적 가치) 자신의 이익(행동과 그에 요구되는 희생없이)만 생각한다면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말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침묵하는 양심)은 악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세상은 '꿈을 비는 마음'만으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꿈을 비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삶으로 나타낼 희생은 당연한 것입니다(문익환).
그것이 정의이고, 옳은 것이고, 도덕적인 것이며, 철학적인 것이며, 참 사람됨입니다.


현 정부의 정책은 국민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개인의 이익에만 눈을 돌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몇몇은 그런 정부의 정책에 동의를 하고 있고,
다수는 우습게도 이 정권이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지 않은가요?

정의란 무엇인가? 철학적 고민에 의한 행동에서 나오는 희생입니다.

오늘 하루 삶의 작은 부분도 조금은 '가치적 고민'을 하며 행동하면 어떨까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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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12.21 20:40

옛날하고 좀된 옛날..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더랬죠.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스님은 돼지같이 생겼습니다"하니
무학대사가 "폐하께서는 부처님같이 생겻습니다"라고 하면서,
덧붙이길 "부처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눈에는 돼지가 보입니다"라고 말했더랬죠.
그랬더니.. 이성계가 아주 민망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보여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동물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대로가 아닌,
세상을 세상으로 바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 사람됨'이며, '교육의 목적'이겠죠.

즉, 우리는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인간되기 위해서.. 역사와 철학과 도덕을 배우는 것이죠.

그런데.. 우습게도 요즘은 뭐 이것도 교육에선 사라지진 오래고 그저 소욕덩어리로,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 속에 순응하는 대한민국 국민됨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마음 속에 이미 결정을 내려놓거나, 결론지은 것이 있으면 그것대로 모든 것이 보여지는 것이죠.

이 점에서 '안티 박정희 = 종북 혹은 친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보면...
박정희란 사람을 옹호하고 맘에 품고 있으면, 그렇게 다 보여지게 되어서
자기와 반대되는 이들을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로 놓고 결정짓게 되는 것이지요.
아주 단순 이분법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단순 이분법적인 사고로 이정토인들을 보면..
자기들의 뜻에 반함으로 무조건 반정부, 친북, 빨갱이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 원래 심리적으로 자기 반대부류는 단순하게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로 투영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제가 글을 적고 나면 아마도 그 분들은 이 글을 보면서
반대로 저도 '뭐 눈에 뭐만 보여서 그런다'라고 할겁니다..
그리곤 제가 설명을 하면, 또 결론짓고 알아서 판단하고 딴소릴 하시겠죠.
결국 영원한 반복재생의 연속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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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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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12.19 08:00

넵.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정치를 할 권리정도는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에게 아주 예전에 누가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 정치에 관심있으세요? 정치하고 싶나요?"
그럼 저는 대답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니 당연히 정치에 관심이 있지요.
 그리고 제게 제 길이 없었다면, 정치도 하고 싶네요.
 어쩌면 제 길과 Goal line은 달라도, 과정은 비슷할 수 있으니깐요."
뭐.. 이 비슷하게 대답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와서..
"정치 아무나 하나?"
네. 정치 아무나 합니다.
정치를 어떤 특정한 부류가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먼저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아무나 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자유이긴 하나, 정치를 할 때는 분명한 목적이 필요합니다.
절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하면 안됩니다.
절대! 국가와 국민의 가치를 위해 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만 제대로 되어있다면, 정치 아무나 해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아무나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엉망으로 만든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쓰는 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엉망으로 만든 이들을 추앙하며 자신의 이익과 기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
철새마냥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상황에 따라 이 말 저 말 하는 자..
이런 이들이 절대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가치를 생각하기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 아무나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국민이면 당연해야하는 정치에 대한 관심도 사라지고 있지요. 아니, 사라지게 만들고 있지요.
온통 티비에서는 정치보다, 웃고 떠드는 이야기들만 득실 거리게 만들고 있는 듯 보입니다.

정치 아무나 합니다.
단, 자신을 위해서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겠지요.

가끔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합니다.
타인을 위한 삶은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할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일지 모른다.

토요일 밤..
문득 10여년전즈음 이희호여사께서 제가 있던 부대를 방문해서 제게 갑자스레 질문하셨던 것이 떠올라 끄적거려봤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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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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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10.12 08:00
흠.. 타블로일이 일단 종결을 지으면서
무분별한 '까'는 일단 중단되고, 일방적인 '동정'들이 난무하는 듯도 보이네요.
그래서 타블로에 관한 다른 문제점들(국적이나 표절같은)들도
그저 함께 덮을 만큼의 무모한 '동정'이 일어나는게 안타깝기도 하네요.

예를 들어 스포츠스타의 경우도 그렇죠.
박지성이나, 이승엽 그리고 박찬호선수의 경우도
그저 잘할때는 와와~하다가, 못하면 그저 맹목적 까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들이 우리에게 희망이나, 기쁨을 줬다는 것은 그저 잊은채말이죠.

사실.. 타블로의 문제나 스포츠스타들의 경우 뿐 아니라, 어떤 문제이든..
일명 '냄비근성'이란 것이 난무하는 듯 해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가 참 싫거든요.
그저 어떤 이슈에 반짝 끓었다가 식어지는 것을 뜻하는 '냄비근성'의 문제점은
단순히 그때만 반짝하는 대중적 심리의 문제만은 아닌듯해보입니다.

문제는
1. 어떤 사안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
근거는 없고 어디선가 들었다는 사람만 많아서..
책임지지 않는 말들이 많아서 사안이 부풀려지고 왜곡이 된다는 것.

2. 사안에 대한 객관적 판단보다, 성향적이거나 감정적인 것들이 많다는 점.
어떤 사안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자기성향적으로 아니다, 감정적으로 싫다는 것이 난무한다는 것.

