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자료모음2013.06.14 01:33

 

암스테르담에서 부산까지:

WCC 총회주제들 안에 나타난 WCC 운동과 신학

 

정병준 (한국교회사, 서울장신대)

 

Ⅰ. 서론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탄생시켰고, WCC는 개신교선교운동으로 출발해서 개신교회와 동방정통교회를 포함하는 세계적인 기독교운동으로 발전했다.

 

WCC는 총회를 통해 자신을 세계 앞에 드러낸다. WCC중앙위원회가 총회 장소를 결정한 후, WCC 총회계획위원회(the Assembly Planning Core Group)는 주제를 비롯한 계획을 입안한다. 그 위원회는 총회 주제를 결정하기 위해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적ㆍ신학적 전통, 교회들의 공동희망, 에큐메니칼 콘텍스트, 총회 개최지의 콘텍스트, 에큐메니칼 운동의 우선적인 과제 등을 광범위하게 고려한다. 주제가 결정되면 본격적인 총회준비가 시작된다.

 

WCC 총회 주제는 단순히 총회를 상징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시대의 에큐메니칼 상황을 해석하는 지침 역할을 하고, 시대의 징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에큐메니칼 과제를 나타내는 복합적인 역할을 한다. 큰 의미에서 총회 주제는 에큐메니칼 항해를 하는 배의 방향타를 조정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WCC 중앙위원회는 2011년 2월 22일 제10차 WCC 부산 총회의 주제를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로 결정하였다. 이 시점에서 역대 WCC 총회의 주제들이 어떠한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시대의 징표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연구하는 것은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II. 역대 WCC 총회 주제들에 나타난 운동과 신학

 

1.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1948)

 

1) 장소와 참가자들

 

1938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WCC 창립을 결의한 후, 10년이 지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WCC가 창립되었다. 초대 사무총장 비셔트 후프트(Willem A. Visser’t Hooft, 1948-66)는 역시 네덜란드 출신 신학자였다. 창립총회에 147개 회원교회로부터 351명의 총대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주로 유럽ㆍ북미 교회들과 소수의 동방정교회 대표들이었다.

 

2) 시대적 배경

 

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개신교회들은 교회일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1921), ‘생활과 사역’(Life and Work, 1925),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1927)의 세 기구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진정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일치와 봉사를 통한 일치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1938년 ‘신앙과 직제’와 ‘생활과 사역’의 대표자들은 WCC를 창립하기로 하고 WCC 헌장도 작성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서구교회의 낙관론은 산산이 조각났다. 전쟁으로 분열된 교회공동체는 복음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는데 무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교회는 세상을 화해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일치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3) 총회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WCC는 세계와 교회가 함께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창립되었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 과제는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제1차 WCC 총회에서 교회 대표들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만이 인간의 무질서를 해결할 수 있고, 교회는 하나님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WCC는 교회가 분열을 회개하고 자기 갱신을 통해 일치를 추구할 것을 추진하였다. 1차 WCC 총회 주제는 인간의 교만함을 지적하면서 어떤 문명과 교회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하지 못한다는 바르트 신학이 나타나고 있다.

 

4) 교회일치론

 

초기 WCC의 교회론은 기독론 중심적인 ‘비교교회론’이었다. 비록 교회들은 분열되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일치(God-given-unity)가 있고 그것을 서로 확인하기 위해 ‘함께 모이자’는 것이었다.

 

5) 분과토론 주제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보편적인 교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교회의 증언

교회와 사회의 무질서

교회와 국제적 무질서

 

총회의 제1분과는 앞서 말한 교회일치를 다루었다. 제2분과에서는 선교론이 논의되었는데, ‘국제선교협의회’(IMC)가 WCC에 통합되지 않는 상황을 의식하면서 선교는 선교단체들만의 책임이 아니고 모든 교회의 공동 과제라고 선언했고, 평신도들의 선교적 책임을 강조했다. 제3분과는 교회의 윤리적 책임을 다루었는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된 세계에서 그 대안으로 ‘책임사회’(the responsible society)를 제시했다. 제4분과는 국제적인 문제를 다루었는데 특히 체코의 신학자 로마드카(J. Hromadka)와 미국의 국무장관 덜레스(J. F. Dulles)사이에 치열한 이념논쟁이 있었다.

 

2. 제2차 에반스톤 총회(1954)

 