3. 단순한 이분법적인 판단을 하기도 한다는 점.
어떤 사안이든 상황과 함께 사안들이 이뤄진다는 것을 잊은 채,
그저 이렇다, 아님 저렇다라고 이분법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

그밖에 또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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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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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10.11 08:00
요즘. 타블로 문제나, 배추문제에 관한 4대강이야기 등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이 드는게 있었습니다.
제목에서도 아시겠지만 '인터넷의 폐해'가 참 많다는 걸 느낍니다.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폐해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만 있다고 말하는건 아니니 이해해주세요.
물론 인터넷이나 디지털시대에 따라 좋아진 것들도 너무나 많이 있는건 당연합니다.
그건 우리 모두다 알고 있으니 말할 필요가 없겠죠?




1. 잘못된 근거의 확대 및 재생산.
이정토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때론 큰 논란이 있는 이슈들에서 다른의견을 드시는 분들의 공통점을 보면,
제대로 정확지 않은 근거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고 그 근거를 바탕으로 글이나 댓글을 적는 다는 점이지요.
이러한 점들은 인터넷이나, 디지털시대를 맞이하여 장점으로 부각되는 정보의 전달성을 이용한 폐해라고 생각됩니다.
예를들어 과거 정보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때에는 정부라던지,
특정부류가 국민을 속이거나 진실을 감출 수 있는 길이 많았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고,
1945년부터 한국전쟁전까지 있었던 많은 항쟁들이 그러했고, 전쟁중의 학살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전달의 발달이 이러한 진실을 덮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지만,
일면으로는 이것을 이용하는 것들이 감지되고 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아마 이런 '잘못된 근거'를 바탕하여 과거의 진실덮기가 아닌, 진실왜곡이 더욱 일어날듯합니다.
그래서 더이상 인터넷공간이 쉽게 정보를 알수있는 공간이 아닌,
잘못된 근거의 확대 및 재생산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나찌의 괴벨스가 라디오를 보급하고,
잘못된 정보를 이용해 정치에 이용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고의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현 문제 즉, 지역갈등이나 반공의 문제를 대체해서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될 수도 있을듯 합니다.


2. 행동하는 양심의 결여.
과거 아날로그시대를 생각해봅시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힘겹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그만큼 시간과 댓가는 있었지만, '행동'하는 움직임은 격렬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힘겨운 노력들이 불필요한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 그대로 '키보드 워리어'들만 득실한 시대가 된 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행동하여 살기보다, 지식적 옳음만 주장하고 온라인에서만 강한 사람들이 되진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또한, 앞서 1번의 문제들과 뒤섞여서 이제는 본질에 대해 과거 아날로그시대처럼 노력하고 고민하기보다,
서로 불필요한 다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싸움의 뒤에서 웃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3. 이기본위(利己本位)
흠.. 아날로그시대때는 정보에 대해 알기위해서는 '관계적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로 오면서 핸드폰이나, MP3, 혹은 개인컴퓨터들에 의해 개인화되면서
자연스레 '관계적 노력'보다 '이기본위(利己本位)'가 만연함을 봅니다.
이 부분을 예를 들면.. 제가 목회자라서 교회이야기를 살짝 할까 합니다.
이명박이란 인물이 장로입니다. 그리고 시대는 개신교를 개독교로 말하기까지 싫어합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개독교의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서울시장시절에 서울시를 봉헌한 사람을 말이죠.
이상하지 않나요?
정보의 파급력에 의해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단체는 싫어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단체나 인물이 세력을 잡거나 권력을 휘두르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 말이죠.
과거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더 잘 알고 쉽게 알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변하지 않는다는 거죠.
저는 이것을 '이기본위(利己本位)'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동체적으로 잘못된 것을 더욱 정확히 알수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개인화된 사회는 사회적 절대악보다, 개인의 이기적 본위를 우선시 함으로서 그 절대악은 여전히 존재케 된다는 것이죠.
즉, 인터넷을 통해 관계적이지 않고 개인화된 사회는
정보의 발달로 잘못된 것을 바르게 인지하더라도, 사회적 협력이 아닌 결여가 되고 개인적 이익이 우선시 됨으로
결국은 달라지는것이 없게 된다는 것이죠.



때로는.. 정보의 습득보다, 정보의 본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고,
때로는.. 손가락만 움직이기보다,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을것이고,
때로는.. 혼자만의 자위보다, 관계적인 모습이 지향되어야
좀더 사람사는 세상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더더욱 이런 폐해들이 늘어갈 것을 생각하니 참..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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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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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객인

    맞습니다.
    인터넷에 빠른 정보유통으로 인하여, 너무 빠르게 격화뇌동하고 있습니다. 그냥 아무말이나 감정적으로 해버리고, 너무나 즉흥적이 됩니다. 사람과 대면하고 말하는 것의신중함이 없어지고, 믹명이라고 그냥 자신의 동물적인 이기적인 감정의 흔들림대로 마구 쏴대는 글들...혼돈 그자체입니다...

    2016.11.24 22:07 [ ADDR : EDIT/ DEL : REPLY ]

사회이슈정치2010.09.11 08:00

우리의 소원은 '통일'맞나요?
언젠가 '통일'이 되긴 되야 되잖아요.

북한과 남한. 나름대로 통일에 대한 구상이나 계획들이 있잖아요?

전쟁을 통한 '통일'이라던지,
정권몰락에 따른 흡수'통일'이라던지,

어떤 형태로든 '통일'에 대해 생각을 하자면,
'통일에 대한 자세(마음가짐)'에 따라 통일의 '방법'이나, '시기', 그리고 통일자체의 '긍부정'도 달라질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 있어서
현재처럼 북측을 확실한 조사도 없이 천안함사건의 원인으로 몰아가고,
반공을 기치로 삼는 자세를 가진 이들은 과연 통일을 바라는 것일까? 궁금합니다.
통일보다 통일을 허울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되어집니다.

왜 제가 이런 생각과 궁금점을 가지느냐 하면, 현 정부의 '통일에 대한 자세(마음가짐)' 때문입니다.

'통일'에 대한 토론을 위한 제 개인적인 사견은 말이죠.
지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대한민국으로 남북이 나뉘어져 있지만,
통일에 대한 자세(마음가짐)로는 이 두 나라에 국한되기 보다, 한민족 한형제의 자세가 되는게 맞지 않은가 싶습니다.
한 예로,,
축구선수 정대세군의 인터뷰에서 "한국도, 북한도 아닌 해방이전의 조선이 자신의 국적" 비슷한 말을 들은듯한데요.
이처럼 우리가 국가는 대한민국이지만, 통일에 대한 마음가짐만큼은 '하나의 민족'에 머물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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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9.10 17:26
우리가 자주쓰는 말 중에 하나이죠.