1) 장소와 참가자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교회는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1937년에 북미교회는 WCC 중앙위원회의 60개 의석 중에 12석(20%)을 차지했으나, 에반스톤 총회에서는 총 90개 의석 중에 22석(24.4%)을 차지했다. 재정적인 면에서 미국교회의 기여는 두드러졌다. 록펠러는 WCC본부 건물 구입비 54만 불을 기부했고, 미국교회가 WCC의 연간 재정에서 부담하는 비율은 1949년에 82.9%, 1950년에 81.6%, 1953년에 78.2%에 달했다. 제2차 WCC 총회는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개최되었다. 이 곳에 161개 회원교회의 502명의 총대가 참석했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이 시기는 냉전대립과 탈식민지화 운동이 고조되었다. 첫째, 1948년에 동베를린이 봉쇄되었고, 194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결성되면서 미소 사이에 냉전 블럭이 형성되었다. 그해 중국이 공산화되었다. 둘째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셋째, 탈식민지화 운동으로 신생국가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1949년에 인도네시아가 독립했다. 1953년과 1954년에 이란과 과테말라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1950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관심은 탈식민지화와 신생국의 국가건설에 집중되었다. WCC 내부에서도 서구교회들과 신생교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1950년 한국에 전쟁이 발발하자 토론토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한국 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유엔이 한국에서 경찰행동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WCC가 초교회를 지향한다는 비난에 대처하기 위해 WCC의 본성을 밝히는 〈교회, 교회들, 세계교회협의회〉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한편, 1952년에 빌링겐 IMC에서 ‘하나님 선교’(missio Dei) 신학개념이 등장해서 WCC 선교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48~1958년의 10년 동안 IMC와 WCC 사이에는 통합문제가 논의 되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Christ - the Hope of the World) (엡4:4-7)

앞서 언급한 1950년의 토론토 WCC 중앙위원회는 차기 총회 주제에 대해서 “세계는 거짓 희망,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총회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세상 모두에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확증을 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WCC 헌장과 함께 이 주장은 향후 WCC 총회 주제들이 강력하게 기독론을 반영하도록 방향을 결정지었다.

에반스톤 총회는 교회들이 이념적 동서갈등, 경제적 남북갈등, 인종적 흑백갈등을 초월하여 서로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총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그 안에 있는 종말론적인 희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종말론적 희망(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그 역사적 관련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못했다. 주로 유럽교회들은 희망을 종말론적으로 이해했고 미국교회들은 그것을 현실적 낙관론으로 이해했다.

 

4) 교회일치론

 

에반스톤 총회도 암스테르담처럼 기독론 중심적인 ‘비교교회론’에 머물러 있었다. 다만 “함께 모이자”(Stay Together)에서 “함께 성장하자”(Grow Together)로 강조점이 변화되었다.

 

5) 분과토론 주제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됨과 교회로서 우리의 불일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교회의 선교

세계적 관점에서 책임사회

세계 공동체를 위해 투쟁하는 기독교인들

인종 및 민족분쟁의 와중에 있는 교회

평신도

 

제1분과는 교회일치를 다루었고, 제2분과에서는 “하나님 선교”를 다루었다. 제3분과는 1차 총회에서 주장한 ‘책임사회’ 개념을 더 발전시켜서 “책임사회는 사회ㆍ정치적 대안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평가하는 기준이며 우리가 선택할 사항에 대해 안내해 주는 지침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교회는 국가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신학을 제시했다. 제4분과에서는 최초로 제3세계의 경제적 저개발지역의 문제를 다루었다. 제5분과는 종교자유와 인종평등 문제를 다루었다. 에반스톤 총회는 인종평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그로 인해 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3개의 네덜란드 개혁교회들이 WCC를 탈퇴하였다. 제6분과는 평신도는 교회와 세상 사이를 연결하는 선교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평신도 신학’을 강조했다.

 

3. 제3차 뉴델리 총회(1961)

 

1) 장소와 참가자들

 

1960년대는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이 성장하면서 아시아의 영향력이 크게 등장했다. 또한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장은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EACC)의 결성으로 나타났다. 서구권 밖 최초의 WCC 총회는 인도를 선택했다. 제3차 총회에는 197개 회원교회에서 557명의 대표가 참가했다. 이때 24개의 회원교회가 새로 WCC에 가입했다.

 

① 4개의 동방정교회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② 18개의 신생교회 (11개의 아프리카 교회, 5개의 아시아교회, 2개의 남미교회)

③ 2개의 오순절 교회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55년에 나토에 대응하는 동구권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결성되며, 세계가 미소 양대 블록으로 재편되자, 아시아.ㆍ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반둥 비동맹회의’를 결성하면서 제3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1956년에 스탈린은 헝가리의 자유혁명을 진압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강점하였다. 1957년 가나가 영국연방에서 독립하여 아프리카 민족독립의 선봉이 되었다. 1959년에는 쿠바가 혁명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다. 1960년 남아공정부가 샤퍼빌에서 흑인들을 대량 학살하였고, WCC의 인종차별반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WCC는 1955년부터 10년 동안 일어난 이스탄불 내전의 피해 복구를 지원했고, 소련의 헝가리 침공 때에는 난민들의 이주 정착을 지원했다. 그리고 1958년에 WCC와 러시아 정교회 사이에 대화와 방문이 활성화 되었다. 이러한 봉사와 대화는 4개의 동방정교회가 WCC에 가입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다른 한편, 아시아에큐메니칼 운동은 급속히 발전하여 1957년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EACC: CCA의 전신)가 조직되었다. 1958년 가나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는 WCC와 IMC의 통합을 결의했다. 아시아ㆍ아프리카 교회들이 양 기구의 통합을 강하게 요구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피선교지 교회들의 선교의식 성장

둘째, 양쪽의 회원권과 사업의 중복

셋째, 선교기구들과 교회 사이의 분립은 서구교회 안에서 생겨난 문제

 

1960년 WCC 중앙위원회는 WCC헌장을 개정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에 성서적이고, 복음적이고, 삼위일체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부름 받은 사명을 공동으로 완수하려는 교회들의 친교이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Jesus Christ―the Light of the World) (요8: 12)

뉴델리 총회의 주제는 신앙고백과 아시아를 함께 고려하여 결정되었다. 뉴델리 총회에서는 WCC 헌장의 확대수정, IMC와 WCC의 통합, 동방정교회의 가입, 여러 아프리카 아시아 교회들의 가입, 로마가톨릭교회의 업서버 참석, 타종교인들과 대화의 길 개방 등 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개념이 필요했고 ‘세상의 빛’이라는 개념이 선택되었다. 에반스톤 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사용했으나 뉴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용한 것은 당시에 WCC를 향해 ‘신학적 상대주의’ 혹은 ‘혼합주의’라는 비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주제는 “나는 세상의 빛”(요8:12)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너희는 세상의 빛”(마5:14)이라는 요청을 암묵적으로 담고 있었다. 예수님의 빛은 십자가라는 고난과 수치에 가려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지만 부활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교회도 십자가를 짐으로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증언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4) 교회일치론

 

1~2차 WCC 총회는 ‘비교교회론’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뉴델리 총회는 최초로 ‘가시적 교회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총회는 교회일치의 목적이 “각 처에 있는 모든”(all in each place) 그리스도인들의 가시적 일치(visible unity)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풀뿌리 에큐메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요셉 지틀러(Joseph Sittler)는 최초로 ‘우주론적 기독론’(Cosmic Christ) 개념을 사용해서 교회 일치를 주장했다. 그는 계몽주의 이후 은총에 대한 개념이 자연을 배제한 채 인간의 역사와 도덕의 영역으로 한정되었다고 비판하면서, 교회일치와 자연구원의 길을 연결시켰다. 이것은 훗날에 나타나게 되는 ‘창조신학’의 전조가 되었다. 또한 동방정교회 신학자 니시오티스(Nikos Nissiotis)는 동방교회의 ‘존재론적 교회론’을 WCC에 처음 소개했다.

 

5) 분과토론 주제들

 

증거(선교), 섬김(봉사), 일치(교회론)

제1분과에서는 최초로 종교간 대화 강조했다.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하지 않고 계신 적이 없다”는 포용주의 입장을 채택하면서도 혼합주의를 피하려고 경계했다. 제2분과는 신생교회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직면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하면서, 인류애와 신앙적 실천은 구분했다. 그리고 어떤 체제 안에서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에 복종할 수 있다고 하여 이념과 신앙을 구분했다.

 

4. 제4차 웁살라 총회(1968)

 

1) 장소와 참가자들

 

WCC가 창립될 때 한 축을 담당했던 ‘생활과 사업’은 1925년 스웨덴에서 조직되었고 그 대표적인 지도자는 스웨덴의 루터교 대주교 죄더블럼(Soederblom)이었다. 따라서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 유럽에서 열리는 WCC 총회는 스웨덴 웁살라로 결정되었다. 이 총회에 235개 회원교회로부터 704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는데, 뉴델리 총회보다 38개의 회원교회가 더 참여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다른 정교회들이 가입하였다. 이때는 WCC의 창립지도력이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일어났는데 제2대 사무총장은 미국 출신 유진 블레이크(Eugene Carson Blake, 1966-1972)였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60년대는 세계사적 혼란기였다. 첫째, 과학의 발전은 핵무기 경쟁을 가져왔다. 둘째, 충격적인 케네디 암살(1963)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1968)이 일어났다. 셋째, 1965년 월남전이 시작되었고 1967년 중동에는 6일 전쟁이 일어났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는 소련 군대의 학살로 막을 내렸다. 넷째, 혁명의 열기가 불타고 있었다. 1963년 미국에서는 20만 명의 흑인들이 인권시위를 했고 1968년 전 유럽에서는 학생들의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를 열어 교회개혁을 단행했고 메델린 주교회의(1968)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치적 선택을 하였다. 1963년 몬트리얼 신앙과 직제 대회는 동방교회가 참여하였고, 1965년도에는 로마가톨릭교회 대표가 ‘신앙과 직제’ 안에 있는 ‘연합연구위원회’(Joint Working Group)에 참여하였다. 1963년 멕시코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개교회의 선교구조를 다루었는데 선교영역은 6대륙 모두이며 서구와 비서구 모두의 책임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1966년 ‘생활과 사업’은 ‘교회와 사회에 관한 세계대회’(제네바)를 열고 경제정의와 개발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계21:5)

당시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 안건은 사회정의와 경제정의 문제였다. 혁명적 시기에 개최되는 총회를 준비하면서 WCC 지도부는 기독론을 넘어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주제로 삼았다. 주제로 인용된 성경구절은 역사의 최종적인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을 미리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 주제는 WCC가 ‘교회일치’와 ‘선교’ 보다도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관심이 ‘만물’에 있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가져왔던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즉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소이며 이곳에 교회가 함께 일하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하나님 선교 신학이 강하게 표현되었다. 주제 안에서 새로움(new)은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시는 새로움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4) 교회일치론

 

뉴델리 총회가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면 웁살라 총회는 교회의 가시적 일치와 인류의 일치를 연결시켰다. 교회 에큐메니즘을 인류 에큐메니즘의 중심에 놓고, 교회일치를 인류일치를 위한 종말론적 징표로 이해했다.