간혹 사람들을 보면 정말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TV를 보아도 어느 곳 하나 제대로된 정신이라곤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정답'이라는 명제는 참 잘 압니다.
그래서.. 다들 열심히 나름대로 자신의 답을 말하고 주장하며 살긴 합니다.
그 답대로 영화를 만들기도하고, 음악을 만들기도하고, 책을 쓰기도 하고, TV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긴 온통 자기 나름의 '답'밖에 없고, 공동체가 가져야 할 '정신'은 없습니다.

'정신없다'는 말의 뜻이 사전에 있는가 싶어 찾아보니................. 있더군요.
1. 무엇에 놀라거나 경황이 없어 앞뒤를 생각하거나 사리를 분별할 여유가 없다.
2. 몹시 바쁘다.                                                                                            라고 되어 있네요.

딱 이 말 그대로 우리가 사는 듯합니다.
온통 자기들에게 가장 맞는 답만 있고, 정신없는 삶을 살아가는 듯해요.
사회에서 답만 요구해서 그런지, 사회에서 빠른 것만 원해서 그런지, 정신이 없네요.

정신도 없이 바쁘게.. 내 생활에 쫓기고, 내 형편에 쫓기고 하다보니..
이 나라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던 정신도 이젠 없는 듯 합니다.

문익환 목사가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특별한 조사 없이 26명의 희생된 열사들의 이름을 외쳐부르던 그 '정신',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 속의 그 '정신',
정약용 선생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목민심서의 그 '정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리라'는 우리네조상들이 홍익인간의 그 '정신'.

어디서 다시금 이 땅 고유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 아름다운 그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시정잡배보다 못한 이기적 소욕들만 넘쳐나고 사람들은 그것에 묻혀 정신없습니다.
대통령이란 인간은 매일 아침 뉴스에 나와 '정신'없이 세치 혀로만 날름거립니다.
아주 떳떳하게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 대부분은 '정신'없이 밥그릇싸움만 합니다.
노인들도, 어른들도, 아이들도 온통 '정신'없이
좌우, 뻘것코퍼렇코, 배려없는무한경쟁으로 정신없이 빠져듭니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다시금 그 역사 속의 그 정신을 따라가보면 어떨까요..

영화를 만드는 이는 그 안에 그 '정신'을 넣고,
노래를 만드는 이는 그 안에 그 '정신'을 담고,
가르치는 이는 그 가르침 안에 그 '정신'을 담고,
돈 버는 이는 그 돈 안에 그 '정신'을 담고,
아이들에게 그 숭고한 '정신'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어떨까요?
우리 삶의 자리 모든 순간순간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그 '정신'을 나누면 어떨까요?

'정신없다' 말고, '정신차리는' 우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전에 보니 옛 속담에,,
"정신없는 노친네 죽은 딸네 집에 간다."이 있더라구요..
정말 '정신없이' 살다보면, 우리나라도 우리민족도 그리될지 몰라요~



첨).   혹  문익환 목사의 조사를 듣고 싶으신 분 링크 올려드립니다(플레이누르면 노래중간에 나옵니다).
        단, '정신없는' 분의 혐오사진 함께 비교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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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8.19 08:30
8.15 사면, 통일세, 친기업주의, 4대강살리기, 민간인사찰 등으로
볼 수 있는 현정부와 이명박, 그리고 대기업들(삼성 등)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도덕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실 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따윈 개나 주는 행동을 많이들 했죠.
'서민서민' 말은 하지만 사실은 오뎅이나 사먹고 사진이나 찍고,
부자들 감세하고 실질적 서민예산은 깍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후퇴다.', '민주주의의 위기다.'라고 우린 말들 합니다.
장관후보자와 정부관계자들의 투기와 위장전입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나라..
우리는 그들을 까면서 오늘의 지친 하루를 보냅니다.

맞습니다. 그들이 도덕적이지도 않고, 그 도덕적 책무를 다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들의 행위를 싫어하고, 까고, 욕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도덕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요?
흔히들 공인과 비공인은 차이가 있노라고 말하고, 정치인과 국민은 그 책무에 대한 책임성 또한 달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민주民主'란 것이 그런 것인가요?
'민주民主'란 것이 그렇게 공인과 비공인, 정치인과 국민을 구분짓는 것인가 싶네요.
네. 물론 앞장서서 인도하는 자, 공인이라는 사람, 대표란 자, 좀더 삶을 편히 영위하는 자에게는 그 만큼의 더 큰 책임감이 요구되긴 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민주民主' 즉, '국민이 주인'이라는 책임감은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이러한 책임감이 모두에게 있고, 대표를 뽑을때 그 대표 또한 그에 맞는 책무를 다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지 않고, '민주民主' 즉, '국민이 주인'인데 그 책임감이나 도덕적 책무는 국민 각자가 따라 주지 않고, 모른척한다면..
정치인이나 공인이나, 다른이들보다 좀더 편히 삶을 영위하는 자 또한 당연히 그만큼 도덕적 책무나 책임성이 결여되게 되는 것이죠.

"경제를 위해서는 도덕성따윈 약간 신경안써도 되지 않나?"
"내 삶을 살아가기도 바쁜데 정치따위에 골머리 썩기 싫다."
"정치 이야기는 이정토로.."
"철학 따위가 뭐가 필요한데? 살아가기도 바쁘고 돈벌기도 바쁜데.."
"돈이 있으면 뭐단 할 수 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이명박과 정치인들, 기업인들에게는 도덕적 책무를 요구하면서 욕하지만,
사실 우리는 '도덕적 책무'를 삶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지 지키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가정을 이루고, 이제 아이를 가지려고 생각하는 한 명으로서 이 미래는 누굴 탓하고 비관하는 것에서 희망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정말 힘이 들더라도 지키고 이뤄나가야 할 '도덕적 책무'와 '국민이 주인됨의 책임성'을 가지는 것에서
희망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민주民主'에 대한 책임성, 도덕적 책무를 다하지 못함으로 딱 우리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졌습니다.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의 위기임을 인식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오늘날의 이명박, 현정부, 대기업들의 행위가
바로 우리가 '도덕적 책무'에 대한 회피와 '국민이 주인됨으로서의 책임성'에 대한 부정으로 만들어낸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농축된 상(像)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도덕적 책무와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고민 즉, 철학적 사고가 정말 필요합니다.