 

5. 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

 

1) 장소와 참가자들

 

최초의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총회는 케냐에서 개최되었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착취를 받은 가난한 땅이었고, 노예제로 수많은 인간이 수탈된 땅이며, 백인정권에 의해 인종차별정책이 여전히 남아있는 대륙이었다. 또한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지도력과 재정적인 면에서 여전히 서구교회로부터 자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1971년에 동아프리카 장로교회 총무였던 존 가투(Rev. Dr. John Gatu)는 선교 모라토리움을 제안했다. 이 총회에는 285개 회원교회로부터 676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당시 WCC 사무총장은 도미니카 출신의 필립 포터(Philip A. Potter, 1972-1984)였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제3세계 안에서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몸부림이 거세게 일어났다. 1969년에 리비아에서는 카다피가 집권했다. 1971년에 중국은 유엔에 가입하면서 국제무대로 다시 나왔다. 1972년에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1973년에 미국은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켰다. 1974년에 포르투갈에서 스피놀라가 집권한 후, 앙골라, 모잠비크, 기네비소, 쌍토메프린시페, 까보베르데를 독립시켰다. 사이프러스에 친 그리스계 정부가 등장하자 터키는 북사이프러스를 점령했다. 1975년에 크메르 루즈는 캄푸치아를 장악하고 3백만 명의 국민을 살해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점령했고, 유럽에서는 헬싱키 협정으로 냉전이 종식되었고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1939~1975)가 종식되었다.

 

남미에서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pedagogy)과 ‘종속이론’이 등장했다. 또한 ‘실천-반성’(Praxis and reflection)의 방법론에 근거한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들이 나타났다. 인종차별주의와 다국적기업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WCC는 웁살라 총회 이후 사회참여를 강화하기 위한 기구개편을 단행하였다. ① 인종차별철폐위원회(Programme to Combat Racism, 1969), ② 교회개발참여위원회(CCPD, 1970), ③ 그리스도교의료선교위원회(CMC, 1968), ④ 교육위원회, ⑤ 살아 있는 신앙 및 이데올로기와의 대화 등의 조직이 신설되었다. 1971년 기독교교육세계협의회는 WCC에 통합되었는데 WCC는 의식화 교육프로그램과 행동신학(Doing Theology) 연구를 지원했다. 일부 지도자들은 WCC가 사회참여로 경사되는 불균형을 우려했고 복음주의권의 그리스도인들은 WCC의 방향을 비난했다.

 

1973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를 발표했다. 방콕대회에서 아시아 교회들은 존 가투가 제안한 선교 모라토리움을 강력하게 지원했으나. 나이로비 WCC 총회는 ‘모라토리움’을 수용하는 대신 ‘선교적 동반자 관계’(partnership in mission)를 발전시켰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

나이로비 총회 주제는 종말론에서 다시 기독론으로 돌아왔다. 이 총회는 사회참여를 지속하면서도 해방과 진보의 슬로건에 가려있었던 선교와 일치의 주제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다. 필립포터는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웁살라는 출애굽의 분위기였고, 나이로비는 광야”와 같았다고 진술했다. 기존의 WCC 총회 주제들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해 ‘시대적 징표’(sign of time)를 담아서 대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딜레마는 예수를 해방자(frees)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분열자가 아닌 화해자(unites)로 고백하는 것이었다.

 

성경적 자유 개념은 바울 신학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 죄, 율법, 죽음으로부터 자유한다(갈6.7; 롬1:20; 갈5:1, 롬7;24).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운명을 극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이기 때문에 인류와 함께 연대해야 하는 정치성을 포함하게 된다.

 

총회 주제가 “하나 되게 하신다.”는 표현을 담은 것은 WCC의 신학적 방향이 웁살라 총회의 사회참여적 성격에서 통전적인 방향으로 교정된 것을 나타냈다. 또한 동방정교회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고 복음주의자들과 오순절 교회의 참여도 늘어난 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WCC 안에서는 교회의 일치가 ‘하나님의 선물인가?’ 아니면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냐?’ 하는 견해 차이로 논쟁이 있었다.

 

⑷ 교회일치론

 

1~2차 총회는 ‘비교교회론’, 3-4차 총회는 ‘가시적 교회론’을 나타냈다. 그러나 나이로비 총회의 교회론은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했다. 그 결과 개 교회들이 성만찬의 교제를 통해 가시적 일치를 표현해야 한다는 ‘협의회적 친교’(conciliar fellowship)를 주장하게 되었다. ‘협의회적 친교’란 개 교회(local)들이 각자가 지닌 독특한 은사를 지키면서도 보편교회(universal)를 나타내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편성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특수성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잘 나타낸 것이다.