행여 과거 정부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도록 교육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이 살아가야할, 그리고 과거 우리를 있게한 조상들이 지켜온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우리의 책임과 책무 그리고 사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누굴 탓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변화는 그것이 무엇으로부터인지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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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8.17 13:24

어제는 광복절이었습니다.
얼마전 저희교회 원로장로님과 인터뷰한적이 있는데..
광복이 되던 날.. 광복이 자주적이지 못했고 타의적이었지만..
광복이 된 것이 너무 기뻐서 주위에 일본인들이 도망가도 혼쭐 낼 정신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광복이 너무 기뻐서 이리저리 태극기를 찾고, 그리고, 만세를 목이 쉴 정도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저 조선국민에게서 광복은 한 개인의 자유요, 민족의 자유요, 역사의 자유였습니다.



하지만, 조선국민과는 별개로, 국제 정서와 정치인들에게 광복은 그 의미가 달랐습니다.
물론 김구선생을 비롯한 독립일선에서 온전한 한나라로서의 자주독립을 바랬던 분들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일본이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에 눈독이 갔던 이들에게 광복은..
조선국민의 그 기쁨과는 상이한 다른 것이었습니다.



타의에 의해 광복이 되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남북으로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조선은 이익 쟁탈의 장소가 되어버렸죠.
김구선생이 돌아가시고, 남북은 각자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 정부의 수립이 이념이데올로기로 포장되어 국민수호를 선전하지만, 철저히 기득권획득의 차원에서 이뤄진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남쪽, 북쪽 어느 곳의 일방적인 탓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6월 25일 시작된 한국에서의 전쟁 이전부터,
이미 남북은 수십차례 교전을 했고 그 과정에서 10만가량의 죽음이 있었으니 말이죠..
어찌 되었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전쟁은 해방이나 통일의 목적이 아닌
철저히 기득권을 획득한 이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자기 정당화 이상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고통을 받은 것은 딱한 국민들 뿐이었지요.
과거 조선이란 나라가 일본에게 삼키어져 갔을때처럼.. 단순히 기득권 획득과 유지, 정당화과정이고, 그 피해는 국민들이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전쟁에서 직접 겪었던 그 고통을 필요할때마다 강조하고 끄집어내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한 것이 현 정부의 '정통성'입니다.
현 정부가 그리도 바라던 건국 아버지를 주장하고 거기서 정통성을 이으려 한 것도..
생각이 없는 국민을 직접적으로 우롱한 것 입니다.
직접적으로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는 철저한 기득권 획득 유지 세력'이란 것을 고백한 것이니 말이죠.
거기에 지난 10년의 세월을 '잃어버린'이란 단어를 쓰니 더욱 국민의 뜻따윈 상관이 없었단 걸 말하는 것이죠.



그렇게 봤을 때,
현 정부에게 있어 광복은 조선 전국민이 그리도 그리던 자유의 순간보다,
'아주 단순히 빈자리에 어떻게 하면 깃발을 꼽고 기득권 획득을 할 수 있느냐?'는 승냥이떼의 기회에 대한 순간일 뿐이지요.

그리고 전쟁이 남북 정부의 거저 얻은 기득권에 대한 자기 정당성 강요의 순간일때,
'통일'이란 것은 말 그대로 남북 정부가 이제까지 얻었던 기득권 해체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럼에 있어서..
어제 이명박이 광복절 축사에서 언급한 '통일세'는 정말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길 가장 원하지 않는 집단이 말하는 '통일에 대한 세금'.. 얼마나 아이러니 합니까?
천안함이니, 북한에 대한 일련의 조치들을 말하면서 얼마나 국민이 생각이 없었으면
대놓고 '통일세'를 언급하면서 국민을 우롱할 수 있는지..
그만큼 저들에게 우리는 우스운 존재, 피 빨아먹어 자신들을 유지하는 단순한 용품같은 존재일 뿐이란걸 느꼈습니다.



현 정부에 있어서 '광복과 통일'은?
그들의 기득권에 대한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풀뿌리같은 대한국민, 북쪽동포에게 '광복'은 타의에 의한 순수한 자유의 순간이자, 타의에 의한 또다른 압제의 시작이었습니다.
풀뿌리같은 대한국민, 북쪽동포에게 '통일'이란.. 그 압제에 대한 마침표이자, 진정한 '광복'의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이 없이, 판단이 없이, 비판이 없이 하는  맹목적 순응은..
아주 단순한 기득권세력의 유지 정당성에 대한 순응밖에 안됩니다.
현정부가 말하는 광복과 통일에 대해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그럴듯하게 말한 '포장된 광복', '포장된 통일' 안에 있는 저들의 야욕을 말이죠.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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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8.11 08:30
정부의 일방적 행동들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요?
이러한 행동들이 과연 정부의 ‘철학적 판단’에 기인되어 있을까요?


박정희의 '한국식 민주주의'를 아시나요?
일본의 수탈과 전쟁으로 엉망이 된 우리나라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북한의 위협으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민주주의는 말이 많고 길게 되어져야 성숙한데.. 우리나라에게는 그러한 긴 시간이 지금 현실에서는 어려우니
민주적인 소통은 잠시 내려놓고, 잠시만 '경제를 위해', '국가안보를 위해' 내가 '나쁜놈'이 되어 집권하고..
경제와 안보가 안정화되면.. 과감히 내려놓겠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한국식 민주주의'지요.
이 '한국식 민주주의'는 말만 뻔지르한 '독재'란 단어의 허울이죠.
이 '한국식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극단적 권위주의가 자리잡게 되지요.




과거 일본의 수탈과정에서 생긴 '왜곡된 기업적 마인드'에 대해 아시나요?
일본인들이 수탈한 기업에 사장이 되어, 과거 계급제와 비슷하게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가졌던 일제시대.
1920년대 이르러 사회주의운동과 노조운동이 조선에 거세게 분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죠.
친일해야 먹고 살수 있었기에, 당시 조선인 중 큰 공장을 가진 이들 또한 이 왜곡된 구조적 마인드로 경영을 했죠.
그건 일본에 나라가 빼앗긴 이유도 있지만, 아직은 남아있던 유교적 관습도 있었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해방이 되었고, 이데올로기의 요동 속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통에 돈을 많이 벌게된 기업들 또한 '전쟁'이라는 사회적 상황 속에
하루 먹고 살려 하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왜곡된 종속적인 기업마인드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이후 정치권력과의 야합을 통해 노동은 더 착취되어가고 전태일열사 사건까지.. 계속되어 갑니다.

이 '왜곡된 기업적 마인드'를 통해 우리나라는 왜곡적이고 종속적인 정당성이 자리잡게 되지요.




지난 10여년.
이 정치적 권위주의와, 종속적 정당성은 위협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족히 100여년 가량 졸부와 아첨꾼에 의해 권력과 힘과 돈이 모아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타난 지금 정권은 다시금 10여년의 잃어버린 세월을 찾기 위해

겉으로 '경제를 위해'라는 기치를 내걸고 극단적인 정치적 권위주의를 세우고 있고,
돈이면 다되며, 권력이 힘이란 식의 종속적 정당성을 '친기업적 마인드'라는 기치로 기업에게 다시금 주고 있지요.




마치 자연스레 정치적 권위주의나 종속적 정당성이..
역사적으로 대한국민의 ‘철학적 사고에 기인한 순응’이란 식으로 교육시키려 하거나,
마치 정치적 권위주의와 종속적 정당성을 ‘정치철학’ 혹은 ‘기업철학’으로 자연스레 인식시키려 하는 것에 순응하지 마십시오.



국민 즉 백성은 수천년이 지나도 비슷합니다.
아주 단순한 철학 하지만 가장 중요한 철학을 가지고 있죠.
‘평화平和’란 단어가 모든 이의 입에 골고루 밥을 먹이는 의미이듯.. 백성 즉 국민은 삶이 풍족하면 행복합니다.
그것은 과거 왕과 양반들의 유교적 도리였고, 현실의 정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 그 도리와 이유 즉 철학은 온데 간데 없고, 단순한 군림만이 있으니.. 큰 문제입니다.

혹 행여.. 역사적으로 도전되는 국가경영의 철학이 없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겐 ‘홍익인간’이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훌륭한 국가경영의 철학이 있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건국 60주년이니 어쩌니 하며 수천년의 역사를 뚝 잘라먹고,
앞서 제가 말한 아첨꾼들과 졸부들의 역사만을 기리고 있으니 우스울 밖에요.
(어떤 면으론 정직하단 생각도 드네요..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올바르게 가지고 있으니.. ㅎ)




요약하자면,
정부의 일방정 행동들은 ‘철학적 부재’로 인한 것이다.
국가경영철학을 말하면서 일방적인 권위주의나, 종속적 정당성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철학’이 아닌 근현대사의 가장 더러운 권력욕을 포장하여 재생산하는 것밖에 안된다.
조상들이 알려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 백성들이 골고루 배부를수 있는
국가경영의 철학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기대해본다.




글을 정리하며..
현 정부의 국가운영 철학에 대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로 제 개인적 생각을 밝힙니다.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목민심서를 牧民心書라고 한 이유는..
‘牧民 백성을 다스림’할 마음은 있으나, 책 내용 그대로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心書’라 이름했죠.
유배 상황에서 목민을 실천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애달파하며..
‘청렴을 기본으로 삼고,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의 자세는 결국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는 다산의 맘을 표현한거죠.

목민심서 - ‘백성을 다스림을 마음에 새기다.’ ..

정치인은 정치政治 바르게 다스림을 위해서는 백성을 다스림을 마음에 새기는 ‘철학적 사고’가 우선 될 때,
실천이 이루어져서 진정 정치政治하게 됨을 말합니다.

그럼에 있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설쳐야 뭔가 ‘했다’ 생각하는..
‘친서민’이라고 외치며 오뎅이나 드시며 서민인척 행동만 하시는 분..
제발 기왓집에 앉아서 ‘생각’ 좀 하시길..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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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8.10 08:30
저번 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질문한게 있습니다.
"여러분, 국민의 4대 의무가 뭐죠?"
그리곤 제가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납세의 의무.." 까지 말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 의무는 뭘까?"
아이들은 답이 없었어요.......
전교에서 1,2등을 하는 아이도 고개를 까우뚱 하더군요..


저는 4대의무를 중1때 배웠는거 같은데... 요즘은 언제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중고등학생들인데 아무도 모른다는 건,, 그것도 공부 잘하는 녀석들인데 말이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얘네는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우는 걸까..?"
이 생각이 나면서, 솔직히 두려운 맘도 들더군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번에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더군요.
아이들 설교를 하면서 저는 왠만하면 미국같은 나라나 사람의 예는 안듭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역사 혹은 제3세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예를 듭니다.
그럴때마다.. 아이들은 우리나라 역사도 모르더군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건 아는데,
그것이 집현전 학사들과 같이 인지.. 세종대왕과 그의 공주, 왕자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더군요.
'한글'을 만들게 된 계기도 모르더군요. 그리고 한글이 만들어졌음에도 왜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나도 모르구요.
근대사에서 안중근이 어느 역에서 히로부미를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도 모르더군요.
동학혁명이 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일본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점령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더군요.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우리나라가 개방되게 될때의 세계정세도 모르더군요.
현대사에 오면 더 문제가 일어나더군요.
전태일이 왜 죽었는지, 당시 사회악이 무엇이었는지, 왜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더군요.


뭘 배운 걸까요?
사실 제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답'은 잘 말합니다.
아주 기계적으로 단답을 딱 말하죠.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라고 물으면 단 한명도 대답을 못하더군요.