 

또한 나이로비 총회는 에큐메니즘을 ‘전교회’(whole church)가 ‘전세계’(whole world)와 ‘전인격’(whole person)에 ‘전복음’(whole gospel)을 전하는 운동으로 정의했는데, 이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진정한 통전적인 에큐메니즘으로 확대된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이었다.

 

⑸ 분과토론 주제들

 

오늘 그리스도 고백

일치의 조건

공동체 추구

해방교육과 공동체

구조적 불의와 해방투쟁

인간개발: 권력ㆍ신학ㆍ삶의 질의 모호성

 

제1분과는 영성을 사회참여와 연결시켜 이해했다. 제2분과에서는 교회일치의 조건은 ① 공통의 목표, ② 동료의식, ③ 공동의 상황인식이라고 확인했다. 3분과에서는 참된 공동체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대화를 강조했다. 나이로비 총회는 최초로 타종교인들을 초청했다. 제4분과는 인간해방의 우선 과제를 ① 인권, ② 성차별, ③ 인종차별 문제라고 보았다. 제5분과는 “정의롭고 평화롭고 지탱 가능한 사회”(JPSS)를 제시했다. 당시 서구 국가들의 과학자들은 생태계 파괴와 자원고갈 문제에 대해 인류가 대처하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가들이 성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개발도상국가들은 이미 개발을 이루고 선진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서구국가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반발하였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WCC는 JPSS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6. 제6차 뱅쿠버 총회(1983)

 

1) 장소와 참가자들

 

WCC 총회는 유럽에서 두 차례, 그리고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각각 한 번씩의 총회가 열렸다. 제6차 총회는 북미의 캐나다 차례가 되었다. 301개 회원교회로부터 847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뱅쿠버 총회에서는 총대의 구성에 큰 변화가 일어나서, 여성 30%, 청년 15%, 평신도 46%가 되었고, 특별히 남반구의 교회들의 참여가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미 158 서유럽 152 동유럽 142 호주ㆍ뉴질랜드 26

아프리카 131 아시아 131 중동 53남미 30

태평양 22 카리브 19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77년에 파키스탄에서는 민주적인 정권이 다시 군사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다. 1979년에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반미 이슬람 정권을 세웠다. 니카라과에서도 독재자 소모사가 추방되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아프가니스탄의 대소항쟁이 전개되었다. 1980년에 살바도르 독재정권은 로메로 주교를 암살했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독재에 의해 고통 받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짐바브웨가 백인독재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고, 이 과정에서 WCC는 짐바브웨 해방 전선을 지원하였다. 한국에서는 신군부에 의한 광주시민 학살이 일어났다.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1982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제5차 나이로비 총회 이후 WCC 총회 가이드라인 위원회는 향후 활동 방향을 ①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신앙을 표현하고 교제하기, ② JPSS추구, ③ 교회일치와 인간 공동체 갱신의 관계연구, ④ 진정한 공동체를 위해 갱신과 교육 강화로 정리했다. WCC는 이에 따라 1977년에 종교간 〈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다. 1980년에 멜버른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가난한 사람들이 현대 선교에서 더 소외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선교의 대상이면서도 하나님 선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1979년에 MIT 공과대학에서 모인 ‘WCC 교회와 사회위원회’는 과학기술의 노하우 독점문제, JPSS를 위한 대체 에너지, 유전공학 문제를 가지고 회의를 했다. 1982년에 리마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BEM 문서〉와 〈리마예배서〉를 만들었다. 이 모임에서 판넨베르크는 WCC가 웁살라 총회 이후 ‘신앙과 직제’를 약화시키면서 사회정의와 교회일치를 연결시키는 경향성을 반대했다. 1982년에 WCC 중앙위원회는〈에큐메니칼 확언〉(An Ecumenical Affirmation)을 채택했다.

 

3) 주제에 대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 (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 (요11:25, 14.6)

뱅쿠버 총회의 주제는 성령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독론적 신앙고백을 사용했다. 당시 시대적 징표는 ‘생명’이었다. 총회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적 억압,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 인권유린,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 등을 생명을 죽이고 손상하는 죽음의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고백하는 것은 바로 죽음의 세력에 대응하는 것이고, 그 내용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주제의 성경적 배경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1:25)이었다.

 

기독론은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대교회 이후로 성육신 기독론(from above)과 십자가 기독론(from below) 사이에는 긴장이 있었다. 바울은 십자가의 빛으로 부활을 이해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했고, 요한복음은 부활의 관점에서 성육신을 이해하는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독론은 성육신―십자가―부활을 연속적으로 연결시키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WCC 안에는 루터의 종교개혁 전통이 강조해온 ‘아래로부터의 기독론’과 동방정교회의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왔다. 개신교는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관계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면서, 부활을 하나님의 새로운 행동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동방정교회는 성육신하신 인자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불연속성을 강조하면 성육신을 약화시키고, 연속성을 강조하다보면 십자가의 의미를 약화시키게 된다. 그래서 WCC는 성육신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의 의미를 강조했고, 십자가 신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악과 투쟁하시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하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WCC 총회 주제들에 나타난 기독론은 이 두 차원을 상호 관련시키고 있다.