역사 뿐 아니라,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단순히 ‘한 단어’로 정의 될 수 있는 걸까요?
과연 그렇게 단순한 것일까요?
단순히 벌어진 획일적으로 이해될 사건들이고, 단순한 의무이며, 방법일까요?
현재의 교육이 과연 달을 바라보게 하는 것인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배우고 있는건 아닌지 궁금하네요.


문득 단순한 ‘사실’하나만으로, ‘주장’하나만으로
이러니 이렇다는 식의 단순히 사실 나열만 하면서
사건 안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삶의 자리 따윈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정부가 말한대로 배운대로 믿어란 식의 단순한 투정부리는 분들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요?


논리적이라고 본인은 생각하겠지만.. 좋아요 한번 이성적으로 판단해볼까요?
이성과 논리의 시작이었던 계몽주의를 이끈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가 있습니다.
사건의 단순한 나열식으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사건 안의 정황을 생각지 않는게.. 과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걸까요?
사실 논리란것, 이성적이란것이 좋지만.. 인간의 삶에는 그런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과 논리로 사랑이나 감정을 다 말할수없는 것처럼..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고, 이성과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Fact를 이해하기 보다, 자신이 바라는 Fact만을 바라보려하는 편협적인 행동일 뿐이지요..
데카르트의 명제와, 계몽주의와 이성과 논리를 이끈 것은
다른게 아닌 "철학적 사고"에서 시작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논지가 다른 곳으로 살짝 흐르는 군요.
다시 돌아와서, 정말 이 시대의 교육이 우려스럽습니다.
단순한 사건 나열식의 단답만을 요구하는 교육은 미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적 답은 절대 철학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르겠어요. 그게 정부가 원하는 것인지 모르죠.
생각지 않고, 기계적 나열만으로 정부가 계획하는데로 따르길 원하는 건지도요..
그래서 그렇게도 정부를 사랑하고 정부를 맹목적으로 믿길 원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건지도요..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바쁜 시간중에도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대화하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낼 유일한 방법일지 모릅니다.
이성과 논리의 기둥 밑의 바탕은 철학적 사고임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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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8.02 08:00

요즘. 사회풍토가 말이 아닌걸 몸소 느낍니다.
며칠전 파지 주우시던 할아버지께서 파지정리때문에 웅크리고 앉아있는데,
외제차를 타고가던 젊은이가 뭐가 그리도 바쁜지 크락션을 계속 누르면서
결국 창문을 열고 할아버지에게 욕을 하고 가는 걸 보았습니다.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역사의식?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각? 장애우들과 어르신들을 향한 복지? 민주화?
저는 "철학"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것들도 필요하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맘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 또한 꼭 필요한 것일겁니다.

왜 철학이 이 나라 대한민국에 필요하냐고 생각하냐구요?

우선 '철학'이라는 정의부터 가볍게 기준잡고 그 물음에 답을 하겠습니다.
철학.. 뭐 사전에는 고리타분하게 여러 어려운 말로 정의를 내려놓고, 저역시 철학공부할때 머리가 빠지는줄 알았지만 ^^;
철학을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 이 세상에 있으면서 자신의 본질과 세상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즉 본질에 대한 의문이나 고민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이런 철학적 바탕 위에 역사 의식도, 복지도, 민주화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맘과, 돈과 능력이 올려질때
정말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 '대한大韓'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역사','과학','경제' 등의 카테고리가 세분화된 것은 계몽주의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철학과 신학을 가지고 나머지 지금 세분화된 것들을 바라보았지요.
계몽주의 이후 세분화된 카테고리들이 이성을 통해 발전을 하면서,
과거 수천년의 역사에서 아주 느리게 문명이 발전이 되었던 것이 근 2-300년안에 수백배의 발전을 이루었죠.
그것은 지금 현실의 문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주 좋지요.
하지만 이렇게 한 밤자고 나면 몰라보게 발전되는 시대 속에 잃어버린 것이 바로 우리 '본질'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명이 발전될 수록 '편하다는 것'과 '생각하기 귀찮음'에 너무 깊숙히 빠져드는 것같습니다.
물론 '생각'하고, '논리'를 찾는 이들도 많이 있지요.
하지만, 철학이란 바탕이 없는 '논리적', '과학적'이란 말이 얼마나 무분별한지 스스로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뉴라이트, 경제제일주의자들, 배금주의자들.. 이 모두가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이 아니라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이 없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나, 논리 등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삶이나 국가따위는 생각지 않은거죠..

얼마전 원정출산, 군대 등을 토론한 적이 있었죠.
그때 제가 이상한 건지 몰라도..
‘돈만 있다면 원정출산 하면 좋다.’, ‘아이를 위해서 여력이 있다면 군대 보내고 싶지 않다.’ 등의 의견이 많이 있더군요.
뭐 저도 그런 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국가가 우리로 하여금 부당하게 하는 것에 대해 욕을 하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 개인으로서 국민이 국가에 해야 하는 것 또한 여력이 있다면 빠지려고 한다는 거죠.
나라 팔아먹는 이 정부와 한나라 수구들과 우리가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뭐.. 혹 누군가는 '그들은 관리하고 다스리는 공적인 자리에 있으니 더 나쁘다'라고 하겠지만,
그런 그들을 정치인으로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은
나라를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생각하는 우리이지 않는가요..?
'올드보이'란 영화를 보니 그리 말하더군요.
모래나 바위나 물에 가라앉기는 똑같다라구요.
항상 바위들에 눈이 향해서 그들만 흉보고 있지만, 자기 자신도 똑같이 가라앉고 있진 않은가 싶습니다.

“뭐 국가가 국민을 우롱하고, 돈있고 빽 있는 것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니.. 국가에 우리가 왜 해야되나?” 이렇게 질문하실 분들도 있으실거고,
또 “이미 나라가 썩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다. 군대가면 우리만 손해다. 없는 것들만 가는거다” 이렇게 말하실 분들도 계시겠지요.

절대.. 누가 먼저 되어야 되냐는 논란 속에서는 뭐도 되지 않음을 기억하세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거 좋은데..
"무얼 위해 '논리적이고, 무얼 위해 '과학적'인거냐?"라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하실 건지요?

친일하는 인간들 싫어하고, 미국에 굽실대는 인간들 미워하고, 가진 것들이 더 가지려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욕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무얼 위해 '논리적이고, 무얼 위해 '과학적'인거냐?" 물으면,
'나를 위해', '내 아이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라고 대답하시지 않습니까?
친일하는 인간들도 자기 가족을 위해 했고,
미국에 굽실대는 인간들도 자기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했고,
가진 것들이 더 가지려하는 인간들도 자기 아이를 위해 했습니다.
동일하지 않는가요?

'철학'이 있다면, 단 한번이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이 사회와 자신에 대해 정말 고민해보았다면.. 그리고 행동했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교육이 문제야~ 라고 하면서도, 내 아이가 남들보다 뒤쳐지는게 싫어서 그냥 보내고,
정치가 문제야~ 라고 하면서도, 내가 놀러가고 먹으러 가고 보고싶은 사람만나기 바쁘니..
즉, 철학이 없으니.. 서로 자신을 위한 논리만 내세우니 변하지 않은거라 생각이 됩니다.

정부가요. 바보같아 보이죠?
멍청하게 미국에게 빌붙어 있는거 같아보이죠? 4대강하는 것같아보이죠?
저들은 매우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이뤄가고 있습니다. 단, 몇몇의 이익을 위해서요.
철학적 바탕이 없으니 말이죠..

 

 

 

글이 길어지는 군요.
요약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건 '철학'이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 많지만 다 자기 것만 바라니 사분오열된다.
    자신보다 한 인간으로의 고민을 하는 철학적 사고의 바탕이 있다면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국가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나라에 변절자가 많은 이유는 역사의식이나, 비논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철학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적고보니 뻘글같기도 합니다.
요즘 이정토나 뽐뿌의 여타게시판의 논란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사건은 다르나 본질은 엇비슷해보입니다.
'사실','논리','합리'를 따지면 서로 자신의 주장을 타당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논란이 생기고.. 해결보단 몰아가기식이 되는 듯합니다.
'나'라는 이기적인 바탕 위의 '사실','논리','합리'보다, '우리'라는 바탕위에 '사실','논리','합리'를 생각한다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고민해야 되겠죠.. 생각한다고 돈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을지 모릅니다.

'사람사는 세상.", "행동하는 양심."
고인이 되신 두 대통령이 말한 말씀이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다.. 철학적 고민 속에 자신의 안위보다 더 소중한 것을 알았고, 이루려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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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6.28 12:44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란 딱 이분법적일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이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이가 보기엔 그 사람이 '진보'적일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보수'여서 '다구리?'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지 않을까 싶네요.
'보수', '진보'의 이분법적인 해석보다,
아주 단순하게 '근거가 없거나', '비논리적이거나', '다른 의견이 아닌' 틀린 것이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자신은 그런 걸 모르고,
"내가 세상이 말하는(조중동, MB적) '보수'이기 때문에 까이는 건가?"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닐런지..
그건 아주 편협적이고도, 방어기제적인 생각이 아닐런지 싶네요..
보통 스스로 계속 문제가 되고 까인다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지,
이정토가 좌편향적이니 진보적이니 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 자신을 보지 못하고 남탓을 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까놓고 얘기해서 '보수', '진보'에 대한 대한민국적 의미를 아시는가 반문하고 싶네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좋지 않지만.. 약간의 '보수', '진보'에 대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진보와 보수는 이 한반도 역사에서 계속 되풀이 되어 왔었습니다.
저는 '진보'와 '보수'의 의미를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입고출신(入古出新), 법고창신(法古創新))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조선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국의 권력을 가지자 오랑캐 나라인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되지요.
그것은 형님의 나라?였던 명나라를 배반할 수 없고,
오랑캐와 형제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아주 고립된 생각으로 부터 였습니다.
이후 200여년이 지나, 정조시대. 새로운 문물과 사상들이 넘실대는 시대.
정조조차 새로운 것에 가까웠으나, 기득권이었던 노론벽파의 힘이 넘실대던 시대.
그때 추사 김정희가 태어났고, 살아갔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연경을 오가며 옹방강 등 고증학의 원로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서예와 금석학 등 여러 학문 분야를
광범위하게 연구하여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경세치용의 실학 학문체계를 펼쳤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보수'에 대한 개념을 김정희 선생이 '입고출신(入古出新)'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수'에 대한 국어적 의미가
'1. 보전하여 지킴. 2.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지만,
'무엇을 보전하려하고, 어떤 새로운 것을 반대하며 전통을 유지하느냐?' 에 대한 답을
'입고출신(入古出新)'에서 찾을수있다 생각합니다.
만약 '무엇을 보전할지, 어떤 새로운 것을 반대하며 전통을 유지할지'에 대한 질문이 없이
무조건 기존 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보수가 아닌,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수구적 생각이요, 권력유지적 마인드이기 때문입니다.
'입고출신(入古出新)' 쉬운 한자이니 뜻은 다 아실 겁니다. "옛 것으로 들어가야 새 것이 나온다"란 의미죠.
그렇습니다. 역사를 거부하고 무조건적인 새로운 것을 받아드리는 것은 역사와 민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것으로 들어가서', 민족적인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바로 '무엇을 보전하려하고, 어떤 새로운 것을 반대하며 전통을 유지하느냐?'는 보수의 국어적 의미라고 볼 수 있지요.
이 나라의 자칭 '보수'에게 이런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고,
없다면 그들은 단순한 '분단유지세력' 혹은 '권력유지세력'일 뿐입니다.
만약 자신이 '보수'라서 '다구리?'당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보수'에 대한 국어적 의미에서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겁니다.