 

콘라드 라이저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이라는 뜻은 또한 ‘세상의 주인”(Lord)이라는 뜻이 라고 한다. 생명과 세상은 모두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세상의 창조주가 되신다. 그래서 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세상의 주인으로 아는 사람들의 고백이 된다.

 

4) 교회일치론

 

1-2차 총회는 교회분열 문제에 직면했고, 3-4차 총회는 일치의 목표를 설명했다. 5-6차 총회는 가시적 일치를 향한 실천의 중요성을 점점 더 강하게 강조했다. 밴쿠버 총회는 〈BEM 문서〉를 교회일치의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가시적 성례적 친교’(visible eucharistic fellowship)를 교회일치와 인류공동체에 대한 성례적 비전을 열어주는 징표로 사용했다. 교회란 회복될 인류공동체의 표징이고 인류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도구라고 역설했다.

 

7. 제7차 캔버라 총회 (1991)

 

1) 장소와 참가자들

 

지금까지 WCC 총회가 열리지 않았던 대륙은 오세아니아 뿐이었다. 환경 문제, 원주민 문제, 영성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호주의 캔버라가 선정되었다. 이 총회에는 317개 회원교회로부터 889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총회는 제4대 사무총장 에밀리오 카스트로(Emilio Castro, 1985-1992)가 준비하였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80년대 말부터 동구와 남아프리카에 변화의 바람이 몰려왔다.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동구권의 교회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1990년에 나미비아가 남아공에서 독립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통치가 끝이 났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곧 바로 새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 소련연방과 발칸반도 안에서 인종 충돌과 인종 학살이 일어났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페루 등지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민중들은 초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았다. 페르시아 만에는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

 

광범위한 환경 오염과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의 사막화 확대는 현 인류와 미래 인류의 생존권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폐기물 처리장으로 황폐화되고 있음을 호소했다. 사회적인 대안 모델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었다.

 

이 기간 WCC는 중국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캔버라 총회에서 중국교회는 회원권을 회복했다. 또한 WCC는 한국교회의 통일 노력을 측면에서 지원하기 시작했다. WCC는 1984년에 도잔소 회의를 개최했고, 1985년도에 제네바 글리온에서 남북기독자들이 성찬을 교류했다. 그 결과 북한교회 대표자들이 캔버라 총회에 초대를 받았다. 1988년에 WCC는 ‘여성과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10년 운동’을 지원하였다. 1989년에 산 안토니오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 대회에서는 ‘포용주의 구원론’을 받아들였고, 1990년에 서울 JPIC 대회가 열렸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

캔버라 총회는 성령론을 주제로 택하면서, 신앙고백이 아닌 기도형식을 사용했다. 총회 개막 연설에서 사무총장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 가지 우선 안건을 제시했다. 첫째, 탈근대화 시대에 세계적으로 종교부흥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교회는 성령이 모든 영성과 종교들 안에서 활동하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배타적으로 활동하는지 답해야 한다. 둘째, 사회주의가 붕괴했고 서구 자유주의(liberalism)도 파산했기 때문에, 교회는 대안적 사회 모델을 찾아야 한다. 셋째, 다양한 교파들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시적 일치가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카스트로의 말에서 주장하듯이 세계적으로 깊은 영적인 요구에 대한 열망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WCC는 새로운 성령론적 신학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총회는 환경문제와 생명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내었다. 총회 주제는 환경문제와 창조신학을 연결시켰고, 경제와 생태계에 대한 윤리가 교회의 삶 속에서 성찰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호주 원주민들의 땅에 대한 영성이 이러한 주제를 논의하는데 매개체가 되었다.

 

4) 교회일치론

 

캔버라 총회는 리마 예식서에 근거해서 4000명 이상의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것은 BEM 문서가 추구하는 일치를 예배로 표현한 것이다. 총회는 코이노니아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향후 WCC 교회론은 선교, 봉사, 일치가 교회론 안에서 통합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5) 총회 주제와 관련된 신학논쟁

 

캔버라 총회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성령론의 범위와 생태계 안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뜨거운 신학논쟁이 일어났다.

정현경 교수의 발표와 퍼포먼스는 성령의 활동이 기독론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과 동방정교회의 대표들은 그 입장을 종교 혼합주의 위협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현경 교수는 모든 교회들은 혼합적이며, 특히 서구교회들은 물질주의, 가부장제도, 군사주의와 혼합되었다고 응수했다. 동방교회 대표들은 성령에 관해 말하는 것은 성삼위일체에 관해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캔버라의 최종적인 결론은 “영들은 분별되어야 한다. 모든 영이 성령은 아니다. 성령을 분별하는 주요 기준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키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증언한다.”라고 했다.

 

또한 총회의 토론 문서는 생태계 안에서 인간중심성과 청지기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오만한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최종 선언문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고, 환경을 지키는 청지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했다.

 

8. 제8차 하라레 총회(1998)

 

1) 장소와 참가자들

 

WCC의 희년 총회는 아프리카 하라레에서 개최되었다. 아프리카는 그리스도인 인구가 집중된 곳이며, 가난, 인종갈등, 질병(AIDS/HIV)으로 고통 받는 장소이므로 희년이 절실하게 필요한 대륙이었다. 총회가 열리는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는데 WCC는 짐바브웨 애국전선을 지원하였다는 이유로 큰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1994년에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아프리카의 중요성이 고조되기도 했다.

 

하라레 총회에는 332개 회원교회로부터 960명의 총대가 참석했고, 4500명의 그리스도인이 모여 대규모 예배를 드렸다. 제5대 사무총장 독일의 콘라드 라이저(Konrad Raiser, 1993-2003) 박사가 총회를 준비했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동구권 해체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경제적 빈부차이를 심화시켰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외환위기가 초래했다. 경제적 위기로 인해 유럽 사회가 보수화 되었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과 재정에도 큰 위기가 나타났다.

 

1990년 이후 지구온난화와 엘니뇨현상이 세계적인 기상 이변을 일으켰고, 자원의 고갈과 인구 증가가 또 다른 위기로 등장했다. 1997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교토협약’(Kyoto Protocol)이 체결되었다. 1994년에 르완다 내전에는 끔찍한 인종 청소가 자행되었으나 국제 사회는 이것을 막지 못하고 묵인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Turn to God, Rejoice in Hope)

하라레 총회의 주제는 기독론, 성령론에 이어 삼위일체론으로 확대되었다. 이 주제는 희년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회개와 갱신을 강조했고, 로마서 12:12절에서 “소망 중에 기뻐하자”는 말을 인용했다. 사무총장 콘라드 라이저는 총회 주제를 언급하면서 ① 철저한 회개 및 방향전환과 자기평가, ②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화해와 일치로 초대, ③ 21세기의 전야에서 희망의 공동체가 되라는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브라질 여성신학자 데이펠트(Wanda Deifelt)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인간성으로 돌아가서 우리 시대의 특징인 고난과 고통과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코수케 고야마는 탕자를 끌어안는 아버지, 홈리스 예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붓기 위해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희망은 시간이야기”(time-story)가 아니라 “사랑이야기”(love-story)라고 말했다.

 

4) 총회의 특징

 

총회는 2000-2010을 ‘폭력극복을 위한 10년’(Decade to Overcome Violence)이라고 선언했고, 제3세계의 가난한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해 ‘부채탕감운동’을 전개하자고 선언했다.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공청회식 회무진행(Hearing)을 도입했고, 에큐메니칼 공간을 확대하는 의미로 ‘파다레’(열린마당)을 열어 놓았다.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의 이해와 비전〉(CUV)문서를 채택했는데, 이 문서는 향후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 ‘기독교포럼’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9. 제9차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2006)

 

1) 장소와 참가자들

 

포르토알레그레 총회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였다. WCC는 성장하는 오순절 교회들과의 친교를 확대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남미에서는 오순절 교회들이 급성장했고 이들에게는 사회참여 전통도 강했다. 식민지 착취와 군사독재를 경험한 브라질은 경제세계화의 결과로 극심한 빈부격차를 겪으면서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총회가 개최된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는 반세계화와 대안세계화 활동가들이 준비하는 세계사회포럼이 1~3회(2001-3) 개최된 곳이었다. 또한 남미는 좌파 및 중도 좌파 정권이 집권에 승리하면서 오랜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 총회에는 348개 회원교회로부터 691명의 총대가 참가했다. 제6대 사무총장 케냐 감리교회 출신의 새뮤얼 코비아(Samuel Kobia, 2004-2009)가 대회를 준비했다.

 

2)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세계의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켰다.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2003년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자살 테러가 이어졌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2004년에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밀어닥친 최악의 쓰나미로 인해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5년 8월말에 카타리나 태풍으로 인해 미국의 뉴올리앙스에 1만 명이 희생되었다.

하라레 총회 이후 WCC 선교신학은 ① 복음과 문화, ② 세속주의 안에서 증언, ③ 건강과 치유라는 세 측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의 일치 안에서 선교와 전도〉(Mission and Evangelism in Unity Today, 2000)를 발표했다. 정교회 참여활성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합의결정제’(consensus decision-making)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 방식은 프르토 알레그레 총회에서부터 사용되었다. 세계평화를 위한 타종교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지속되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전에 대해 아가페 과정(AGAPE Process: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WCC는 특별히 아프리카의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HIV/AIDS극복을 지원하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권리를 강조했다.

 

3)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주제는 하라레 총회에 이어 하나님이 중심이 되었고 기도형식을 사용했다. 여기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다. 기독론적 주제에서 사용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와 세상의 대칭 구조가 여기서는 하나님과 세상의 대칭구조로 변화되었다. ‘은혜’라는 표현은 WCC의 3대 구성 요소인 개신교회, 동방교회, 오순절 교회의 신학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표현이었다.