또한 저는 대한민국의 '진보'에 대한 개념을  '법고창신(法古創新)'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보'에 대한 국어적 의미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라 할 때,
'변화와 발전을 말할때 과연 역사의 일정한 법칙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법고창신(法古創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만약 '역사의 일정한 법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없이 무조건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인류를 위한 혹은 민족을 위한 발전보다, 인류와 민족에 대한 단순한 파괴가 될 것입니다.
(과거 역사적으로 공산이데올로기, 계몽주의, 과학만능화, 근래의 신자유주의까지의 폐해가 그 동일선상입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란 의미죠.
그렇습니다. 변화와 발전이란 인간의 역사적 본질을 무시하면,
불가능한 것이며 이 또한 역사와 민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것의 근본본질을 토대로', 인간과 민족의 '새로운 것을 변화,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변화와 발전을 말할때 과연 역사의 일정한 법칙은 무엇이냐?'는 진보의 국어적 의미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자칭 '진보'에게 이런 것이 없다면, 단순히 시대기회주의적인 아첨꾼이요 몽상가일 뿐일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더 민족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의 토대를 가지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자, 보세요.
흔히들 하는 말로, 극진보와 극보수는 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진보'와 '보수'의 국어적 의미를 원론적으로 고민하면 동일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데도 이분법적으로 "너는 진보라서 그렇다.", "나는 보수라서 다구리당한다"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보수라서 다구리?당한다."는 말은 아주 자기중심적이고 편향적이며
초딩적인 자신에 대한 반성없는 핑계일 뿐입니다.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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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정치2010.06.17 16:09
오늘은 요즘 이슈가 되는 월드컵에 대해 몇자 적을까 합니다.
며칠전 새벽잠을 안자고 보았던 브라질-북한의 경기를 보았습니다.
경기 내내.. 작은 공으로 하는 스포츠가 제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순딩이들의 축구. 열정. 마음. 대표. 등 여러 단어들이 머릿솟을 어지럽혔습니다.
천안함이든 6.25든 간에..
나와 같은 핏줄이요 동포란 것 하나로 가슴깊이 응원을 했더랬죠.
'GO'라는 일본영화가 일본의 조선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는데,
이번 북한과 그 중 정대세 군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그런 것들을 되새김하게 되었습니다.



1. 정대세.
정대세 군의 국적은 한국이었죠.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은 20세가 되면, 3가지 국적 중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 재일 한국인, 분단되기 전의 조선인.
이들은 일본에서 엄청난 차별을 당하며 삽니다.
정대세 군은 북한 대표선수가 되었죠.
원래 의성출신으로 국적이 한국이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조국은 한겨레이지, 분단된 어느 쪽도 아니였습니다.

정대세 군을 통해 남쪽의 이들도, 북쪽의 이들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본질을 보았으면 합니다.
피를 튀기며 총부리를 겨눠서 전쟁의 직접적 아픔을 통해 서로가 원수처럼 느껴지나,
그것은 우리 민중들이 원했던 것도 아니였으며, 우리 민중들이 그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였습니다.

전쟁은 분단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던,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던 몇몇 나라들과 세력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죠.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어디로부터의 교육이었는지를 바로 안다면 이해될 겁니다.

분단유지세력들은 분단을 통해 자신들 권력의 영원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통일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저 북쪽에 있는 것들은 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교육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대세 군과 북한의 경기를 통해.. 한민족이란 것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2. SBS.
돈으로 한반도의 월드컵 중계권을 산 방송국이죠.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편으로는 모든 월드컵중계를 해주니 좋다라고 느낄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모습이 아주 불편합니다.
그 예로 타 방송국이 월드컵에 대해 기획하면 제동을 거는 모습이나,
북한이 '남한-그리스'전 방송을 중계한 것에 대해 태클을 다는 모습 등은.. 너무 불편한 모습이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북한이 남한의 모습을 중계하면서 한민족임을 가슴으로 느끼게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SBS)은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못마땅해하고, 중지하길 원하지요..

요즘 명박군이 전 세계적으로 강대국 외에는 지양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뒷북 두드리듯 우리나라의 경제이념으로 가져가고 있지요.
장하준 씨가 지적했듯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모습을 하면서,
돈 만있으면 무엇이든 정당하다는 사고를 이 대한민국 전체에 심어주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여러 세대들을 자주 대하게 되는데..
배려고, 이해고, 도덕이고 이런 것 따윈 개나 주고, 돈 많으면 뭐든 할 수 있고, 정당화되는 듯한 사고들을 접할때는..
정말 요즘은 무섭단 생각을 합니다.

앞서 정대세 군의 내용에서 언급했지만,
우리 한민족을 나누고 분단되게 된 것은 몇몇의 강대국과 분단유지를 통해 권력을 가지는 소수의 세력 때문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말이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니 역사니 민족이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조상도 모르는 상놈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웃기게도요..
지금 SBS의 행태가 바로 이 세력들의 특징을 아주 단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정대세 군과, SBS에 대한 소고.
정대세 군이.. 남북에 있는 한민족의 맘과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면,
SBS는 그것과 반대로 분단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유지하려는 세력을 대변하고 있음을 봅니다.

정대세 군의 눈물은.. 한민족 근대사에서 잃어버릴 것이 더 없이 모두 잃은 민중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너도 나도 그의 눈물과 북한의 경기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던 것입니다.

SBS의 오만함은.. 한민족 근대사에서 아첨으로 얻은 힘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뭉개버리는 분단유지세력의 단면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너도 나도 그 오만함에 이를 갈면서도 웃기게도 우리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를 갈면서도 다시금 티비 앞에 앉는 것이겠지요.




한민족에게는 무엇이 가장 시급하며 중요한 것일까요?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월드컵을 보면서.. 다시금 느끼시기 바랍니다 ^^



ps. 오늘 아르헨티나와 축구가 있죠.. 제발 이기길
      대한민국 파이팅!! ^^*
Posted by 숑숑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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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티시

    저도 동감하오..ㅠㅠ..정대세를 보면 정말 순수한 열정 그 자체를 느꼈기 때문에 저도 같이 눈시울이 뜨거웠지요..ㅠㅠ 근데 스브스의 예는 갈라지는 분단을 너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듯해서, 문득 우리나라는 더 이상 우리나라라고 부를수도 없고, 결국엔 미국화된 한국이란걸 실감케했지요..ㅠㅠ

    2010.06.17 20:0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