 

이번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내적 위기 극복, 종교적 다원성 안에서 기독교의 정체성 확인이라는 내적 과제를 해결하고, 경제정의ㆍ환경파괴ㆍ폭력극복 평화실현이라는 외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많은 안건을 다루었다.

 

10. 제10차 부산총회(2013)

 

부산총회는 1961년 인도의 뉴델리 총회 이후 42년 만에 열리는 아시아 대륙의 총회이다. 그러나 부산 총회의 주제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한국교회의 요청이 크게 반영되었다.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의견은 부산총회의 주제가 생명의 중요성과 한국의 통일, 아시아의 정의와 평화 문제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이러한 의견을 모아 “삼위일체 하나님과 생명, 평화, 치유”를 WCC에 제안하였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생명’과 ‘평화’ 문제는 WCC 중앙위원회 안에서 큰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다른 한편, 아시아에서 ‘정의’ 문제는 중요한 선교적 과제라는 제안이 필리핀 교회로부터 나왔다.

 

그 결과 부산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로 결정되었다. 총회의 주제를 뒷받침 하는 성경구절로는 이사야 42:1~4절로 하나님의 종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고”(3절),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른다”(4절)는 것이었다. “갈대”와 “등불”은 생명을 나타내고, “꺾지 아니하며” “끄지 아니라고”는 평화를 나타내며, “공의”는 정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제는 9-10차 총회에 이어 ‘하나님’에 중심을 두면서 교회의 선교과제가 ‘생명’, ‘정의와 평화’인 것을 강조했다. WCC 총회 주제에서 ‘생명’이 언급된 것은 6차 뱅쿠버 총회였다. 그러나 정의와 평화가 주제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생명, 정의, 평화 문제가 교회의 일치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또한 이 주제는 WCC가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정의, 평화, 창조보전(JPIC)이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의제라는 점을 나타냈다.

 

이번 총회 주제를 결정하는 일에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공헌을 한 것만큼, 이제는 이 주제를 해석하고 교회의 삶에 깊숙이 반영하는 작업이 WCC 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Ⅲ. 맺음말

 

1.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9차례의 WCC 총회 주제들과 제10차 부산 총회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차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2차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3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4차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5차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6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

7차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8차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

9차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 시키소서

10차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

 

2. WCC 총회 주제들의 신학적 특징을 분석하면

 

⑴ 철저하게 삼위일체론에 근거하고 있다.

① 하나님: 1차, 4차, 8차, 9차, 10차 총회 주제들

② 기독론: 2차, 3차, 5차, 6차 총회 주제들

③ 성령론: 7차 총회 주제

 

WCC 창립총회의 주제는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희년총회를 거쳐 9차 총회에서 하나님으로 돌아왔다. WCC 총회 주제의 가장 중심에는 기독론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은 WCC의 초기 헌장에서 나타나듯이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친교” 였기 때문이다. 기독론적 주제는 늘 신앙고백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시대적 징표가 함께 등장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기독론”과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배타적이지 않게 공존했다.

 

WCC 총회 중 해방과 진보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4차 총회가 종말론을 사용한 것은 인상적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혁명성을 가장 잘 드러내어 준다. 그러나 역사적 진보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신학적 과제로 남아있다.

 

성령론은 영성문제와 생태계의 문제를 다룰 때 사용된 주제였다. 종교적 다원성의 사회 안에서 성령의 역할을 어디까지 개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전통적인 관점으로 돌아갔다.

 

⑵ 9차 총회에 이르기까지 총회 주제들 가운데 주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었고, 그 대상은 “세상”과 “만물”이었고, “교회”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WCC 선교신학이 하나님 선교 개념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교회는 그 선교의 도구이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일하시는 현장이 된다. 10차 총회의 주제는 주어가 하나님이고 그 대상은 “우리”(교회)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끄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⑶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화해론적인 혹은 성례전적인 주제가 나타난다. 이러한 개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관계하는 구속사적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①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섭리”(질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근거, “은혜”, “생명”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② 기독론과 관련되어서는 “소망”, “빛”, “자유”, “일치”, “생명”이 사용되었다.

③ 성령과 관련해서는 “만물을 새롭게”(창조신학)가 사용되었다.

 

3. 총회 주제는 고정된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새롭고 창조적인 에큐메니칼 성찰과 논쟁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을 택하였다. 주제형식은 다음과 같다.

 

⑴ 표어형식 :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1차)

⑵ 신앙고백 형식: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2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3차)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 (6차)

⑶ 성경인용 :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4차)

⑷ 선언 :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5차)

⑸ 기도형식: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7차)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9차)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10차)

⑹ 초대형식 :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8차)

 

4.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는 ‘세상’과 ‘교회’와 ‘성서’의 세 축이 긴밀하게 연결된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WCC의 주제와 분과토의 주제들을 보면 현실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WCC 주제들은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반드시 신학적 성찰과 과거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과(신학, 선교, 봉사)를 깊이 고려해서 결정하였다. WCC 총회주제는 교회의 신앙고백과 함께 세상의 시대적 징조를 해석하는 예언자적 통찰력과 신앙적 비전을 직관하는 예리한 수사학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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